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0년 10월 2020-10-05   1414

[특집] 코로나19와 싱크홀의 농촌 세계

코로나19와 싱크홀의
농촌 세계

글.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농촌 소멸? 식량 소멸!

30%. 이는 농촌의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다. 20%가 넘으면 초고령화 사회라고 하지만 농촌은 초초고령화 사회 정도일 것이다. 이 비율은 농촌 주민 전체를 포함한 숫자이다. 45.5%. 이는 전체 농민 중에서 65세 이상 고령 농민의 비율이다. 농촌에서 65세 정도면 ‘청년회장’을 맡거나 노인정에 가서는 8, 90대 초고령 노인들을 돌보는 역할을 맡는 나이다. 현재 농민의 평균 나이는 68.8세다. 농가경영체 등록을 한 농업경영주는 약 100만 명이다. 농업은 만 40세까지 청년 농업인으로 분류하는데 그 비율이 1%다. 전체 농민 중에서 40세 이하가 1천 명도 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먹고 마시는 농산물들은 이런 노인들의 손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해마다 고령의 노인들은 세상을 떠나고 그 빈자리는 메워지지 않고 텅 비어간다. 

 

현재 약 70세 정도의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시간을 길게 10년 정도로 친다면 이는 농촌 소멸 이전에 우리 음식 절반이 소멸한다는 뜻이다. 농촌이 비어 가는데 먹고 살 재간이 있을까. 슈퍼마켓엔 먹을 것들이 넘쳐나고 음식물쓰레기 버리는 일은 괴로울 지경이어서 현실감이 없을 것이다. 이는 한국이 현금이 있는 나라이고 돈을 주고 외국에서 식량을 사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판사판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농사는 짓지 않아도 첨단산업을 가동해 부가가치가 낮은 음식들은 사들여 오자라는 주장도 있다. 

 

‘특용작물’이라 하여 환금성이 높은 작물을 스마트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면 되지 않느냐는 대안도 나온다. 하지만 쌀밥 한 그릇의 가격은 보잘것없지만 그 안에는 계산되지 않는 가치가 있다. 쌀은 곧 논이기 때문이다. 논의 환경보존 기능을 운운하지 않아도 계절에 따라 푸른 들판이 황금 들판으로 변해가는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행복하다. 논을 밀어내고 들어선 신도시의 아파트를 보고 행복할 사람들이 집주인 말고 누가 있을까. 무엇보다 늙은 농민들이 가장 자신 있게 지을 수 있는 농사가 벼농사이고 쌀에 기대어 살아온 삶은 계산할 수 없고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월간참여사회 2020년 10월호 (통권 279호)

쌀밥 한 그릇의 가격은 보잘것없지만 그 안에는 계산되지 않는 가치가 있다

 

신선 농축산물 먹고 싶지만, 외국인노동자는 싫다? 

이렇게 급하게 늙어버린 농촌을 그나마 지탱시킨 이들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농촌이 겪은 가장 큰 문제는 인력 부족이다. 국경을 닫으면서 외국인 계절노동자들의 입국이 막히면서 다들 일손 부족에 허덕댔다. 독일은 발 빠르게 4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절차를 만들어 농촌 인력에 숨통을 틔웠다. 한국 농촌에도 봄가을에 일손이 바짝 필요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5년부터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나마 이들 덕분에 국내산 신선 농산물을 먹고 사는 것이다. 

 

상시고용이 필요한 축산업이나 버섯재배사 같은 시설재배 농가에는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농사를 짓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고기와 버섯을 동시에 구워 먹을 수 있다. 200만 원 정도의 돈을 받고 양돈장에서 돼지치기를 하겠다는 한국인들은 없다. 그런데도 고기는 먹고 싶고, 저개발국가 출신의 외국인들(혹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숙주일지도 모르니) 입국은 막았으면 한다. 손쉽게 고기도 수입해서 먹자는 주장도 있다. 어차피 고기가 먹는 사료가 100% 외국산이니 국내산 고기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짐짓 전문가적 진단도 내린다. 실제로도 수입 삼겹살도 많이 먹고 산다. 

 

하나 고기를 수출하는 나라들의 사정도 빤하다. 가장 험한 노동으로 분류되는 도축장 노동자들은 대개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미국에서 코로나19에 가장 먼저 감염된 사람들은 스미스필드와 타이슨푸드, JBS와 같은 미국의 거대 축산기업 도축장 종사자들이었고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이 사태로 미국 내 축산 물류가 순간 엉키고 꼬였다는 사실을 곱씹어 보아야 한다. 

 

국경이 닫힌다는 것은 하늘길만이 아닌 해상에 기반한 식량 교역에도 차질이 생긴다는 뜻이다. 매달 평균 300만 톤의 농산물을 수입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 곡물에는 가축들이 먹어야 하는 콩과 옥수수가 있고, 라면과 빵을 만드는 밀도 있다. 하지만 이런 팬데믹 상황에서 해상물류에 차질이 빚어진다면, 국내로 무사히 들여올 수 있을 것이라 누가 보장하겠는가. 코로나19 바이러스 자체가 작물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과 제도에는 큰 충격을 가했고 그 여파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줄어든 학교급식, 판로를 잃어버린 농민들 

자식을 위해서 밥을 차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하지만 지난 몇 년, 적어도 점심은 차릴 일이 없었다. 아침을 먹는 일은 나나 아이들이나 드물고 점심은 학교에서 먹고, 저녁은 함께 모이는 일이 만만치 않아 각자 챙겨 먹는 일도 잦았다. 아마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워킹맘들의 보통 풍경일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등교가 미뤄지면서 학교는 학교 현장의 몫을 감당하고 있다. 교과수업 중에서도 예체능 수업은 온라인으로 대체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고, ‘학교급식’이 가정으로 위임되면서 집집마다 고충을 겪는 중이다. 

 

특히 학교급식은 학습 부담의 이유로 밥보다 잠이 고픈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제대로 끼니를 챙겨줄 어른이 없는 아이들에게도 중요하다. 국내산 신선농수축산물을 식재료로 따뜻한 밥과 국, 신선과일 위주의 디저트까지 갖춘 유일한 한 끼이기 때문이다. 맛에 대한 평가야 제각각이고 여전히 한계가 많기는 하지만 영양과 위생, 안전을 이만큼 갖춘 끼니가 학교급식이다.  

 

급식 대상자인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코로나19는 밥하기의 괴로움이지만, 가장 큰 피해를 본 이들은 먹거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아이들과 급식계약 농민들이다. 특히 학교급식에 공급되는 농산물의 경우 친환경농축산물의 비율이 높아 학교급식 자체가 친환경 농산물의 최대 소비자이자 소비처였다. 

 

월간참여사회 2020년 10월호 (통권 279호)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이들은 먹거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아이들과 급식계약 농민들이다



현재 무상급식 대상자는 613만 명이고, 유상급식 대상자와 교직원을 합치면 650만 명에 육박한다. 2018년 기준으로 학교급식에서 사용한 친환경 농산물량은 79,339톤, 이는 전체 친환경 농산물 생산량의 57.7%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지속가능한 농업의 유일한 대안이기도 한 친환경농업은 시장가격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도 않고 막연히 비싸다는 정도의 인식이 강할 뿐이다. 그래서 공공의 적극적인 소비가 중요하고 그 역할을 학교 급식이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공의 약속을 믿고 농사를 지어왔던 농민들은 한순간에 판로를 잃어버린 것이다. 나 같은 얼치기가 그동안 떠들어댄 이야기가 농민들에게 친환경 농사를 지어서 학교급식에 공급하자는 것이었다. 땅도 지키는 일이고 농약을 덜 만져서 농민 자신의 건강도 지키는 일이며, 형편에 상관없이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이런 귀한 친환경농산물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풍쟁이가 되고 말았다.

 

코로나19로 드러난 농업과 먹거리의 위기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누적된 농촌 문제 자체다. 그동안 숫자와 통계가 잡아내지 못했던 농촌의 삶이 ‘코로나19’라는 충격파를 만나 지반이 무너져 ‘싱크홀’에 빠졌을 뿐이다. 

 

 

 

[특집] 식량전쟁

1. 곡물값 폭등 이후 10년, 새로운 식량위기 송원규

2. 기후변화가 농산물에 끼치는 영향 김명현

3. 코로나19와 싱크홀의 농촌 세계 정은정

4. 정부의 ‘농업패싱’ 이대로 괜찮은가? 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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