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자] 모든 노래가  똑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해도

 

모든 노래가 
똑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해도

 

 

글.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과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민중의소리’와 ‘재즈피플’을 비롯한 온오프라인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공연과 페스티벌 기획, 연출뿐만 아니라 정책연구 등 음악과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다양하게 하고 있기도 하다. <대중음악의 이해>, <대중음악 히치하이킹 하기> 등의 책을 함께 썼는데, 감동받은 음악만큼 감동을 주는 글을 쓰려고 궁리중입니다. 취미는 맛있는 ‘빵 먹기’ 입니다.

 

2016년 12월 24일 토요일로 촛불집회가 9주째 되었다. 촛불집회를 이루고 있는 것을 굳이 나누면 시민들, 촛불, 광장, 무대, 행진, 말, 피켓, 영상, 노래, 마음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해도 노래는 빠질 수가 없다. 생각해보면 시민들이 공동체와 민주주의를 위해 모였을 때 노래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1987년 6월 항쟁 때는 <아침이슬>과 <애국가>, <훌라송>이 있었다. 1991년 5월 투쟁, 2002년 미선이·효순이 촛불집회, 2004년 탄핵정국,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에도 마찬가지다. 그 때마다 상징적인 노래가 있었다. 노래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모인 사람들을 대변했으며, 대표했다. 

 

시민들의 열망을 대변하는 노래
노래 자체의 힘 때문이다. 노래는 참 묘한 것이다. 노래는 고작 3분에서 5분 정도의 길이에도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할 뿐만 아니라 듣는 이들을 공감하게 하고 설득한다. 말에 멜로디와 리듬을 붙였을 뿐인데 그 영향력은 일반적인 말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윤민석의 노래 <헌법 제 1조>를 떠올려 보라. 딱딱한 헌법 문구가 경쾌하고 낙관적인 노래에 실리면서 헌법은 비로소 시민 모두의 것이 되었다. 

1980년대와 90년대에는 민중가요가, 2000년대에는 더 많은 대중음악이 시민들의 열망을 대변하고 있는 중이다. 1980년대와 90년대의 운동은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 시민운동처럼 조직된 운동 세력이 주도했다면 2000년대의 운동은 다수의 시민대중들이 이끌고 있다. 이는 1980년대 이전부터 지속된 다양한 운동의 결과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민주주의 의식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권력을 가진 자본과 정치, 검찰, 언론을 비롯한 기득권 세력들만이 과거에 안주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광장의 노래도 바뀌었다. 연행과 구속, 압수와 판매 금지를 각오한 이들만이 권력을 비판할 수 있었던 시대가 가고 누구나 권력을 비판할 수 있게 되면서 광장이 열렸고 그 광장에는 더 많은 노래와 음악이 깃들었다. 민중음악인들 곁에 비판적인 대중음악인들이 먼저 손을 잡았다. 그리고 주류 대중음악 시장에 반발해 인디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음악인들도 광장으로 나와 자신의 노래로 함께 했다. 2016년 겨울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폭로된 후에는 더 많은 음악인들이 노래로 분노를 토해냈다. 비판적인 노래를 만들지 않은 음악인들도 음악인 시국선언에 함께 하거나, 곳곳에서 열리는 촛불집회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무대 아래에서 촛불을 들었다. 

단일 사건에 대한 노래로 가장 많은 노래들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이게 나라냐 ㅅㅂ>을 비롯한 노래들은 곳곳의 광장에서 울려 퍼졌다. 평소에는 정치적 의제를 위한 무대에는 오르지 않았던 음악인들도 기꺼이 무대에 올라 자신의 노래를 불렀다. 굳이 노래로 말하지 않았을 뿐 늘 비판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던 음악인들이거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똑같이 공분한 음악인들이었다. 

 

듣자-서정민갑

촛불 집회에서 노래를 들으며 즐거워하는 시민들. ⓒ오마이뉴스

 

사회 문제와 의견을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어야
광장은 사랑노래나 젊음의 노래마저도 만인의 애틋함과 간절함을 담는 노래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음악인들 역시 함께 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 자신의 노래를 과감하게 포기하기도 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유명 음악인들이 등장하기도 했고, 잘 몰랐으나 광장을 통해 비로소 존재를 널리 알린 음악인들도 여럿이다. 어쩌면 음악인들의 마음 속에는 이렇게 많은 이들 앞에서 노래를 함으로써 자신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노래들은 비판과 혐오를 구분하지 못함으로써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광장은 그 모든 마음을 품고 역사의 중심으로 흘러가는 중이다. 그 길에서 음악은 시대의 거울이자 촛불처럼 환한 희망이 되고, 뜨끈한 국물처럼 든든한 응원이자 활활 타오르는 횃불처럼 들끓는 열기가 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다시 저항음악이 힘을 얻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광장의 노래는 이미 오래전부터 열려있었고 다채로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광장의 주인이 따로 있지 않듯 저항음악과 저항음악인이 따로 있을 필요도 없다. 물론 누군가는 비판과 저항만을 줄기차게 노래할 필요가 있겠지만 동시에 누구나 촛불을 들 듯 어떤 음악인이든 자신의 생활과 삶속에서 느끼는 문제를 노래로 표현하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되지 않는 편이 낫다. 10대로서, 여성으로서, 중년으로서 혹은 또 다른 정체성과 생각을 가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느끼고 생각하는 사회적 문제와 의견을 아무렇지도 않게 노래로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이야말로 가장 멋진 세상이 아닐까. 

사실 여전히 인기 때문에, 은근한 압력 때문에, 예상되는 반발 때문에 말하고 노래하기를 주저하는 음악인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노래는 아직 자신의 삶에 깃든 시대와 정치와 권력과 폭력을 모두 다 내밀하고 적확하게 말하지는 못하고 있다. 박근혜와 최순실만을 겨냥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의 박근혜와 최순실을 응시하거나 기록하고 겨냥한 노래들이 흔하게 이어질 때 세상은 좀 더 살만해질 것이다. 당연히 모든 노래가 똑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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