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12월 2015-11-30   1692

[정치]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당인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당인가?

 

글. 이용마 MBC 해직기자
정치학 박사.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관악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부지런함의 공존 불가를 절실히 깨닫고 있는 게으름뱅이.

 

“…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자영업자, 중소상공인들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

 

198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을 맨 처음 들었을 때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대중 유세 때마다 이 말을 거의 반복하다시피 했다. 대학 초년생에게 이 말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대중 정치인의 입에서 ‘노동자’라는 말이 서슴없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노동자’라는 용어는 소위 ‘좌경용공 세력들’이나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국가가 공인해준 ‘근로자’라는 말이 있는데….

 

한 가지 더 특이했던 점은 청중을 향해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자영업자, 중소상공인…”이라고 꼬박꼬박 호명을 한 것이다. 순서 역시 거의 한결같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텔레비전을 통해 자주 언급한 ‘국민여러분’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에게는 이 또한 생소했다.

 

노동자·농민·도시빈민 등 주체의 호명이 갖는 의미
당시 정치인 김대중이 사용한 담론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우선 국가공인 용어인 근로자 대신 노동자라는 말을 고집함으로써 독재정부에 대한 저항의식을 표현했다.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를 거치면서 ‘노동’이라는 말은 ‘빨갱이’와 동일시되며 사라졌다. 문제는 용어와 함께 노동자들이 누려야할 기본권마저 실종된 것이다. 노동자들은 경제성장, 기업성장을 위한 도구로서 아무리 억압받고 착취를 받아도 기본권을 주장하지 못했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계기로 봇물이 터진 노동자들의 저항은 이 배경에서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라는 말의 사용은 노동자의 기본권 복원을 함축하고 있다.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각 주체의 호명이 갖는 의미 또한 매우 크다. 연설을 듣는 각 주체의 입장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확히 인식함으로써 자신들에게 맞는 정치경제적 요구를 할 수 있게 된다. 또 정치지도자나 정당의 입장에서도 자신들이 만드는 정책의 대상을 정확히 함으로써 소위 ‘맞춤형 정책’을 생산할 수 있다. 이는 또한 특정 정당이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에 주력하는지 쉽게 구분할 수 있게 한다. 각 정당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것이다.

 

참여사회 2015년 12월호

‘중산층과 서민’의 모호함 속에 숨어버린 야당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자영업자 등을 부르던 호칭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나 그 지도자들은 더 이상 노동자와 농민 등을 호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는 ‘중산층과 서민’이란 용어가 들어섰다. 야당은 스스로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중산층과 서민이 도대체 누구인지 모호하다는 점이다. 야당이 위한다는 중산층과 서민에 자신이 포함되었다고 믿는 사람들 역시 별로 없는 것 같다. 야당이 대외적으로 표명한 강령에는 중산층과 서민이란 용어도 없다. 재벌정당의 역할을 하고 있는 새누리당과 마찬가지로 ‘모든 국민’을 위한다는 포괄적인 표현만 남아 있다.

이런 모호함 속에는 정책 또한 구체적일 수 없다. 전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면서 국가경제의 성장을 최우선시하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기업이 잘 되어야 하고, 노동자들의 반발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그 결과 박정희 정부 이래 지속되어온 재벌 주도의 경제성장 정책으로 끊임없이 회귀한다. 여야 정당의 정책적 차이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야당이 중산층과 서민이란 담론 뒤에 숨으면서 노동자와 농민 등 기층 민중과 거리를 두는 모습은 이제 일상화되었다. 지난달 영호남을 떠나 전국에서 모인 노동자와 농민, 도시빈민, 학생 등이 민중총궐기 대회를 열었지만 야당의 모습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를 비난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정도로 야당의 존재감은 사라져버렸다.

야당이 계승하고 있음을 자처하는 김대중은 끊임없이 기층 민중을 호명하며 지역을 가로지른 연대를 시도했다. 그 결과 빨갱이로 매도당하기도 했지만, 자신과 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최소한 영남의 노동자, 농민 등과 소통을 했다. 그런데 지금 야당의 정치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말로만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지 말고 구체적으로 보여야 한다. 당신들은 왜 정치를 하는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 정체를 분명히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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