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3월 2015-03-02   1164

[특집] 핵산업계의 마지막 각축장이 된 동아시아

특집 원전, 이제는 멈출 때

 

 

핵산업계의 
마지막 각축장이 된 
동아시아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참여사회 2015년 3월호 (통권 220호)

 

종주국 미국에서도 쇠퇴하고 있는 핵산업

2011년 일본에서 일어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핵산업은 이미 쇠락하고 있다. 1970년대 석유파동 등 에너지 위기를 거치면서 가파르게 상승하던 핵발전소 개수는 1980년대를 거치면서 그 상승세가 한 차례 꺾였다.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사고와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는 핵산업계가 자랑하던 안전성 신화를 완전히 깨뜨렸다. 이후 핵폐기물 처분과 폐로 과정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비용 등이 제기되면서 경제성 신화까지 무너지면서 핵산업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러한 경향은 미국과 유럽에서 폭넓게 벌어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핵발전 기술을 개발한 종주국임에도 1979년 스리마일 사고 이후 수십 년 동안 신규 핵발전소 건설이 중단되었다. 부시 행정부가 사고 책임 범위 제한, 세제 혜택 등 핵발전에 대한 각종 지원을 쏟아 부으면서 신규 핵발전소 건설이 재개되었지만, 그 사이 한때 104개에 이르던 핵발전소 개수는 현재 99개로 오히려 줄었다. 1970년대 집중적으로 지어진 핵발전소들이 경제성 문제로 하나 둘 폐쇄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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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세계 최대의 핵발전 시장

하지만 이런 탈핵흐름이 동아시아에서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각국은 핵발전소를 둘러싼 논쟁에도 불구하고 신규 건설과 재가동 정책을 멈추지 않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핵발전소 건설에 몰두하고 있는 곳은 중국이다. 중국은 최근 ‘2014~2020년 에너지발전전략 행동계획’을 통해 석탄 소비 비중을 62%까지 줄이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는 그간 문제가 되었던 환경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인데, 천연가스, 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에너지원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핵발전 비중도 올리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중국의 전체 전력 중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1.1% 수준인데, 이를 2020년까지 1.8%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비중으로만 본다면 크지 않지만, 중국의 에너지 소비 규모를 볼 때 굉장히 큰 숫자다. 이 비중을 맞추기 위해 중국은 핵발전 설비용량을 2020년까지 5,800만kW 늘려야 한다. 이는 핵발전소 58기 분량으로, 2013년 핵발전 설비용량 1,471만kW와 비교하면 4배나 많은 수치다. 

세계 핵산업계가 침체된 상황에서 중국은 단연 ‘핵산업계의 희망’이다. 현재 전세계에서 건설 중인 핵발전소의 37%가 중국에 건설되고 있으며, 향후 100여 기 이상의 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갖고 있는 국가도 중국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은 기존에 보급 중인 3세대 핵발전소 이외에도 액체금속로, 흑연로 등 차세대 핵발전소 연구도 활발히 벌이고 있다. 그동안 전세계에 건설되었던 모든 핵발전소를 건설·운영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차세대 핵발전소는 수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특집4-표2

 

끊임없이 핵발전소 재가동을 추진하는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겪은 일본은 2013년 9월 이후 1년 반 동안 모든 핵발전소가 멈춘 ‘핵발전소 제로’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일본은 지금까지 전력위기 없이 잘 지내고 있다.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절전 노력을 하고, 유휴 발전설비 등을 가동해서 전력수요를 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핵발전소 재가동을 위한 정책을 멈추지 않고 있다. 가고시마 현의 센다이 핵발전소와 후쿠이 현의 다카하마 핵발전소 재가동을 위한 안전심사를 마친 상태이다. 두 발전소 모두 법적 절차는 마쳤지만, 여론 반발을 의식해 수개월째 재가동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끔찍한 핵발전소 사고로 인해 일본 국민들의 핵발전소 반대 여론은 뜨겁다. 작년 일본 정부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94.4%의 일본 국민이 ‘탈핵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반면 ‘핵발전소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1.1%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핵발전소 재가동을 추진하는 것은 정책결정에 핵산업계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에 해당하는 일본 경제인단체연합(경단련)을 비롯하여 핵발전소를 소유하고 있는 9개 발전사업자는 모두 핵발전소 재가동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전기요금 인상과 경제 활성화를 근거로 들고 있지만, 핵발전소 재가동이 된다고 해도 전기요금이 인하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는 없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인상된 전기 요금은 후쿠시마 핵사고 재해 복구비용과 높아진 안전규제 비용이 전기요금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멈추었으나, 갈 길이 남은 대만

1990년대부터 시작된 대만의 제4핵발전소(룽먼 핵발전소) 반대운동은 작년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대만 각지에서 벌어진 수십만 명의 핵발전소 반대 시위는 공정률 98%에 이른 룽먼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겠다는 마잉주 대만 총통의 선언을 이끌어 냈다. 

대만의 수도 타이페이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신타이페이 등 대만 수도권 인근에만 4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에 있다. 그 인근에 건설 중인 룽먼 핵발전소 2기까지 합해 모두 6기의 핵발전소 반경 30km에 살고 있는 사람은 무려 540만 명. 대만은 일본만큼이나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나라다. 대만 국민들에게 일본에서 일어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바로 자신들의 미래로 다가왔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전 소수 환경단체의 운동에 머물렀던 탈핵운동은 전 국민적인 반향을 이끌어냈고, 가정주부부터 유명 연예인과 정치인이 함께하는 대중운동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대만 정부 역시 완전한 탈핵을 선언하지는 않았다. 룽먼 핵발전소 가동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에서 기존 6기의 핵발전소 수명연장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부의 흐름에 대해 대만 국민들은 당연히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탈핵정책 이외에도 중국과의 관계 문제로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힌 대만 마잉주 정권에 대한 불만은 내년으로 다가온 총통선거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대중적인 탈핵운동을 통해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아직 완전한 탈핵을 이루지는 못했기에 앞으로 대만 탈핵운동의 움직임이 더욱 주목된다.

 

참여사회 2015년 3월호 (통권 220호)

 

동아시아 탈핵이 전 세계 탈핵으로 나아가는 지름길

우리나라 역시 현재 23기의 핵발전소를 2035년까지 40여기 이상으로 늘리기 위한 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5개 핵발전소 부지 이외에도 영덕, 삼척 등 신규 핵발전소 부지가 필요하다. 

핵발전소를 둘러싼 동아시아 각국의 상황은 너무나 다르다. 핵발전소 사고 이후 재가동을 추진 중인 일본과 대규모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는 중국, 국민 반발에 부딪혀 거의 완공된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한 대만, 아직도 노후 핵발전소와 신규 핵발전소 논란에 빠져 있는 한국까지 인근 나라지만 너무나 다른 상황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핵산업계에서 동아시아는 마지막 남은 ‘희망’이라는 점이다. 전 세계 신규 핵발전소 건설 물량의 절반이 이들 4개 나라에 몰려 있다. 바꿔 말하면, 동아시아에서 핵발전 정책 변화가 이뤄진다면 지구상에서 핵발전을 둘러싼 논쟁을 끝낼 수 있다. 단지 우리 앞마당의 핵발전소가 불안한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에서 위험을 안고 운영되고 있는 핵발전소를 멈추고 싶다면, 우리나라의 정책부터 바꿔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헌석

1999년 청년환경센터(현 에너지정의행동의 전신)를 설립하는 참여해서 현재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반핵국민행동 사무국장,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공저로 <기후변화의 유혹, 원자력>, <탈핵 : 포스트 후쿠시마와 에너지 전환 시대의 논리>, <탈핵학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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