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09월 2019-09-01   2733

[특집] 질병장사 : 건강과 질병의 상품화에 대하여

특집_질병사회

질병장사 :
건강과 질병의 상품화에 대하여

글. 변혜진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위원 

 

 

질병판매

ⒸPLOS Medicine, Anthony Flores

 

몇 해 전 미국정신건강의학저널에 우리나라 취학아동 38명 중 1명이 자폐에 시달리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게재된 적이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더 많은 인구집단 아동으로 확대할 경우 한국 자폐아동은 실제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같은 연구결과를 두고 정신진단을 위한 공식 안내서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에 참여한 앨런 프랜시스 정신의학 전문의는 “미국에서는 80명 중 한 명 꼴로 자폐아 진단이 늘어나고 있는데, 놀랍게도 한국에서는 38명 중 한 명 꼴로 자폐아 진단이 늘고 있다”며, 이런 통계들은 정신진단 관행이 급변했기 때문이지, 아이들이 갑자기 더 자폐적으로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DSM-Ⅳ가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새 진단명을 수록함으로써 자폐증 개념의 폭을 넓힌 탓이 크다는 것이다.

 

제약회사가 당신의 질병을 만들어내고 있다  

 

“마음이 산란하십니까? 부주의하십니까? 좌절을 느끼십니까? 단순히 현대인의 숨 가쁜 삶 때문일까요? 어쩌면 성인 주의력결핍장애인지도 모릅니다. 많은 성인이 성인 주의력결핍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왜일까요? 왜냐하면 그 증세들이 가끔 스트레스가 많은 삶 때문이라고 오해를 받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한번쯤 겪어보았을 일상의 감정과 징후를 ‘질병’이라고 말하는 위 광고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이하 ‘ADHD’) 치료제인 스트라테라Strattera 제조사 릴리Lilly의 홍보 문구다. 국민건강보험 자료를 보면 2018년 한 해 성인 ADHD 20~29살 환자가 40.9%로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8세까지만 보험적용 되던 ADHD 치료제들이 65세까지 확대 적용된 탓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꼭 필요한 사람들에겐 잘된 일이지만, ADHD에 대한 과잉진단이 과학적 근거에 기댄 것만은 아니라는 비판도 무시할 수 없다. 

 

링컨메모리얼대학 조너선 리오 교수는 「ADHD, 질병과 마케팅 사이」 라는 논문을 통해 “미국 아동의 ADHD 비율이 통상 5~10%라고 주장하지만, 주마다 너무 차이가 나며, 영국으로 가면 아예 그 비율이 0.03%로 곤두박칠 친다”고 지적한다. 이 차이를 설명할 근거나 논리가 없다는 것이다.

 

앨런 프랜시스는 정신의학 전문가들이 과학적 근거보다 제약회사의 ‘교육’ 과 ‘연구’ 라는 새로운 마케팅에 동원되어 ‘정신병 산업’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언제부턴가 ‘위험’이 있다는 것이 ‘질병’이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되었다”는 것이다. 주의력결핍장애ADD가 과잉행동을 하는 아동으로까지 진단 범위가 확대되어 ‘주의력결핍장애 과잉행동장애’가 되면서 두 배 더 많은 아동들이 ADHD 환자가 되었고, 성인으로까지 확장되면서 성인들의 가장 흔한 ‘만성정신질환’ 이 됐다. 이러한 진단 인플레이션 덕분에 ADHD 제약회사의 처방약 판매도 덩달아 늘어났다. ADHD가 성인까지 이어진다는 진단의 확장은 평생에 걸쳐 약을 먹게 만들 시장을 열어주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ADHD의 세계적 유행 뒤엔 치료제를 판매하는 제약회사들의 마케팅 역할이 실제 컸다. ADHD 치료제로 가장 많은 처방약을 판매하던 리탈린Ritalin의 제조사 시바가이기CIBA-GEIGY는 ADHD를 겪고 있는 아동의 부모들이 주도하는 ‘주의력결핍장애 아동과 성인을 위한 단체CHADD’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CHADD는 지금까지도 제약회사들로부터 100만 달러 지원금을 받고 있다고 알려진다.

 

건강불평등은 늘어나고 사회불평등 원인은 가려지고  

의료화Medicalization의 중요한 사례로도 ADHD가 언급된다. 비의학적 문제가 질병이나 질환과 같은 의학적 용어로 정의되고, 의학 개입을 통해 치료되는 과정이며, 의료화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행위자들이 꼭 필요한데, ADHD의 경우 진단명을 붙이는 권위와 지배 권력이 있는 전문가 외에 또 다른 사회적 지지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ADHD는 교사가 ‘질병 브로커’의 역할을 하도록 했는데, 공식적으로 DSM-Ⅳ에서는 진단의 특별 평가 기관으로서 교사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했다. 교사들이 공식적으로 약물 투여가 학생의 학교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교육을 받게 했고, 오랜 기간 약을 먹고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조언하도록 했다. 미국 호주에서는 교사들이 직접 학생에게 약물을 투여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됐다. 제약회사들은 교사들에게 치료제를 홍보하고 판매하도록 많은 마케팅 비용을 할애했다. 그 결과 ADHD 진단은 동네 의료기관과 교사, 학부모가 결합된 방식으로 더 많이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과잉의료화는 다양한 삶의 방식과 행태를 병리적 현상으로 간주하게 만들고,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용인과 관용을 축소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인구집단 전체에 대해 보편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해결책과 사회제도를 개인 책임과 비용의 문제로 전가시킨다. 건강을 결정하는 사회적 요인들은 지워버림으로서 개인의 정보와 선택 그리고 소득수준에 따른 치료와 예방으로 문제 해결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결과적으로 건강불평등을 낳고, 사회불평등의 원인은 가려지는 사회통제의 새로운 메커니즘이 될 수 있다.  

 

사회적 ‘나쁨’이 개인의 ‘아픔’을 만든다

미국 성인 다섯 명 중 한명은 정신 의학적 문제로 한 가지 이상의 약을 먹고 있다. 전체 성인 10명 중 1명이  항우울제를 먹는다. 미국인의 6%는 처방약 중독으로 알려져 있다. 불법 마약보다 합법 처방약 때문에 응급실에 실려오거나 죽는 사례가 더 많다. 미국에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과잉 약물화Pharmaceuticalization는 시장에 내맡겨진 보건의료제도에서 기인한다. 거대 제약업계가 의약품 가격 결정과 판매 방식에 더 많이 개입할 수 있고, 병원을 소유한 거대 민간보험업계 기구들이 보험혜택을 결정하고, 의사들의 치료 방법에 개입한다. 미국 의회의 가장 큰 규모의 돈을 로비하는 두 집단이 법과 제도를 만들고 이윤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안전 규제가 법제화 되지 못하도록 한다. 

 

제약회사와 보험사들은 질병을 만들고, 질병을 판매하는 시장을 만든다. 처방약도 TV광고 등을 통해 남녀노소 누구든 직접 광고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삶의 다양한 변화를 ‘질병으로 브랜드화’ 하는 방식이 더 수월하다. 사회적 불안과 두려움을 이용해 질병을 만들고, 질병에 대한 인식을 사회에 심는다. 의사와 환자들을 모아 질병과 치료약을 동시에 판매한다. 이런 건강과 질병의 상업적 이해가 의료계를 이미 장악한 미국은 다른 나라보다 보건 분야에 두 배나 더 많은 돈을 쓰지만 그 성과로 보여줄 만한 건강한 지표는 없다. 

 

기업과 시장에 의해 지난 10여 년 간 일관되게 추진되고 있는 건강과 질병의 상품화 전략은 정확히 미국 사회의 보건의료 방식을 통해 경기 부양을 하겠다는 전략이다. 문재인 정부가 최근 발표한 건강관리서비스 산업화나 유전자검사 확대와 개인의료/건강정보 규제완화 등의 ‘헬스케어 혁신 전략’은 그 꼭지점에 서 있다. 그러나 ‘보건의료’를 ‘헬스케어’라는 영어단어로 명명한다고 해서 보건의료가 가진 본질적 사용가치의 의미를 지울 수는 없다. ‘각자도생’이라는 슬픈 냉소주의가 한국 사회의 특성을 상징하는 키워드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사람이 먼저’ 라는 정부가 건강불평등을 강화하고 고착화하며 사람들의 존엄을 훼손하는 정책에 우선순위를 두어선 안 된다.

 

‘4차 산업혁명’ 이라는 레토릭을 덧씌운다 해도 마찬가지다. 고위험을 전제하기에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는 논리는 규제완화를 전제한다. 이러한 경제 부양 논리는 평범한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함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첨단 생명공학기술이 치료, 예방, 연구라는 이름으로 충분한 근거와 동의도 없이 우리 몸과 개인정보에 개입하고 상업적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비민주적 법 개정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 

 

얼마 전 발표된 OECD 보건통계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82.7년으로 OECD 평균보다도 높지만 ‘스스로가 건강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주관적 건강인지율은 29.5%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건강불평등은 너무 심해 건강수명 격차는 11년에서 무려 23년이나 차이가 난다. 병원을 가장 많이 가는 횟수는 일본을 제치고 OECD 1위가 됐고, 의료비 증가율은 OECD 평균에 비해 6배가 더 높다. 여전히 항생제 소비량은 OECD 평균에 비해 1.7배 높고, 자살률은 부동의 1위다. 이런 지표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회적으로 나쁜 것들이 개인을 아프도록 만든다. 우리는 ‘아픈 것’이 곧 ‘나쁜 것’이라는 기업과 시장의 마케팅을 거부해야 한다. 즉 기업과 시장이 만들어내는 병적 징후들을 이용해 기업과 시장이 ‘질병장사’로 이윤을 축적하도록 허락해서는 안 된다. 

 

 Young Shin Kim, MD, and others, “Prevalence of Autism Spectrum Disorders in a Total Population Sample,”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 168 (2011)

 앨런 프랜시스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 한 정신의학자의 정신병 산업에 대한 경고』(2014)

 조너선 리오 「ADHD, 질병과 마케팅 사이」 『스켑틱』 14호(2018) 

피터 콘레드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2019)



 

 

특집. 질병사회 2019년 9월호 월간참여사회 

1. 질병은 언제부터 질병이 되었나? 황상익

2. 질병은 병균이 만들고 차별은 사회가 만든다 조한진희

3. 질병장사 : 건강과 질병의 상품화에 대하여  변혜진

4. 한국의 바이오산업과 신약의 환상  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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