월간참여사회 2014년 05월 2014-05-02   1625

[특집]선거, 착각, 폭력, 무기력

특집 선거, 불편한 진실을 말하다

참여사회 2014-05월호

선거, 착각, 폭력, 무기력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연구위원

 

 

현대의 선거제도는 ‘대의민주주의’라 불린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우리의 뜻은 정말 대의代議되고 있는가? 지방의원, 단체장, 국회의원, 대통령은 우리를 대신해서 주요한 현안을 해결하고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가? 권력은 적절히 나눠져서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잡고 있는가? 선출되는 공무원들은 우리를 대신해서 선출되지 않는 공무원들을 잘 관리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어야 대의제 민주주의라 불릴 수 있다. 한국은 진정한 대의민주주의 국가인가?

 

배가 침몰해서 많은 청소년들과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정치인과 공무원들은 시민을 대신하기는커녕 책임을 떠넘기느라 바쁘다. 대의민주주의 국가라면 시민이 그런 무능과 실패의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흔히 선거를 통해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얘기하는데, 정말 그러한가? 시민들의 분노가 과연 권력을 바꿀 수 있는가?

 

우리가 그런 국가에 살지 않는데 그런 국가에 살고 있다는 착각과 그런 착각으로 현실의 폭력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비극은 시작된다. 그리고 힘을 가진 자들은 이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 정치가 “못살겠다 갈아보자”, “갈아봤자 소용없다”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 이 수준이 힘을 가진 자들에게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다.

 

선거, 매번 똑같다.

 

선거選擧는 가려서 올린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가려 뽑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후보자가 다른 후보자보다 더 똑똑하고 능력 있는지를 가리는 게 아니라 정치무대에 올라가서 내 의견을 제대로 대리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매번 우리를 배신한다. 한참을 욕하다가 선거 당일이 되면 울며 겨자 먹기로 투표한다. 최악이 안 되면 다행이고, 최악이면 술을 들이킨다. 정치인들도 이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시민의 가슴이 뛰길 원치 않는다. 그냥 표만 찍어주길 바랄 뿐이다. 너희들이 찍지 않고 별 수 있겠느냐며 똥배짱을 부린다. 이런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세월 호 여객선 침몰 참사로 지방선거 국면이 주춤하고 있다. 사실 정당공천을 하네 마네로 많은 시간이 흘렀고, 한국의 특성상 지방선거는 중앙권력에 대한 심판론이 지배한다. 정책선거, 지역후보, 이런 건 그냥 말 뿐이다. 사실 지역정당local party이 불가능하고, 지역 언론도 제대로 없는 한국 현실에서 지방선거는 중심에 설 수 없는 변방의 선거이다. 당연히 지역의 중요한 현안도 논의되지 못하고 온갖 개발공약만 난무한다. 선거가 개발을 부르짖는 공약들을 부추기고,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착각은 선거가 끝나면 주민들을 몰아내는 폭력으로 변한다.

 

그러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르는 건 아주 나쁜 표현이다. 만약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사람일까? 아니, 한국에는 정치에 관심이 아주 많기 때문에 무관심해지는 사람들도 있다. 후보자들 중에서 가려서 뽑을 사람이 없는 건 유권자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하나가 아니다. 무수히 많은 민주주의‘들’이 있다. 당연히 선거제도도 여러 가지다. 어느 하나가 잘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민주주의인데, 새로운 투표방법이나 대표자 선출방식을 도입하는 건 한국사회에서 불가능에 가깝다. 심지어 우리는 투표를 하자는 투표독려 행위까지 법으로 금지하려는 나라에 살고 있다.

 

정치판이 변하지 않는 데에는 우리의 ‘이율배반’도 한 몫을 한다. 우리는 후보자들이 우리 의견을 대변해주기를 ‘내심’ 기대한다. 그런데 표가 보이면 어디든 달려갈 것 같은 사람들이 우리 편에는 거의 오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을 찍지 않을 것이라 믿는 합리적(?) 행위자다. 당연히 오지 않을 사람들을 바라보며 화를 내는 우리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참여사회 2014-05월호

 

선거 이후를 바라보자!

 

선거도 중요하지만 선거 이후가 더 중요하다. 정책이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정책을 보자는 것은 후보자나 선거캠프가 얼마나 똑똑한지를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다. 선거 이후에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그것을 통해 좋은 삶이 가능한지 따져보자는 거다. 이 편, 저 편을 나누는 목소리에서 사라지는 건 정책이고 선거 이후다. 여야 할 것 없이 말들의 잔치만 벌일 뿐 선거 이후를 얘기하지 않는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지 않으려면 그 공약公約을 뜻으로 밀고 나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람 한 명 달랑 당선된다고 정책결정이 내려지는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언제나 선거‘까지’만 얘기한다. 사실 선거를 통해 어떤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선거가 끝나는 순간, 선거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기성 정치인들이 선거를 통해 진심이든 뻥이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지만, 우리는 새로운 정치를 바란다고 말하면서 늘 익숙한 사람들 사이를 헤맨다. 당연히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복직을 하더라도 기업의 주인으로 복귀하지 않는 이상 비극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제 손으로는 아무 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자들이 노동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들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굴욕을 감수하고 공장에서 일을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외국이 자신들의 천국일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기에 그들은 국내에서 세게 나가고 공권력을 포섭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있는 노조를 깨려고 한다.

 

마찬가지다. 이제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우리들의 대한민국을 살겠다고 결의할 수는 없을까? 노동자가 기업의 주인일 수는 없을까? 다른 나라, 다른 기업을 만들어 우리끼리 재밌게 살면, 그들도 좀 머리를 숙이지 않을까? 맨날 제왕적 대통령제라 욕하면서 대통령 제도를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 태도를 버리고 헌법 자체를 뜯어고칠 수는 없을까? 검사나 판사, 공무원들을 또라이라고 욕하면서 그 또라이들에게 의지하려 하지 말고 그들의 역할을 축소시킬 수는 없을까? 우리가 정당을 만들 수는 없을까? 경찰이 깡패라고 욕하지 말고 경찰서장을 우리 손으로 뽑을 생각을 할 수는 없을까? 선거 이후를 보며 칼을 벼리는 정치는 불가능할까?

 

민주주의는 민중이 좋은 정치인이나 정당을 뽑거나 민중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것이 아니다. 민중이 권력을 가져야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민중을 위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민중과 함께 할 정치인을 필요로 한다. 그렇게 하려면 정당이 아니라 우리가 조직화되어야 하고, 그런 관계맺음에서 민주주의가 살아날 수 있다. 선거판을 보며 던지는 질문이 바뀌지 않는 이상 우리의 삶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우리의 질문을 바꾸고, 우리의 행동을, 우리의 삶을 바꾸자.

 

하승우

수도권 생활을 접고 지역으로 내려가 자치와 자급의 삶을 더불어 실현할 방법을 찾고 있다. 풀뿌리민주주의, 아나키즘, 새로운 사회운동의 출현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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