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12월 2015-11-30   1747

[통인] "그래, 나 일 못해. 하지만 당당해!"

“그래, 나 일 못해. 하지만 당당해!”

이서영·오수경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공동 저자

 

글. 박유안
기웃기웃 번역가. 알트 출판사에서 일하는 그는 ‘까칠해도 친절하게’가 삶의 모토이며,
‘쟌 모리스를 번역한 작가’로 기억되길 바란다. 밤엔 주로 땅고 추며 논다. 맘 놓고 춤 출 좋은 세상을 염원한다.
사진. 이영미 참여연대 미디어홍보팀 간사

 

참여사회 2015년 12월호

 

일 잘하는 능력자들이 으레 칭송받는 이 엄혹한 ‘자기계발’의 시대에, 여기 “저는 일 진짜 못해요”라며 스스로를 놀리는 사람들이 소복이 모여 있는 신기한 모임이 있다. 더 신기하게도 이들이 힘을 모아 버젓이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이라는 책까지 냈다. 이 책의 공동저자이면서 이른바 ‘일못유니온’의 구성원인 이서영(제안자 여정훈 씨가 예비군 훈련 가며 떠넘겨, 덜컥 ‘일못유’ 관리자가 되어버린 87년생 덜렁이 언니), 오수경(성실하고 꼼꼼하게 일을 못하며 ‘페북 잉여’로 자아실현 중인 30대, 비혼, 여성) 두 분을 만났다.

일못하는사람유니온(이하 일못유)도 청년유니온 같은 유니온인가, 아니면 대체 뭔가? 두 분은 어떻게 ‘일못유’에 가입했나?

이서영 제안자인 여정훈 씨가 다니던 단체에서 잘린 뒤 스스로를 놀리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가 다른 사람들도 알음알음 들어온 거지, 처음부터 이런 모임을 만들려고 한 건 아니었다.
오수경 노동조합으로서의 유니온은 아니고 그렇게 만들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이서영 일못유는 허핑턴포스트에 실린 거 보고 알았다. 마침 어느 노동조합에 취직하고서 여기에 할 말이 매일매일 무궁무진할 때라 얼른 가입했다.
오수경 건너 건너 알던 여정훈 씨의 페이스북 그룹이라 비교적 일찍 가입했고, 그러고서도 이서영 씨처럼 활발히 활동한 건 아니고, 주로 관찰하는 입장이었다.

 

여정훈 씨가 2014년 7월 페이스북에 개설한 이 일못들의 갈대밭에는 일터에서의 온갖 실수와 깨진 일들과 관련한 하소연들이 넘치고, 일 못하는 ‘우리들’끼리 서로 그 상처를 어루만지며 위안과 공감을 얻고 조언을 나눈다. 가입자가 현재 6,500명에 육박하며, ‘연애 못하는 사람들’, ‘운동 못하는 사람들’ 같은 파생상품(?)까지 양산해내는 히트상품이 되었다.

 

‘일못유’는 페이스북 그룹이다. 어떤 하소연들이 올라오나?

이서영 날마다 일 못한 걸 1부터 10까지 썼다. 옆 사무실 열쇠를 들고 퇴근했다 집에 놔두고 온다든가, 상위노조에 보낼 공문에 20014년이라고 쓴다든가 등등. 사소한 실수로 혼난 이야기를 여기에 올려 서로 재밌어 하다 보면 그렇게 비참한 일은 아니구나 싶어 위로가 된다. 어떤 댓글은 “내 실수가 그냥 커피면 이 분 실수는 티오피요, 내 실수가 그냥 생수면 이 분 실수는 에비앙”이라더라.
오수경 일못유의 하소연들을 관찰하며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우선, 평소 오타를 내거나 이면지를 대량생산해낸다든가 해서 깨지는 걸 ‘일못’이라고 생각하질 않았는데, ‘그게 일못이었군’이라고 깨달았다.
이서영 자기발견!
오수경 새로운 자아의 발견! 또 하나는, 정말 심각한 일못들 보면서 ‘어 난 일못 아니로구나’ 싶었다. ‘저렇게 일을 못하면서 어쩜 저리 즐겁고 뻔뻔하게 살 수 있는 거지?’라고 생각한 거다. 초창기엔 서로 위로하는 따뜻한 연대가 있었다. 가입자가 불어나면서 요즘은 과열되어 논쟁 상황이 자주 연출되기도 한다.

 

‘내가 그리 심각한 일못은 아니구나’라는 자각이 그렇게 큰 위안이 된다니, 놀랍다.

이서영 그게 참 희한하다. 이상하게도 큰 위안이 된다.
오수경 못난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를 보며 ‘내가 제일 못난 사람은 아냐’라고 위로하는 거다.

참여사회 2015년 12월호 

 

최근 논쟁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고도 했는데, 이를테면?

오수경 나이 어린 신입사원들의 경우 ‘냉무(내용없음)’, ‘제곧내(제목이 곧 내용)’ 등으로 단순화시켜 업무 이메일을 보내는데 그런 걸 캡처해 “이런 거 이해 못하는 저는 꼰대인가요?”라는 사연이 올라오자 댓글이 몇 백 개씩 달리며 논쟁이 벌어졌다. 또, 광화문 집회에서 경찰의 폭력으로 시민들이 다쳤다는 글에는 전경이 댓글로 시위대의 폭력을 주장하기도 했다. 사회적 논란이 ‘일못유’로도 자연스레 번지는 양상인 건데, 그런 논란이 일면 예전에는 자체정화의 기능(예컨대 여정훈 씨의 역할)이 잘 작동했는데, 어느 순간 그런 게 안 통하는 지점이 닥치더라.

 

일 못하는 이야기를 엮어 책을 만들어? 책 냈다는 얘기를 듣고 저의 첫 반응은 그랬다. 중심 필자 두 분이시니 책 만든 얘기도 듣고 싶다.

오수경 중심 필자는 아니고…. 처음에는 주간경향 연재부터 시작했다. 지금도 연재 중인 건데, “프로젝트가 생겼으니 글 쓰실 수 있는 분 연락 달라”고 해서 모인 여섯 명이 연재 칼럼을 쓰기 시작했고, 지난 봄 여러 출판사들의 제안을 받은 뒤로는 필자가 되었다. 책 기획을 듣고 나도 처음엔 “이런 걸 왜 책으로? 이게 가능해?” 싶었지만, 그래도 주간경향에 쓴 걸 조금 고치면 되겠다 싶어 하자고 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일못은 미래예측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사람들! 멋모르고 덤볐다 죽을 고생했다.
이서영 나는 그건 예측했다. 우리가 아무도 마감을 지키지 못할 것이란 거! (웃음)

 

‘일못유’에서의 나날을 잘 모르는 중년의 저로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낯선 느낌은 어쩔 수 없다. 내부자로서 ‘일못유의 매력’을 짚어주신다면?

이서영 현실세계의 반영으로서 인터넷 공간이 공적인 바깥세상보다 좀 더 눈치를 덜 봐도 되는 곳, 이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라 편하다.
오수경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공동체적 속성이 있다. 친구들의 동아리, 교회나 동호회 등이 그런 결과물인데, 인터넷 덕분에 ‘어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네’ 싶어 잘 모이는 게 아닌가 한다. 특히 ‘일못유’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많다. 실수를 하면 우주고아가 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날 빼고 소풍간 거 같은 느낌. 그런데 나와 비슷한 실수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랬지만, 다들 그런 반가운 마음에 가입을 한 거다.

 

참여사회 2015년 12월호

 

외로움이란 말을 들으니 훅 이해가 되는 느낌이다, 왜 이렇게 모였는지….

이서영 사람들은 서툰 사람과 잘 안 놀아준다. 회사에서 관계 맺기를 잘 못해도 일못이 된다. 개성이 너무 강해 다른 이들 속으로 부드럽게 녹아들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잘 못하고 서툴고 덜렁대는 사람들은 혼나는 경험을 축적하고 관계를 맺을 때 주눅 든다. ‘외로움’이라 표현한 게, 사는 게 서툰 사람들의 특성인데, 그런 이들은 고립되기 쉽다. 모두가 일 잘하길 기대하고 서툰 사람에게 관용이 없는 사회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주눅 든다”, “혼이 난다” 같은 표현을 거듭하시는데, 그 말이 ‘고립’이란 말로 이어질 수도 있다니, 일못들의 애환이 사뭇 처절하게 느껴진다.

오수경 뭘 못하는 게 자랑인 경우는 처음이 아닐까 한다. 뭘 잘해야만 한다고 몰아세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 공동체는 실수해서 올리면 더 큰 호응을 받으니까 말이다.

 

어떤 사람들이 모여 어떤 위안을 주고받는지 좀 더 들려 달라.

오수경 일못유에는 여러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지면 그에 대한 아주 다양한 견해들이 올라온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살 때는 전혀 못했던 생각들이나 문제의식을 접하면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싶은데, 자존감이 낮은 구성원들이라 그런지, 다른 생각에 대한 수용률이 굉장히 높다. “그렇군요. 제가 몰랐던 부분이네요.” 그런 분위기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일못유는 내게 아주 좋은 학습장이다.
이서영 자존감이란 있는 그대로 나를 긍정하는 것일 텐데, 그렇다면 내가 뭘 잘 하든 못하든 내 존재는 있는 그대로 중요하다고 느끼는 게 자존감 아닌가. 내가 실수를 하고 누가 그걸 비난한다고 해도, 그게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깎아 먹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이 일못유는 확실히 내 자존감을 높여주었다.

 

일못의 반대편에 있는 개념(?)이 ‘엄친아(엄마친구아들)’일 텐데, 이 엄친아라는 표현은 태생부터 폭력적이었다. 우리 애를 다른 집 애랑 비교해 손가락질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으니. 그런 폭력성에 주눅 들어 있던 이들이 여기서 얻는 카타르시스가 아주 컸나 보다. 그게 또 ‘재미’있고 말이다.

이서영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흥겹다고. (웃음)
오수경 그 유머 코드가 아주 중요하다. ‘오모리 김치찌개’라는 편의점 음식 인증샷 올릴 때도 그랬고 ‘못 나온 셀카’ 올릴 때도 그랬지만, SNS 속성상 자기 일상을 자랑해야 하는데 오히려 부끄러운 거 올려도 여기서는 환영받았다. 일못 현상을 사회적으로 분석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런 색다른 유머 코드의 역할은 퍽 의미심장해 보인다.
이서영 페이스북의 기능은 대부분 자기 자랑이다. 난 이런 좋은 음식을 먹었다, 우리 애가 이렇게 예쁘다 따위. 그런데 일못은 달랐다.

 

내 주변의 모두가 스카이라운지에 가서 으리으리하게 먹는데, 나만 편의점 음식 먹는구나 싶으면 아마 돌아버렸을 거다.

이서영 그런데 여기서는 6천 명이 넘는 일못들이 그러고 있으니까!

 

인터뷰를 준비하다 ‘아 이거로구나’ 싶었던 자료가 있었다. ‘일못 커밍아웃’ 관련된 기사였는데….

이서영 ‘일못밍 아웃’이라고 한다. ‘일밍 아웃’이라 하면 큰일난다. ‘일밍 아웃’은 일베 인증이니까. (웃음)

커밍아웃이라는 게 소수자의 선언 아닌가. 다수의 대중들을 향해 나 또한 당신들과 같은 권리를 누려 마땅한 한 인간임을 선언하면서 나와 엇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향한 관심을 호소하는 선구자적 제스처가 커밍아웃이다. ‘일못밍 아웃’이라는 상상을 하고 있는 걸 보고, ‘아, 이 단체가 이 땅의 모든 일못들에 대한 사회구조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뭔가를 해나갈 수도 있겠구나’, 그런 가능성이 보이더라.

오수경 그런 큰 일, 큰 계획에 대해서는 사실 아무 관심도 계획도 없다. 여정훈 씨에게도 “이 이슈를 가지고 어디까지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아무 계획도 없는 데요”라더라.

 

참여사회 2015년 12월호

 

계획은 없더라도 상상은 하고 있을 법한데?

오수경 “나도 일 못한다”며 재미 삼아 가입한 사람들이 어울려 나름의 의미를 찾아 흘러가는 대로 굴러온 게 오늘의 ‘일못유’다. 여기서 어떤 거창한 일을 하기보다는 ‘다른 질문이 가능한 곳’이라는 데 더 큰 의미를 두었으면 좋겠다.
이서영 그런 적은 있었다. 산업부장관이 노동개혁 관련해 일반 해고를 설명하며 “일 못하는 사람은 다 잘라야 된다”고 했다. 우리 일못들에게 ‘업무저성과자’라는 딱지를 붙였던 건데, 그때 우리 정말 발끈해서 성명서까지 써서 주간경향에 발표했다. 잘 계획했다고 한 지방의 혁신도시들, 가보니 휑하기만 하더라. 우리 뜻대로 구성되지 않은, 걸어다니는 게 즐거운, 구비를 돌 때마다 계속 새로운 경험을 하게 만드는 강북의 골목길, 파리의 골목길 같은 게 ‘일못유’ 아닐까? 일반해고 때 그랬듯이, 우리 일못유도 유기적인 도시를 만들 듯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연적인 방식으로 재미나게 뭔가를 만들 수 있을 거다. 이런 방식, 되게 즐거울 거 같다.

 

그 칼럼이 생산되는 과정도 흥미로웠을 거 같다.

이서영 업무저성과자 얘기에 댓글이 엄청 달렸다. 아 살지 말라는 거네요, 죽으러 갑니다 등등.(웃음)
오수경 웃고 얘기하지만, 저희한테는 엄청 절박했다.

 

자연스레 성명서로 가는 동력이 모였겠다?

이서영 그래서 제가 성명서 겸 칼럼 초안을 잡아 올렸고, 공개적으로 의견을 받아 그걸 반영해 수정하는 방식으로 성명서를 냈다.

 

일을 못하면 조직에 해를 끼친다는 인식도 팽배하다. 조직에 순응하는 과정을 그린 <미생>, 조직을 바꾸려고 저항하는 드라마인 <송곳>, 두 드라마의 이야기 구조를 대조시켜 얘기하기도 하던데?

이서영 “내 처지는 비참하고 세상엔 부당한 게 많다. 하지만 나는 내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라는 욕망을 담아낸 게 <미생>이다. 이런 욕망에서 뛰쳐나가는 얘기를 다루며 시스템의 한계를 얘기하는 게 <송곳>이고. 우연의 덩어리인 ‘일못유’를 이렇게 끌고 나가겠다고 누가 나서는 건 어려울 테지만, <미생>과 <송곳> 둘 다를 긍정하는 건 아주 중요할 거다. 시스템의 한계가 분명하듯, 우리 가치를 긍정하고픈 욕망도 분명하다. 그런 두 가지를 모두 긍정하는 커뮤니티가 된다면 성공 아닌가 싶다.

 

결국 일을 잘한다, 못한다는 규정을 두고 모이신 거니, 우리 사회에서 일을 한다는 것, 노동의 문제를 결국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한데?

오수경 전순옥 의원실에서 연락이 와서 청년의 문제, 노동자의 문제를 얘기 듣고 싶다며 간담회 제안을 했다. 일못 오프모임에서 직장생활 하며 쌓인 분노를 태워 없애는 ‘분노 촛불’ 이벤트도 있었고, EBS와 노동문제 관련 인터뷰를 진행해 방송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여정훈 씨에게 아주 여러 군데서 제안을 주고 있는 상황이어서 계속 공유해나가며 모임이 이어질 것 같다.

 

 

모두가 1등일 수는 없다. 앞서가는 사람 뒤로는 처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늘 있다. 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 일터에서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처지는 이들을 기다려주지 않고 “넌 일못이야!”란 굴레를 씌우고, 이어서 “난 일못이구나”란 자괴감에 짓눌려 살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사회적 기준으로 볼 때 찌질하기 짝이 없는 실패담들을 당당하게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한 일못유처럼 느린 사람들끼리 공감하고 위안을 나누고, 재미있게 배움을 얻어 함께 가는 게 더 나을까?
당신도 세렌디피티Serendipity, 우연이 가져다주는 재미있는 체험들의 연속의 힘을 믿는다면, 이처럼 적극적으로 ‘색다름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낼 우연의 오케스트라가 장차 멋진 춤사위로 이어질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놀릴 줄 아는 당당한 사람들의 집단적 커밍아웃에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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