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07-08월 2019-07-01   2389

[여성] ‘첨밀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까지

‘첨밀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까지

 

여느 때처럼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웠다. SNS 타임라인에서 몇몇 뉴스를 건져보는 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모여 있는 한 영상에 눈길이 멈췄다. 범죄인인도법안(이하 ‘송환법’) 때문이었다. 중국을 포함해 대만, 마카오 등 송환법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하겠다는 데 반대한다고 했다. 곧 익숙한 멜로디가 귀에 들려왔다. 분명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가사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중국 표준어인 보통화(普通話)라면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었겠지만, 이 언어는 홍콩 당지의 광동어(廣東語)였다.

 

그런데 완전히 생소한 느낌은 아니었다. 홍콩은 지금의 용법이라면 ‘항류(港流)’로 친숙한 곳이었다. 1980년대까지 동아시아에서 홍콩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만큼이나 각광받았다.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 양조위, 곽부성 등의 이름이 낯설지 않은 이들이라면 알 것이다. 그러나 1997년 홍콩이 영국 ‘제국’에서 중국 ‘본토’로 반환된 이후, 보통화와 다른 광동어를 들을 기회는 줄어들었다. 낯섦과 익숙함 사이, 세기말 이벤트였던 홍콩반환식이 한국에 중계되기 몇 달 전 개봉한 영화가 떠올랐다. 바로 <첨밀밀(甛蜜蜜)>(1996)이다.

 

영화 <첨밀밀>과 세기말 홍콩이라는 시공간

간간이 전해지는 동아시아 이웃 도시의 뉴스를 찾아보며 오랜만에 영화를 재생시켰다. 주인공 이요장만옥 분와 소군여명 분이 자전거를 타고 홍콩의 번화가를 누빈다. 이요는 세련된 광동어로 홍콩에선 “차(車) 있어요”가 진짜 자동차를 뜻한다고 면박을 준다. 그러나 보통화만 가능한 촌스런 소군은 얼마 가지 않아 그의 하나 밖에 없는 친구가 된다. 이 둘은 미래를 위해 영어를 배우지만, 일상에서는 자신들의 언어로 번갈아 가며 소통한다. 그리고 등려군(鄧麗君)의 <첨밀밀>이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1983년까지 정치적 이유로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금지되었던 노래였다.

 

그러나 ‘꿀처럼 달고 달다’라는 제목의 뜻과 달리 영화는 달콤한 로맨스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홍콩이라는 자본주의 실험장에서 중국 출신 남녀 주인공이 겪는 갖은 고난에 초점을 둔다. 이들의 쓰디쓴 인생은 수난에 가까우며, 결국 태평양 건너 아시아로부터 멀리 떨어진 미국까지 흘러간다. 결국 <첨밀밀>은 청춘의 한 쌍이 세기말 홍콩이라는 공간을 경유해서 초국적(transnational) 주체로 거듭나는, 매끄럽지 않은 단면들을 그려내고 있다. 둘의 사랑은 계속 엇갈리다가 결국 먼 훗날 ‘아메리카’에서나 성취될 수 있었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7-8월 합본호(통권 267호)

1986년 홍콩을 배경으로 청춘들의 운명적인 만남을 그린 영화 <첨밀밀>

 

한국에서도 IMF 금융위기를 목전에 두고 영화 주제곡인 <첨밀밀>뿐 아니라 여명이 꽤 인기를 누렸다. 급속한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이요처럼 어떤 여성들은 뛰어난 수완과 재주로 일정 부분 성 역할을 전복한다. 그러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최대 역량을 발휘할수록, 여성에게 경제적 몰락은 더 빨리 도래하기도 했다. 이러한 여성들에게 소군처럼 순박한 남성이 결국 곁에 남을 것이라는 상상은 위로가 될 수 있다. 사랑의 효능을 믿는 것은 세기말 불안을 잠재우는 방법이기도 했다. 누구나 근대적 개인으로 로맨스의 주체가 되리라는 것이 당대의 정언명제(定言命題)였다. 

 

낯선 목소리들의 익숙한 멜로디 <임을 위한 행진곡>

다시 ‘반송중(反送中), 중국으로의 송환을 반대합니다’시위로 돌아오면, 실제 우려되는 것이 반反중국 인사에 대한 탄압이라고 했다. 이는 2024년까지 보장한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제대로 시행하라는 2014년 우산혁명의 주장을 잇는다. 또한 2015년 대만에서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을 졸속으로 통과시키는 데 반대했던 해바라기 운동과도 공명한다.

 

이처럼 최근 동아시아의 대중시위는 한국의 촛불 시위까지 포함해 청년들이 중심이다. 이들은 세대 재생산을 위한 일국가적 인구정책의 타깃이 아니라, 국가와 경합하는 시민으로 초국적 주체가 되려고 한다. 단지 이성애 연애에 기반한 정상 결혼과 자녀 출산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체성을 가진 정치적 개인으로 살아갈 것인지 자문하는 것이다. 작은 나라의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가질수록, 국경을 넘는 연대의 순간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이것이 1980년 한국 5·18 민주화운동에 등장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 2019년 홍콩에서 불린 이유이다.

 

그렇다고 했을 때, 몇 년 전 <첨밀밀>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이제야 보인다. 바로 홍콩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 홍콩의 청년이 부재한다는 점이다. 이때 주목되는 인물이 바로 소군의 고모이다. 그는 홍콩이 가장 화려했을 시기, 미국 영화배우 윌리엄 홀덴과 나눴던 단 한 번의 식자 자리를 잊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말은 평생 허풍과 거짓말로 여겨진다. 평생 할리우드로 상징되는 서구문화를 동경했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작은 집에서 눈 감는다. 이 여성이 바로 소멸해가는 존재로서 홍콩을 비유하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지금 인구 7백만 중 1백만이 훌쩍 넘는 인파가 쏟아져 나온 홍콩의 광장을 목도한다. 시위대 중 많은 이들은 10대를 포함한 젊은 층이다. <영웅본색>(1986)에서 흑사회(黑社會)가 지배하던 홍콩의 어두운 골목은 <첨밀밀>에서 금융자본이 유통되는 환한 거리가 됐다. 이제 골목과 거리, 그리고 광장에서 이 청년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도 그중 하나일 뿐이다. 이 익숙한 멜로디에 얹힌 낯선 목소리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탈/식민과 신냉전이 교차하는 복잡한 동아시아의 장에서 어떤 노래를 같이 부를지, 이제 우리가 고민해야 할 순간이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7-8월 합본호(통권 267호)

지난 6월 9일부터 홍콩 시민들이 중국 정부가 추진 중인‘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위키피디아

 


글. 류진희 성균관대 강사 

동아시아학과에서 한국문학을 전공했다. 탈/식민 서사, 장르, 매체를 횡단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와 매체/장르/언어를 횡단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관심 있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소녀들』,『그런 남자는 없다』를 같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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