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10월 2019-10-01   2700

[통인] 보통 사람들의 싸움, 드라마로 응원하고 싶었다

보통 사람들의 싸움,
드라마로 응원하고 싶었다

박준우 SBS 〈닥터탐정〉 PD 

 

월간참여사회 2019년 10월호 

 

닥터탐정? 제목만 들었을 때는 요즘 유행하는 뻔한 장르물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이 드라마 볼수록 좀 이상했다. 주인공들은 걸핏하면 “일하다 아픈 건 당신 탓이 아니”라고 하고, 무노조경영원칙의 스마트폰 만드는 대기업이 악역으로 등장하고 배경음악으로는 <청계천 8가>가 흘러나온다. 

 

그뿐인가.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망 사고, 메탄올 중독, 가습기 살균제 사고 등의 실제 사건들이 드라마 에피소드로 다뤄지더니, 본편이 끝났다 싶으면 에필로그에 고 김용균 어머니, 고 황유미 아버지, 고 이한빛 PD 부모님 등 참여사회가 그동안  인터뷰했던 인물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나는 슬슬 이 드라마의 제작진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광고로 먹고 사는 지상파 방송에서, 그것도 드라마에서 이거 정말 괜찮은 걸까?’ 내 걱정과는 달리 무사히 드라마를 종영한 SBS <닥터탐정>의 박준우 PD를 지난 9월 16일 대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어쩌다 이렇게 불순한(?) 드라마를 만들게 됐을까. 

 

방영 첫 회부터 만나고 싶었는데 종영하고야 뵙는다. 드라마 종영 소감은?

제가 원래 SBS 시사교양국 피디였다. 3년 전에 드라마국으로 옮겨서 조연출 하다가 이번 드라마가 입봉작이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을 작품이다. 시원섭섭한데, 섭섭함보다는 시원함이 더 크다. 아쉬움도 남지만 최대한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을 다 해본 것 같다. 

 

‘산업재해’를 본격으로 다룬 최초의 드라마다. 구상은 언제부터 했고 준비기간은 얼마나 걸렸나. 

처음 대본을 본 것은 작년 연말이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였던 송윤희 작가가 3~4년 전부터 대본을 쓰고 있었는데 작품화가 잘 안됐다고 하더라. 선뜻 나서는 연출자도 없고. 그러다가 제가 이 대본을 보고 극의 완성도를 떠나서 좋은 원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선뜻 하겠다고 했다.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생각했나?

꼭 이런 (사회고발) 성향의 드라마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는데 개인적 관심사나 취향과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동안 이런 소재의 드라마가 거의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에 충분히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변의 권유도 있었다. 

 

주변에서 걱정이 아닌 권유를 했단 말인가?(웃음)

회사의 권유는 아니었다.(웃음) 같이 드라마 하는 식구들 중 몇몇이 저랑 맞을 거 같다고 추천했다. 우리 드라마가 다루는 사건들이 좀 딱딱하고 무겁다 보니 시사교양국에서 오래 일했던 제 이력과도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회사는 어떻게 설득했나. 

처음엔 회사도 반신반의해 했다. “이걸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고 하더라. 당시 대본이 다 나와 있던 것도 아니었다. 원래 이 작품 하기 전에 들어가려던 단막극이 있었다. ‘인혁당’ 소재로 한 대본이었는데 작가랑 초반부터 같이 준비했고 내부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그런데 그게 회사 사정으로 미뤄지면서 대신 이걸 (닥터탐정을) 하겠다고 밀어붙였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10월호 (통권 269 호)

본격 사회고발 메디컬 수사극 <닥터탐정> 포스터 ⒸSBS 

 

‘PPL은커녕 장소 협찬도 잘 안 되는 데다, 회사도 달가워하지 않는 드라마’였다고 들었다. 촬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지하철 장소 협조가 잘 안 되서 애를 먹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가 일어난 게 2호선이다. 서울메트로(서울교통공사)가 서울시 관할이라서 박원순 시장 쪽 보좌관, SBS 서울시 출입기자 등 어떻게든 아는 사람 통해서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됐다. 장소 섭외하려고 인천, 대구, 부산, 광주까지 가봤는데 다들 안 하겠다고 해서 나중엔 에피소드를 바꿔야 하나 했다. 다행히 가까스로 공항철도가 설득 돼서 플랫폼만 일부 찍었고 나머진 다 CG다.(웃음) 그밖에 드라마 하면서 다큐까지 만들어야 하니까 부담은 조금 있었는데 그거 빼곤 다른 작품들도 흔히 겪는 문제들이었다.

 

극중 미확진질환센터 UDC 소속 인물들은 ‘의사’보다 ‘시민단체 활동가’처럼 보인다. 밤샘하고 라면으로 끼니 때우고, 공장 잠입하려다가 쫓겨나고 시위, 고발, 기자회견 등… 장면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참고한 레퍼런스나 단체, 기관이 있다면?

근로복지공단 산하 직업환경연구원의 김대호 연구위원이 많이 도와줬다. 실제로 배우, 스탭들이 직접 찾아가 자문을 많이 구했고 촬영도 일부 거기서 했다. 잡지 「일터」를 발행하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김재광 소장, 최민 활동가 도움도 컸다. 책은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을 많이 참고했고 배우들에게도 읽혔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10월호 (통권 269 호)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 속 한 장면 ⒸSBS

 

드라마 본편 끝날 때마다 붙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에필로그가 인상 깊었다. 문송면 수은 중독 사건부터 고 김용균의 이야기까지, 이런 시도를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산업재해 피해자들 이야기가 드라마 소재로만 머무르는 게 싫어서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 다큐를 제안했을 때 작가가 처음엔 반대를 많이 했다. 시청자들이 드라마보다 다큐에 더 집중할 수도 있고 드라마랑 다큐랑 같이 붙이면 혼란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 몇몇은 (드라마인데) 이렇게 해도 되냐고 했다. 저는 생각이 달랐다. 드라마와 다큐를 혼돈해서는 안 되지만 이 드라마의 기본 재료는 현실에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도 시청자 중에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니까 다행히 작가도, 배우들도 이해하더라. 감사하게 생각한다.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시청자들 반응은 어땠나?

물론 혼란스러움은 있는데 그게 부정적인 혼란이기보단, 드라마에서 본 내용이 바로 뒤에 다큐로 나와서 실존인물이 직접 보여주니까 보는 사람들은 약간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예를 들어 극중 ‘해미’ 같은 경우 실제 메탄올 실명 피해자인 이진희 씨를 취재하고 그 분의 인터뷰 내용을 드라마 대사로 바꿔서 집어넣기도 했다. 그랬을 때 어떤 반응이 나올까 반신반의 했는데 어떤 시청자들은 더 강하게 현실 공감을 했던 거 같다.  

 

아는 사람은 다 알만한 사건이지만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알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들었다. 드라마에서 그런 현실을 보여주는 ‘에필로그’ 문법이나 방식들이 워낙 낯설다 보니 거기서 오는 신선하다는 반응, 나쁜 반응도 있었겠지만(웃음) 어떻게 보면 다큐든, 드라마든 관습적인 형식에 불과하다. 인터뷰 따고 밑그림 붙이면 다큐고, 대사 치면 드라마고. 둘 사이에 비슷한 부분도 있고 경계도 있다. 그런 부분을 잘 활용해서 내용 전달이 더 잘되게 할 수 있다면, 섞었을 때 묘한 형식적인 재미가 있는 거 같다. 

 

매회 방송이 나가면 에필로그 내용이 후속 기사로 생산되면서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알려졌다. 에필로그에 출연한 분들은 뭐라고 하던가.

출연하신 분들 중 김미숙 어머니는 10월 26일 ‘김용균 재단’을 만든다고 해서 배우들한테 직접 축하 멘트도 따서 촬영하고 관련 에피소드나 씬들을 편집해서 보내드렸다. 재단 홍보하는 데 활용하신다고 했다. 또 고 이한빛 PD 부모님도 드라마가 그렇게 다뤄준 거에 대해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셨다. 우연히 다른 인터뷰를 봤는데 아버님이 하시는 말씀이, 아들이 살아 있었으면 저랑 비슷한 모습이 되어 있지 않겠느냐 이런 얘기도 하시더라. 

 

고 이한빛 PD이야기의 에필로그는 드라마 내용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데 일부러 넣었다고 들었다. 본인이 경험한 방송제작 현실, 어떤 거 같나. 

같은 방송 현장이라도 차이는 있는데 제일 심한 게 드라마인 거 같다. 교양은 소규모로 4명이 한 팀이지만 드라마는 100여 명 가까운 스탭들이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다보니까 더 어려운 것 같다. 

 

우리 드라마 시작할 때 조연출이 그러더라. 어떻게 보면 자기는 시험 보고 SBS에 정직원으로 들어와서 입사하자마자 조연출이고 몇 년 있으면 연출되고 고임금 받는데, 주변에 자기 또래 소품팀이나 각 파트별 젊은 친구들 대부분이 박봉에 온갖 잡일은 다 한다는 거다. 실제 현장 가보면 정규직이라고 해봤자 몇 안 되고 그 안에 고용 형태도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있다. 예를 들면 카메라 감독이나 조명감독 등 ‘오야지’로 불리는 사람들은 돈을 많이 받지만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 형태는 다양하게 섞여있다. 밖에서 보면 화려해보지만 장시간 노동에 감독, 작가, 배우들 갑질도 심하다. 근데 웃긴 게 그렇게 해도 시청률이 좋으면 다 무마가 된다. 

 

그래서 이번 드라마에서 주52시간 노동을 지키려고 노력한 건가. 

그냥 근로기준법을 잘 지킨 것 뿐이다. 근데 그것도 정확히 지키지는 못했다. 보통 촬영 스탭들이 생각하는 (노동 강도의) 수준이 있다. 예를 들면 하루 16시간을 넘기면 안 된다든지. 그걸 몇 번 어겼는데 좀 더 노력하면 앞으로 많이 나아질 거 같다. 제가 처음 사회생활 시작할 때 주5일제 되겠냐고 했지만 잘 되고 있지 않나. 주52시간제도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 연출이랑 배우랑 작가가 문제지, 스탭들 문제가 아니다. 갑질하는 애들만 잘하면 된다.(웃음) 

 

월간 참여사회 2019년 10월호 (통권 269 호)

드라마 <닥터탐정> 마지막 엔딩 장면 ⒸSBS

 

<닥터탐정> 마지막 회 장면은 산재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요구하는 1인시위로 끝난다. 이 장면에 담긴 의미를 설명한다면.

마지막 회 에필로그에 고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 씨가 나오길 바랐다. 산업재해나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 ‘김용균’이 갖는 의미가 컸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얘기했지만 사람들이 별로 관심이 없었다. 구의역 김군, 김용균 때문에 제대로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거다. 물론 그 전부터 참여연대 등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집중했지만 ‘김용균’이 갖는 상징성은 다르다.

 

8월 말경 청와대 앞에서 집회하시는 김미숙 어머니를 찾아뵀는데 거기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활동가가 아니라 누군가의 평범한 엄마, 가정주부였다가 개인적 아픔을 겪고 투사가 되는 전형적인 케이스가 김미숙 어머니인 것 같았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은 그런 분들에 대한 응원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미숙 어머니, 고 이한빛 부모님이나 고 황유미 아버지 황상기 어르신 같은 보통 사람들의 싸움을 더 응원하고 싶었고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엔딩을 그렇게 정했다. 다행히 주역 배우들이 그렇게 저를 원망하진 않더라. (웃음) 다른 배우들 같았으면 왜 단역한테 엔딩을 주냐면서 뭐라고 했을 거다. 

 

시청률(3.9%) 면에서는 조금 아쉽다. 드라마로서 <닥터탐정>이 남긴 족적, 혹은 과제가 있다면 무엇일까.

드라마로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나 산업재해 문제를 알리고 싶었는데 그게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존에 없던 소재나 에필로그가 좋았다는 반응도 있지만 그만큼 대중에게 소구력 있게 다가갔느냐 하는 건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초반엔 동시간대 시청률 1위도 하고 그랬는데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진 게 사실이다. 제가 놓친 부분도 있다. 요즘 시청자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겠더라. 거의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를 원하는 것 같다. 얼마나 의미가 있었는지는 대중이 판단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월간참여사회 2019년 10월호

 

시사교양에서 드라마로 옮겼지만 PD로서 일관되게 추구해온 가치나 방향이 있을까. 

일을 시작할 때부터 제대로 가치관이 형성되고 그런 건 아니었다. 물론 다큐나 영상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지만. 지나오면서 경험이 하나씩 쌓여서 지금의 가치관이나 성향이 만들어진 거 같다. 고향 친구 권유로 봉천동  공부방에서 애들을 가르치면서 대학시절을 보냈고, 입사 후 시사교양프로 할 때는 용산참사 취재도 했다. 그때는 비교적 젊었기 때문에 사회 문제에 관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당시엔 상황 때문에 하지 못한 게 많다. 4대강 취재도 하고 싶었고 삼성 백혈병도 다루고 싶었는데 (회사에서) 못하게 했다. 그런 상황들에 제 개인적 경험이 덧붙여지면서 드라마에도 조금씩 묻어나는 것 같다. 

 

2009년 방송법 개악 후 십년이 지났다. 미디어 환경이 바뀌면서 공영방송, 지상파 위기설도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뿌린 대로 거둔다고,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자승자박이다. 당시 지상파 노조나 조합원들 얘기가 아니다. 사장을 비롯해 당시 지휘부가 그런 거다. SBS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SBS 사장이나 임원들이 그렇게 얘기했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분명히 SBS에 도움 될 거라고. 근데 그렇지 않았다. 당시 SBS 지휘부들이 청와대 비서로 많이 갔다. 그 사람들이 다 말아먹은 거다. 그때는 자기들한테 유리할 거라고 판단했겠지만 지금은 tvN이나 jtbc 같은 돈 많은 방송사들한테 다 잡아먹히고 있지 않나. 방송이 지나치게 자본 논리로 흘러가고 있는 게 안타깝다.

 

오래된 얘기지만 지금은 시청자들이 방송을 보려면 다 돈 내야 한다. 이제 지상파 의미도 없어졌다. 시청자들이 잃는 게 굉장히 큰데, 그런 거에 대해 주목을 못하고 있는 거 같다. 지상파는 보편적인 서비스여야 하는데 오히려 지상파가 종편을 따라가고 있다는 게 굉장히 안타깝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드라마는 무엇인가.

그냥 공감 가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다. 이번 드라마도 어떻게 보면 산업재해 피해자지만 그냥 젊은 친구들, 자식 잃은 부모,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다.

 

<닥터탐정> 시즌2 계획도 있나. 

하고는 싶은데 잘 모르겠다. 다른 분이 할 수도 있고. 저한테 제안이 온다면 여건만 되면 할 것 같다. 꼭 <닥터탐정> 시즌2가 아니라도 이런 소재의 드라마가 또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글. 이한나 미디어홍보팀 간사 

사진. 박영록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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