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12월 2009-12-01   1487

헌법새로읽기_헌재의 권능과 소란한 세상




헌재의 권능과 소란한 세상


김진 변호사

한 해, 그리고 『헌 법 새로 읽기』라는 ‘무모한 도전!’ – 사실 헌법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까지 말하면 국가자격시험에 대한 공신력이 마구 떨어질테니 ‘사법시험 합격할 정도 밖에’라고 해두자) 주제에 ‘헌舊법’을 새로新 읽어 보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대책 없이 무모한 일이었다 – 을 마무리할 때에는 꼭 헌법재판소 이야기를 써보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지난 10월 29일 미디어법 권한쟁의 사건의 결과가 나오면서 온갖 언론 기사에서 헌법재판소가 완전히 동네북 또는 놀이감이 되어 버리는 바람에 김이 새버렸다. 재치있는 누리꾼들의 이른바 ‘헌법재판소 놀이(당선은 되었지만 대통령은 아니다, 겸직은 했지만 불법은 아니다…)’만큼 재미 또는 의미라도 있는 글을 지어낼 재주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뭐, 기왕 마음먹은 일이니 마무리를 지을 수밖에.

사실 다들 아는 것처럼 헌법재판소가 이렇게 ‘국민의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 사건이 헌법재판소에서 ‘심판’된다는 것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물러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뽑힌 사람들이며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TV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점잖은 ‘재판관’ 어른들의 출근 장면까지 생중계되기도 하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매일 밤 광화문에 모여 촛불을 들며 그 기막힌 일이 어떻게 끝날지 확신했고, 4월 총선에서 수많은 ‘듣보잡’ 국회의원들을 모두 당선시키며 ‘열린우리당 압승-탄핵 주도 세력 패퇴’라는 ‘국민의 뜻’이 확인되면서 헌법재판소는 사실 관심 밖으로 밀려나긴 했다. 하지만 사실 이 때도 헌법재판소 어른들은 그 존재감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는데, 대통령이 여러 헌법상 의무를 위반하였음을 선언하고 인용(대통령을 파면해야 한다) 의견이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평의 비공개’ 원칙을 “재판관 개개인의 개별적 의견 및 그 의견의 수 등을 결정문에 표시할 수는 없다”는 변명의 근거로 삼는 신공을 보여준 것이다(헌법재판소 2004. 5. 14. 선고 2004헌나1 결정 – 수많은 결정들에서 어떤 재판관이 어떤 의견을 냈는지 명확하게 표시되는 것과 대조해 보면 그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래도 이정도는 애교로 볼 수 있다. 패스.

다음 기회는 머지않아 찾아왔다. 바로 ‘관습헌법의 난’이라고 이름지어 마땅한 행정수도법 위헌결정(헌법재판소 2004. 10. 21. 선고 2004헌마554 결정). 서울이 우리의 수도라는 것이 관습헌법이기 때문에 이를 ‘폐지’하는 행정수도 건설은 헌법개정에 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지긋지긋한 ‘세종시’ 논란이 그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우연이나 새로운 일도 아니다.

2004년을 거치면서 일반 시민들은 물론, 정치학과 민주주의를 공부한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한 정치학자는 “훗날 많은 사람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전개과정을 되돌아보면서, 2004년과 이 때의 몇 가지 사건이 한국 민주주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새로운 현상의 등장을 알리는 전환점이었다고 기록할는지 모른다”고 하고 “이로써 한국 정치체제의 배면에서 그간 미미한 역할에 머물고 있던 사법부, 특히 헌재가 정치의 전면으로 급속히 부상하면서 정치의 중심적 행위자 – ‘제왕적 사법부’로 등장하였다”고 선언한 바 있다) 헌법 교과서에서 읽은 헌법과 헌법재판소의 ‘권능’을 그저 외우고만 있었던 나 같은 사람들은 충격과 함께 깊은 슬픔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년간 많은 사람들이 기본권을 제한당하고 있을 때 마지막으로 손 벌릴 수 있는 ‘보루’였고, 몇 차례 아름다운 결정으로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기도 했다. 이 점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더 많은 경우 그런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실망을 안겨주고, 그보다 더 무서운 ‘법 허무주의’에 빠지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번 미디어 법 결정을 보니 전국민을 완전히 허무에 빠지게 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의 힘(요건이 까다로워 웬만한 사건은 다 각하이고 – 20년간 헌재에 접수된 사건 중 취하하거나 계류 중인 것을 제외하고 직접 처리한 사건은 1만 5천 118건인데 이중 각하된 것이 7천 708건으로 무려 50.9%에 달한다 – 변호사가 없으면 제기할 수 없으며, 일단 한 번 결정을 하면 변호사를 바꾸어 항소나 상고를 할 수도 없고 ‘기판력에 저촉되지 않는’ 다른 당사자들이 새로 소를 제기하기도 어렵다)은 여전히 무서워할 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정말 걱정되는 일은 과연 헌법재판소 어른들이 이런 일을 정확히 알고 계신지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미디어법 결정이 끝난 후 헌법재판소가 보인 태도(판사출신인 한 의원에 의하면 사무처장의 입장이 헌법재판소의 뜻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러니까 “우린 제대로 했는데 왜 국회가 제대로 안 하고 우리한테 그러냐, 언론이 결정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볼멘소리를 듣다 보면 이런 걱정이 완전히 기우는 아닌 것 같아 더 염려스럽다.

이제 대부분의 국민이 다 아는 것이지만 헌법재판소는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다. 골목골목 한옥이 남아 있는 조용한 동네인데다가 하루종일 이혼하러 와서 부부싸움 하는 사람들, 돈 떼인 빚쟁이들이 내 돈 내놓으라며 소리 지르는 법원과는 달리 민원인들의 출입도 극히 없어 평상시는 매우 평화로운 곳에 있고, 재판관들 한 분 한 분 짧지 않은 법조경력과 엄청난 법률지식을 가진 점잖은 분들로 알고 있다. 그런 곳에서, 그런 분들이 보기에 이노무 세상은 얼마나 소란스럽고 무질서한 곳이겠느냐만, 바로 그 소란스럽고 무질서한 곳처럼 보이는 세상이 바로 ‘국민들’이 사는 곳이며, 헌법이 발붙여야 하는 유일한 근거라는 걸 잠시 잊으신 건 아닐지. 스스로 가진 힘의 크기와 원천을 가슴으로 느낀다면 그 결정들이 조금은 달라질텐데. 그런 날이 오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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