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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03월
  • 2020.03.01
  • 551

특집3 교육이 바뀐다?

한국판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가능한가

 

글. 장은주 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철학) 교수 

 

 

3월호 

 

학교가 ‘정치판’이 된다고?

선거법이 개정되었다. 이번 총선부터는 18세부터 투표를 할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사안에서는 이미 성인으로 인정받지만 선거권만 유보되었던 많은 대학생은 물론 14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 고등학생들과 탈학교 청소년들도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다. 이 새내기 유권자들은 주권자가 되기 위한 거의 아무런 준비도 없이 투표에 참여하게 된다. 물론 이번 선거법 개정은 18세 정도면 충분히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가졌다는 전제 위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가능성이 곧 현실은 아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 새내기 유권자들이 민주주의에서 선거의 의미라든가 각 정당들과 후보들의 이념적 지향이나 공약들의 배경과 가치 등을 제대로 이해하게끔 제대로 교육해 오지 못했다. 그동안 우리 교육은 그저 대학입시에만 매달려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서울시교육청 등에서는 장기적으로는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의 정책을 모색하는 한편 이번 총선을 계기로 ‘모의선거교육’을 시범적으로나마 진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사달이 났다. 일부 보수언론과 교총 등에서 ‘학교가 정치판이 될 우려가 있다’며 이런 교육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8세 유권자는 물론 선거권이 없는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모의선거교육도 교원이 주도하는 한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불허하는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거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 하고 있는 교육이고, 심지어 선관위 스스로도 지금까지 장려하고 권장해 오던 터였다. 선거권이 없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결과는 선거가 끝나고 발표하겠다는 모의선거교육이 무슨 수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인지 아무리 애써도 이해할 길이 없다. 

 

이런 어처구니없고 우스꽝스러운 상황은 왜 벌어지는 것일까?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 사회에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민주시민교육, 특히 정치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정파 간의 다툼이나 이념 대립 같은 것은 다른 어느 민주주의 사회에도 있기 마련이지만, 오랜 분단체제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다툼과 대립이 극단적으로 증폭되어 곧잘 상호 간에 대한 혐오와 적대로 나타나곤 한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정치교육을 한다는 것은 곧 그런 식의 정치적 혐오와 적대를 교육 현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것이 바로 ‘학교가 정치판이 된다’는 말의 가장 근본적인 함의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저 선관위의 몽니가 바탕하고 있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헌법상의 원칙이 학교를 어떤 정치적 진공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로 해석되는 배경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이것은 지독한 정치혐오의 산물일 뿐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사실상의 부정이다.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합의는 민주주의에 대한 합의

사람들은 흔히 민주주의 사회는 별다른 사회적 갈등 없이 평화롭기만 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갈등을 억누르거나 백안시하는 사회는 오히려 전체주의 사회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부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적극적으로 환영하기까지 한다. 이견과 비판과 쟁론은 진리를 밝혀 줄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되고, 늘 여러 가지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억눌린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로 넘쳐나는 곳이 민주주의 사회다. 

 

이렇게 보면 민주주의란 다양한 이념이나 가치 또는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들이 생산적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정치체제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권력을 두고 경쟁하는 당사자들은 서로 열심히 싸우고 대립하기는 해도 서로를 절멸시켜야 할 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 당사자들 모두에게 민주주의는 말하자면 ‘공동의 집’으로서, 그들은 경쟁은 해도 그 공동의 집을 내부와 외부의 적에 맞서 지켜내야 하는 적극적인 동지이기도 하다. 그들의 차이와 대립은 모두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투쟁’이 아니라 참된 ‘공동선’을 찾기 위한 ‘논쟁’의 형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이런 본성을 이해한다면, 민주시민교육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몰이해와 작금의 소동은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때 우리와 같은 분단 상황 속에서 역시 우리처럼 민주시민교육(정치교육)을 두고 격렬한 이념 갈등에 휩싸였었던 독일은, 1976년, ‘강제 또는 교화금지’, ‘논쟁성에 대한 요청(논쟁성의 원칙)’, ‘(학생)행동지향’의 3원칙으로 이루어진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통해 혼란을 종식시킬 수 있었다. 이것은 한 마디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정치교육에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관철시킨 데서 나온 결과라 할 수 있다. 논쟁성의 원칙을 핵심으로 하는 이 합의는 사회정치적 사안에 대한 차이와 대립을 생산적인 논쟁의 틀 안에 담아냄으로써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한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3월호

 

한국판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가능할까?

결국 우리 사회에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합의가 없는 것은 근본적인 수준에서 보면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합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흠결도 바로 여기에 있지 싶다.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적인 정치문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지만, 민주주의를 어떤 식으로든 다수를 이루어 권력을 독차지하기 위한 게임 같은 것으로만 여기는 우리 사회의 미숙한 정치문화는 그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가로막고 있다. 그 결과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답게 운용하고 발전시킬 시민적 주체가 제대로 길러지지 못하고, 그것은 다시 우리의 정치문화를 더 황폐화시키고 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깨야 한다. 하루빨리 ‘한국판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만들어 내야 한다. 우리 교육계와 시민사회의 다양한 수준에서는 이미 그러한 노력을 하고 있다. 공감대도 충분하다. 전국의 많은 광역 및 기초 자치단체에서는 민주시민교육 활성화를 위한 조례까지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국가 전체 차원에서는 사회적 합의도 법제화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달라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특집 바뀐 선거, 바뀔 세상?

1.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한계와 극복 방안  김형철

2. 18세 선거권과 밀레니얼 정치의 가능성 서현수

3. 한국판 '보이스텔스바스 합의'는 가능한가 장은주

4. 새로운 선거제도, 21대총선 가이드  오유진, 민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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