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06월 2017-05-30   641

[환경] 시민의 새로운 마음가짐

시민의 새로운 마음가짐 

 

글. 장성익 환경 저술가
녹색 잡지 <환경과생명>, <녹색평론> 등의 편집주간을 지냈다. 지금은 독립적인 전업 저술가로 일한다. 환경 분야를 비롯해 다양한 주제로 책 집필, 출판 기획, 강연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요술 지팡이’는 없다
지난해 9월 대기오염으로 악명 높은 베이징에 ‘스모그 프리 타워Smog Free Tower’란 게 등장한 적이 있다. 도시 속에 조형물처럼 세워진 일종의 대형 옥외 공기청정기라고 할 수 있다. 이온 관련 기술을 활용해 공기 중의 스모그나 미세먼지를 빨아들여 정화한 뒤 깨끗한 공기를 내뿜는다. 높이 7m에 이르는 이 구조물은 시간당 주변 3만㎥ 지역의 공기를 약 60%까지 정화할 수 있다고 선전되었다. 필터로 걸러낸 오염물질을 압축해서 얻은 탄소 물질을 고열로 가공하면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도 한다. 베이징의 공기는 맑아졌을까? 천만에. 설치한 지 50일쯤 뒤에 측정해보니 타워 주변의 공기조차 제대로 정화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세먼지를 일으키는 원인은 아주 다양하며, 그것들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 기발한 첨단 기술 같은 한 방의 쌈박한 대책으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지구촌 최대의 환경 현안인 기후변화도 다르지 않다. 과학자들은 지구 온도를 빠르게 낮추고 대기 중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여러 기술적 방안을 궁리해왔다. 그 가운데 최근 도드라지는 것이 지구의 기후 시스템에 대한 거대한 기술공학적 개입이다. ‘지구공학’ 또는 ‘기후공학’이라 불린다. 여기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지구로 오는 태양빛을 막거나 반사시켜 지구 온도를 낮추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연의 이산화탄소 흡수 작용을 인공적으로 늘리거나 별도의 장치를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없앰으로써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방법에는 공통점이 있다. 첨단 공학 기술과 막대한 자본을 동원해 지구 생태계와 기후의 특성을 대규모로 조작한다는 게 그것이다. 

 

월간 참여사회 2017년 6월(통권 246호)

스모그 프리 타워

 

예를 들면 이런 거다. 햇빛을 반사하는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비행기, 로켓, 대포, 풍선 등을 이용해 대기 중 일정 공간에 이산화황 같은 미세입자를 대량으로 살포하자는 아이디어가 꼽힌다. 그렇게 퍼져 나간 입자들이 지구로 내리쬐는 햇빛을 반사하면 지구 온도를 빠르게 낮추는 데 효과가 있으리라는 것이다. 바다 위의 구름을 조작하는 방안도 있다. 바닷물을 분사하는 배를 띄워 바람의 힘을 이용해 수분을 하늘로 더 많이 공급하면 구름의 양이 늘어나 햇빛을 더 잘 반사하게 될 거라는 아이디어다. 우주 공간에 거대한 반사체를 설치하자, 사막을 햇빛을 잘 반사하는 물질로 뒤덮자, 건물 지붕을 모두 흰색으로 칠하자 등과 같은 제안들도 나오고 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없애는 방안 가운데 대표적인 건 바다에 식물성 플랑크톤의 성장에 필요한 영양물질을 대량으로 살포하자는 아이디어다. 영양물질이 뿌려지면 바다 표면 가까이에서 광합성을 하는 플랑크톤이 아주 빠르게 증식하면서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대량으로 흡수하리라는 것이다.

이런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까? 글쎄, 아마도 국지적이고 일시적으로는 얼마간의 효험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구는 실험실이 아니다. 아주 복잡하고 정교한 관계 속에서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는 지구 기후와 생태계를 대상으로 인위적인 거대 실험을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위험하고 무모한 짓이다. 예측하지 못한 중대한 환경 피해나 치명적인 돌발 사태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이를테면, 플랑크톤 대량 번식은 바닷물 산성화와 바다 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산화황 대량 살포는 지구 생명체를 자외선으로부터 지켜주는 오존층을 파괴할 수 있다. 이산화황이 빗물에 섞여 땅으로 떨어지면 지상 생태계에 피해를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햇빛을 반사하는 방안들은 강우량을 감소시켜 식량 생산이나 일상생활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거대 지구공학 기술이 ‘금지된 장난’으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잘 알다시피 기후변화는 무한 성장의 깃발 아래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 시스템을 동력으로 하여 굴러가는 현대 자본주의 산업문명의 본질과 직결돼 있는 문제다. 물질의 풍요와 편리하고 안락한 삶에 길든 현대인의 낭비적 생활양식과도 깊이 맞물려 있다. 더군다나 기후변화는 지구 전체에 걸친 문제다. 나라마다 처지와 이해관계가 제각각이다. 그만큼 통일된 해법이나 효율적인 대응책을 강구하기가 어렵다. 요컨대, 미세먼지와 마찬가지로 기후변화도 지구공학 같은 한 방의 ‘요술 지팡이’로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세상은 얼마나 달라질까?
자연의 일이 이럴진대 사람의 일이라고 다르랴. 문재인 새 정부가 돛을 올렸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초기 행보는 자못 인상적이다. 참신하고도 파격적인 인사, 개혁 정책의 발 빠른 추진, 국민과의 소통과 어울림, 대통령의 소탈하고 겸손한 탈권위적 언행 등 여러 측면에서 많은 국민이 모처럼 정치적으로 상쾌한 기분을 맛보고 있다. 이제 세상은 진짜로 달라지는 걸까? 달라진다면 얼마나 달라질까? 나는 조심스럽다. 낙관하지 않는다. 미세먼지나 기후변화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줄 마법 같은 묘책이 없듯이 정권교체 자체가 저절로 세상을 바꾸는 요술 지팡이가 될 순 없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난마처럼 뒤얽혀 있는 온갖 적폐를 청산하고 제대로 된 개혁을 이루는 일이 쉬울 리가 있겠는가. 오류와 실수, 한계와 함정, 실패와 좌절, 특히 수구 기득권 적폐 세력의 극렬한 반발과 저항 등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그 멀고도 험난한 가시밭길을 꿋꿋이 걸어갈 지혜와 용기, 그리고 실력을 문재인 정부는 얼마나 갖추고 있을까? 문재인 정부 아래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거듭남과 전면적인 탈바꿈은 얼마나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래서 다시금 확인한다. 이번 정권교체는 새 집권세력이 뭘 특별히 잘해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오롯이 ‘촛불 시민혁명’의 열매라는 사실을 말이다. 주권자인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이 문재인 정부다. 문재인 정부의 주인은 대통령이나 특정 정치세력이 아니다. 시민이다. 중요한 것은 새 정부의 성공 여부가 아니라 세상의 실질적인 변혁이다. 필요한 것은 갈채 받는 대통령이 아니라 내 삶의 구체적인 변화다. 정권도 바뀌고 새 대통령이 일도 잘하는 듯하니 이제 시민은 박수치면서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가? 아니다. 주인이 구경꾼이나 관객이 되어선 안 된다. 정치의 생산자가 소비자가 되어선 안 된다. 변함없이 ‘참여’하고 ‘연대’해야 한다. ‘촛불’은 광장을 가로지르고 정권교체를 넘어 새로운 형태와 방식으로 끊임없이 진화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그리고 이것이 새로운 민주정부의 출범을 가장 뜻깊게 축하하는 길이자 그 의미를 옹골지게 새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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