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3월 2009-03-01   1269

아주 특별한 만남_돈으로 먹고 사는 세상, 뜻으로 먹고 사는 사람




돈으로 먹고 사는 세상,
뜻으로 먹고 사는 사람



한승호 회원



이성으로 비판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안토니오 그람시 1891-1937 이탈리아 정치가·혁명가



입춘·우수(雨水) 지나 봄기운은 대지를 촉촉이 적신다. 남녘 들판은 어느새 푸르스름한 색깔을 띠며 북상을 서두르고, 추위를 이겨낸 매화 꽃망울은 시름에 겨운 사람들을 잠시나마 미소 짓게 한다. 짧게 아주 짧게 그리고 희미하게…….

본디 인생에는 비극적인 요소가 더 많은 걸까. 삶의 시작을 울음소리로 알리고, 살아가면서도 울음은 종종이지만 지속적이다. 웃음소리가 단발적인 것에 비하여.

웃음을 잘 흘리는 사람을 만났다. 단아한 체격에 숱 많은 검은 머리와 건강한 혈색, 실실 웃는 모습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가지런한 치아. 마디 없는 손가락에 흰 가운이 잘 어울리는 치과 의사 – 한 승호(45세) 회원. 회원모임협의회 신임 회장이다. ‘회장님’ 자리가 남의 옷처럼 여겨지는 소박한 시골(?) 의사선생님 타입이다. 마주하니 여전히 웃음으로 자리를 편다. 몇 마디 사소한 일상의 질문을 던져도 웃음으로 얼버무린다. 즉문즉답이 요원할 것 같아 바짝 긴장이 되었다. ‘코드’를 바꿔 이야기를 시작했다. 환자로서 병원과 의사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한둘 거들었다. 경제적 시간적 담보를 요하는 임플란트, 치아교정, 기업형 병원에 대한 하소연이 봇물을 이루었다. 상위권 1%가 의·치대를 가니 국가 동력마저 무력해진다는 비판도 있지만 갈수록 경쟁은 치열하다. 더구나 의학전문대학원이 맹위를 떨치고 있으니 쏠림 현상은 더할 수밖에 없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빙그레 웃으며 묵묵히 듣다 한마디로 좌중을 평정(?)했다.

“뜻으로 먹고 사는 세상이 아니라 돈으로 먹고 사는 세상이라 그렇습니다.”

 
의료보험민영화? 미국을 보면 답이 나와 있다

자연히 화제는 지난 촛불정국 때 이슈화 되었던 의료보험민영화로 이어졌다. 왜 ‘그들’이 그렇게 집착을 하는가, 역시 답변은 하나. ‘돈을 가진 사람들이 돈 되는 일을 그냥 두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란다. 지난해, 제주도가 특별자치도로서 의료민영화를 서둘렀다. 결국 불발로 끝났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다. 의료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 지켜야 할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논리로 재단하려 한다. 이윤이 나는 순간 모든 생명은 지갑 속의 지폐로, 통장의 잔고로 환원될 것이라고 경계한 글이 떠올랐다. 그 역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미국을 보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우리는 사랑니 하나 뽑는데 10만원이면 뒤집어씁니다. 아주 고약한 잇몸 수술까지 한다고 해도. 미국은 50~100만 원 정도가 듭니다. 보험수가가 우리의 10배, 20배가 되는 경우도 있지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면서도 최악의 의료시스템을 갖춘 나라, 돈이 없어 병원에도 못 가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전체 인구의 20%가 의료사각지대에 있는 나라, 그 나라의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나라가 우리나라죠. 삼성생명 같은 보험 회사가 앞장을 서서.”

의술이 인술로 통하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현대의 의학은 첨단과학이라는 날개를 달고도 의권醫權은 추락할 대로 추락해버렸다. 자본주의와 과학의 시녀가 된 의학은 치료와 치유가 아닌 처치와 관리의 기능으로 대체 격하되었다는 고언苦言은 현대의학의 위기를 아우르는 경고이리라. 마치 그 자신이 원인제공자라도 된 듯 겸연쩍게 웃음만 흘렸다.



불경기가 지구를 살린다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날개’ 많이 달아주는 회원 중 한 사람이라 참여연대에 대한 애정 또한 각별하리라 생각되었다. 회원 가입 동기와 회원모임협의회 회장으로서의 포부를 여쭸다.

“회원 가입은 98년일 겁니다. 소액주주운동을 할 때였죠.”

여전히 짧은 답변이라 곤혹스러워 소액주주운동의 결과에 대해 되물었다.

“알다시피 소액주주의 권리를 찾았죠. 침여연대가 나섰으니 당연한 결과였을까요. 내 권리를 찾겠다고 참여했지만, 도움을 받았으니 나누는 건 당연한 거죠. 그래서 가끔 날개를 달아줍니다.”

도움 받았다고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 우리는 자본주의가 극대화된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승자가 독식하며 아흔아홉 가진 놈이 하나 가진 놈 것마저 빼앗는 세상이다. 부자들의 나눔 행사는 그럴듯하게 포장된 이벤트. 진정성이 의심되는 행사는 거창하고 멋지지만 하늘을 날지 못하는 타조의 날개를 연상케 한다. 날개(참여연대에 필요한 소모품 등을 지원)달아주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 그가 회원모임 산사랑 회장이며, 올 한 해 회원모임을 이끌어갈 회원모임협의회 회장이다.

“포부? 회장에 대한 준비가 없었기에 아직 이렇다 할 말이 없어요.”

낭패다. 이렇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인터뷰이(interviewee)는 드물었다. 더구나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참여연대에서, 회원모임을 대표하는 장長으로서 준비가 없었다니. 지나친 겸손인가, 솔직한 고백인가. 10여 년을 산사랑의 성골회원으로서 모임을 이끌어온 저력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까.

“지금 회원모임이 와해 상태나 다름없으니 어떤 것부터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청년마을, 참여현상소, 참좋다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지, 한때 잘 나갔던 작은권리찾는 사람들도 사라졌으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머리가 무거워요.”

휴면상태나 다름없는 회원모임이 왜 그렇게 됐는지 궁금했다.

“시대적인 조류이죠. 모든 일에는 흥망성쇠가 있듯이 우리도 지금 그런 상태이지요. 기운이 부칠 때는 그냥 있는 거예요. 회원모임만 어디 그래요? 우리 참여연대 전체도 그렇잖아요. 힘을 아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분위기가 너무 무겁다고 느꼈는지 금세 역설의 변으로 희망을 제시했다.

“불경기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검소해지겠지요. 소비가 줄어들면 지구환경도 좋아지고 공기도 맑아지고 북극의 얼음도 천천히 녹을 것이고, 좋은 일이 더 많이 생길 겁니다. 가뭄에 저수지가 바닥나면 그때야 사람들은 바닥을 파고 청소를 하며 물 받을 준비를 했다고 합디다. 회원들이 어디 저를 보고 참여연대에 나옵니까. 회장 자리에 대하여 부담 크게 갖지 않습니다, 솔직히.”

대교약졸大巧若拙(아주 교묘한 재주를 가진 사람은 그 재주를 자랑하지 않으므로 도리어 서툰 것처럼 보인다)이라는 경구가 절묘한 비유이리라.



뜻을 바로 전할 채널이 있었다면


‘솔직히’라는 말을 기회삼아 참여연대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을 구했다.

“여태껏 해왔던 대로 하면 되죠. 힘에 부치면 우리도 구조조정을 하고. 그간 너무 많은 일을 했지요. 광우병 파동 때 힘을 너무 쏟아버린 것 같아요.”

아쉬움 역력한 표정으로 예전에 본 영화의 한 장면을 옮기며 자신의 뜻을 전하는 듯했다.

조직폭력배 두목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르치는 교훈─ 첫째 적 앞에서 절대 흥분하지 마라, 둘째 적을 면밀히 분석하라. 셋째 힘을 70%만 써라.

“국민의정부나 참여정부 시절 우리의 뜻을 바로 전할 수 있는 채널을 못 가졌던 게 문제였죠. 그 정권에 들어가서 한 자리 하는 걸로 일을 한다고 생각했으니 … 저는 우리의 꿈을 이루어주는 통로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운동을 하던 사람이 내 말을 들어만 주는 국회의원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했는데, 그가 막상 의회에 들어가니 숫자가 너무 적어서 일을 못 한다고 하더군요. 그런 자들이 탈당하고 분열하고, 모든 정당의 지지율을 합해도 한나라당을 못 따라가는데 무엇을 바라겠어요?”

조용한 어투가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갔다. 신문·방송이 정권의 홍보 수준으로 격하되고, 국민의 알권리를 핑계로 선정적인 보도만 일삼는 황색저널리즘을 누구 탓으로 돌리랴.

더구나 미디어관련법 개정 논란은 또다시 정국을 요동치게 할 것이다. 힘을 가진 여당은 국회에서 법안 통과를 강행할 것이고, 힘없는 야당들은 물리적인 저지로 여론의 몰매를 맞으며 고군분투하겠지만 결과는 어떠할까? 매체 간의 융합은 세계적인 추세라며 신문·방송 겸영을 원하지만, 공공성을 가져야 할 언론의 기능이 경제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선거 때면 후보 주변에 몰려드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권 때문에 후보들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고 여론을 호도하지요. 저는 싫은 소리를 들어도 말을 합니다. 그래야 그 후보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한 번 생각하겠죠. 두 번 말하면 두 번 할 것이고. 이런 사람이 주변에 많은 후보가 깨끗한 정치를 합니다. 그런 후보를 유권자는 뽑아주어야 하는데…….”

아쉬움과 우려, 이성과 의지, 비판과 낙관이 웃음 속에 함께 배어 나왔다. 회원모임은 이제 든든한 회장님을 모시게 된 셈이다. 참여연대 힘이 부치면 그대로 있으면서 시절을 기다리는 게다. 불경기가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발문
미국을 보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면서도 최악의
의료시스템을 갖춘 나라′ 돈이 없어 병원에도 못 가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전체 인구의    가 의료사각지대에 있는 나라′ 그 나라의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나라가 우리나라죠°


선거 때면 후보 주변에 몰려드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권 때문에 후보들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고 여론을 호도하지요° 저는 싫은 소리를 들어도 말을 합니다°
그래야 그 후보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한 번 생각하겠죠° 두 번 말하면 두 번 할 것이고°
이런 사람이 주변에 많은 후보가 깨끗한 정치를 합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