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0년 04월 2020-04-02   746

[환경] 무엇이 지금 이 시대에 희망일 수 있을까?

무엇이 지금 이 시대에
희망일 수 있을까?

 

10억 야생동물 희생한 호주산불은 우연일까?

3월 어느 날 우연히 한 고등학교 담장 너머로 화들짝 핀 매화꽃을 발견했어요. 반가운 마음에 교문 안을 들여다보고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적막감이 감돌았거든요. 3월 중순, 한창 새 친구를 사귀고 새 종이 냄새로 심기일전을 다질 그 시간에 학교가 절간 같았으니까요. 비현실적인 시간과 공간을 엿보다 표정이 사라진 거리에 서 있는 우리를 발견했습니다. 

 

닥치는 대로 숲을 집어삼키며 꺼질 줄 모르던 불길 앞에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하늘을 쳐다보며 비를 기다리는 일뿐이었습니다. 기우제를 지내며 비를 기다리던 조상의 시대에서 우린 얼마나 멀리 왔나 생각해보니 단 한 발자국도 내디딘 게 없더군요. 그 어떤 과학과 기술도 힘을 발휘하지 못했으니까요. 더구나 가뭄의 원인을 우리가 자초했다는 게 조상의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입니다. 

 

호주산불은 가뭄이 원인이었고 그 가뭄은 기후변화에서 기인했습니다. 남한 면적의 3분의 1을 태운 시베리아 산불 역시 가뭄이 원인이었지요. 직접 숲에 불을 지르기도 합니다. 고기를 얻으려 저지른 아마존 산불, 팜유를 얻으려 자행되는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에서도 불길 속으로 숲은 무참히 사라졌습니다. 사라진 게 숲뿐이었을까요? 새까맣게 숯검정이 된 코알라, 불을 피해 달아나는 캥거루를 안타까이 지켜보며 어쩌면 우리는 지옥을 미리 들춰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지옥의 모습에서 우리가 얻을 교훈은 뭘까요? 10억 마리 이상의 야생동물이 희생됐고 코알라는 90% 가까이 몰살되며 기능적 멸종이 돼버렸습니다. 서식지를 잃고 살아남은 생명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참여사회 2020년 4월호 (통권274호)

 

우리는 지금 ‘인과응보’를 전면으로 맞닥뜨리고 있다

판데믹pandemic❶이 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으로 세상의 시간이 멈춘 듯합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세계 경제가 출렁이며 혼돈의 시간 한복판을 지나고 있습니다. 블랙홀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하는 시대에 고작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로 우리 삶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다니요?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마스크 아래로 가려지고 혐오의 그림자마저 길게 드리워질까봐 저어됩니다. 세계지도는 확진, 사망, 완치를 알리는 통계치로 새롭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너나없이 어서 이 사태가 끝나길 기대하는 마음은 같을 겁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사라지면 우리는 다시 안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포즈Pause 상태가 돼버린 어이없는 일의 시작은 어디였을까요? 그 시작은 단순히 우한이 아닙니다. 더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으니까요. 

 

풍족한 소비를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서식지를 밀어버리고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사지로 내몰았던가요? 갈 곳을 잃은 동물들은 결국 우리 가까이 올 수밖에 없었고 옮겨온 바이러스로 인수공통전염병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 결과 우리 삶은 강제 휴지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요. 개발이란 명분을 내세워 잠자는 숲속의 바이러스들을 마구 파헤쳐 풀썩이며 들춰낸 것도 우리였습니다.  

 

‘코로나19’는 지구가 인류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

기후위기 시대에 가뭄과 그로 인한 산불, 인수공통전염병 창궐 같은 일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그동안 과학자들은 누누이 경고해 왔습니다. 사스, 메르스, 에볼라처럼 앞서 발생했던 전염병은 서두에 불과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몇 번의 경고에도 그게 경고인 줄 눈치채지 못했거나 애써 외면하며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 반성이 없었던 게 오늘 벌어진 이 사태의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속가능한 공존 대신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만 대했던 우리의 사고에 대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비만능에 기댔던 우리 삶이라는 게 얼마나 허약하기 이를 데 없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오만하게 뭇 생명을 대했던 태도에 반성이 절실합니다.

 

저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환경문제는 기술적 문제도 학문적 문제도 아닌 인류의 사회 정치적 가치의 문제입니다. 모든 것은 저마다 고유한 경험을 가지므로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닥친 사회 정치적 사실은 우리가 생명에 대한 가치를 경시했던 결과입니다. 물질적인 진보를 앞세워 생명의 가치를 팽개쳤을 때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오는지 이젠 제대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성찰이 오늘 과학과 기술로도 어쩌지 못하는 환경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첫 번째 실천이었으면 합니다. 

 

줄을 서는 대신 자투리 천으로 마스크를 만들어 이웃에게 나눠주며 정말 필요한 이들에게 마스크를 양보하는 태도, 전국에서 대구로 달려간 의료진들의 태도야말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갈 우리의 지향점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이 힘든 시기가 성찰의 계기가 된다면 어쩌면 전화위복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그것만이 지금 우리가 바랄 수 있는 희망일 것 같습니다. 

 

❶ 전염병이나 감염병이 범지구적으로 유행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범유행’이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판데믹으로 흑사병과 스페인독감이 있다

 


글. 최원형 환경생태작가 

서울시에너지정책위원회 교육시민소통분과 위원. 우연히 자작나무 한 그루에 반해 따라 들어간 여름 숲에서 아름답게 노래하는 큰유리새를 만났습니다. 큰유리새의 아름다운 새소리를 다음 세대도 들을 수 있는 온전한 생태 환경을 바랍니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환경과 생태 쫌 아는 10대』 외 다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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