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3월 2009-03-01   1309

최성각의 독서잡설_ 매춘여성이 아니라 ‘성노동자’라 불러다오




매춘여성이 아니라 ‘성노동자’라 불러다오



최성각  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






                       이성숙, 『여성, 섹슈얼리티, 국가』책세상, 2009



오랜만에 좋은 신간을 읽었다. 이성숙이라는 학자가 쓴 『여성, 섹슈얼리티, 국가』(책세상, 2009)라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적잖았지만, 이 책을 널리 권하고 싶은 것은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우리나라 성노동자(매춘여성)들의 주장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외침과 당연한 소망(권리주장)을 다소나마 이해하게 된 것은 큰 소득이었다. 내게 소득이었다고 생각하는 내용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는 체험이 되었으면 좋겠다. 80년대에 20대였던 저자는 그 시기에 제정신을 가진 젊은이답게 한국에서 민주화, 노동 및 계급문제에 몰두하다가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여성사 공부로 학위를 얻었다. 그런데 그 주제가 바로 빅토리아기(期) 페미니즘이었다.


제국주의, 이중적 성적억압에서 페미니즘 싹터 

빅토리아기는 1837년부터 1901년까지 빅토리아 여왕이 지배하던 64년간의 시기를 말하는데, 이즈음 전 세계 바다의 상선 세 척 중 하나가 영국 것이었으며 세계 철도 3분의 1이 영국이 건설한 것이었다. 어떻게 서유럽의 한 섬나라가 온 세상을 무대로 이토록 대규모 ‘깽판’을 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런데, 그랬다. 제국주의 시대, 영국이 온 세상을 대상으로 마구잡이로 대규모 학살과 수탈을 일삼던 시기를 바로 빅토리아기로 이해하면 된다. 그러니 이 시기 영국인들이 계몽과 근대를 앞세우고 챙긴 어마어마한 부를 토대로 얼마나 ‘우아’를 떨고, ‘고상’을 떨었을까, 짐작되고도 남는다. 그 우아와 고상 속에 필연적으로 가증스러운 위선이 똬리를 틀고 있었으니 여성들에 대한 이중적 성적 억압이 그것이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보호해야 할 정숙한 섹슈얼리티’와 ‘비난받아 마땅한 섹슈얼리티’로 서열화 되었다. 정숙한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오로지 자식을 얻기 위해서만 존재하고 여성은 성적 욕망이 없는 장작토막으로 간주되었다.

반대급부로 매춘여성들은 비난받으면서 향락의 대상으로 온갖 성적 실험의 도구가 되었다. 대영제국의 젠틀맨들은 ‘처녀성 사냥’이 곧 스포츠였다. 어린 소녀들의 처녀성은 5파운드였는데, 1884년에 영국신사들은 9살 소녀까지 임신을 시켰다. 풍요롭고 고상한 문화와 야만이 공존했던 것이다. 매춘여성들은 사회의 배수구로서 정기적으로 국부검진을 받는 물건들로 취급되었다. 매춘여성만 골라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중년신사는 ‘범죄영웅’으로서 신비화되기까지 했다. 성병 전염의 동인(動因)이 늘 남성이었건만 매춘 여성에게만 가혹한 성병방지법이 시행되었다. 이는 결국 매춘여성과 시대를 뛰어넘은 일부 초기 페미니스트들이 국가에 대한 불복종운동을 전개하게 만들었다. 페미니즘은 급기야 ‘여성에게는 투표권을, 남성에게는 금욕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정치운동으로까지 번지게 된다.

하필이면, 빅토리아기에 페미니즘이 발아된 까닭은 국가가 극성스레 개입한 가혹한 성적 억압과 그 시기 영국신사들의 성적/도덕적 이중성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초기 페미니스트들은 식민지 여성들에 대한 성적 억압과 야만에 대해서까지는 눈을 뜨지 못했으며, 제국주의 신민으로서의 우월성을 포기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

영국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쳐도 될 것 같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에 담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한국여성 섹슈얼리티의 역사는 세 시기로 볼 수 있다. 첫째는 해방과 6·25 난리 속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쾌락과 생존의 수단이 되었는가, 둘째는 군사독재 시절과 개발시대(1961~1990)에 여성의 성이 어떻게 경제적 이윤 회로에 흡수되어 성의 공론화 담론시대를 열었는가, 그리고 1990~2005년에 이르며 여성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정체성과 주체성을 확립해갔는가, 하는 구분이 그것이다.


해방과 미군정기 – 성노동, 쾌락과 생존의 수단 

전쟁 후 국가는 미망인의 존재에 대해 부담스러워했다. ‘미망인’이라니? 자의(字意)로는 ‘죽은 자의 아내’라는 뜻인데, 달리 말한다면 ‘아직 죽지 않은 여인’으로 풀어도 된다. 이런 끔찍한 표현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마치 옛날에 환향녀(還鄕女)를 ‘화냥년’으로 둔갑시켰듯이 전쟁은 남성들이 일으켜놓고, 여성들에게는 살아 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라고? 그런 착란적인 요구를 하면서 이 나라 남정네들은 다소 겸연쩍었는지 1955년 ‘어머니날’을 제정한다. 국가는 그런 기념일을 제정함으로써 은연중에 미망인들에게 “시부모 극진히 봉양하고, 자식이나 잘 키워라”, 그러면 ‘숭고한 어머니’로 대접해주겠다, 그런 꼼수를 부렸다. 미망인은 쉽게 매춘이나 첩의 구실로 채워지기도 했으며, 성 질서를 파괴하는 불온집단으로 각인되기도 했다.

또 다른 불온한 섹슈얼리티는 양공주, 미군 기지촌 여성들이었다. 한국정부나 미군들은 이들을 ‘바걸’이니 ‘호스티스’니 ‘비즈니스 우먼’이니 ‘위안부’ 등 다양하게 부르며 남한의 자유를 위해 열심히 싸우는 미군을 즐겁게 해주는 엔터테이너로 간주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늘 접대부 생활에 죄의식’을 지닌, ‘착하고 순종적이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생활력 강한 ‘살림꾼’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빠뜨리지 않았다.

전쟁이나 법률, 기념일 제정 등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힘의 주체는 늘 남성들인데, 때로 여성들에게 병과 약을 같이 선사하는 방식은 가증스러움의 극치라 아니 할 수 없다.



개발독재시대 – 외화벌이 산업역군이 된 매춘여성 

개발시대에 국가는 우선 산아제한으로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개입했다. 지금과 달리 높은 출산율을 경제성장의 저해요인으로 여겼다. 60년대 평균 출산율은 6.3명, 그때에는 둘만 낳아 금지옥엽 잘 기르자고 선동하더니, 2005년 이후에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까지 주면서 세 자녀 이상을 권유하고 있다.

그보다 어이없는 일은 매매춘을 금지하는 윤락행위등방지법이 있었는데도 1973년에는 외국인을 위한 매매춘을 하나의 국책사업으로서 드높여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기생관광 장려책이었다. 정부는 기생관광을 위한 매춘여성들이 합법적으로 영업하도록 호텔통과증과 미모수준, 가정형편, 학력을 밝히는 신청서를 작성시켰으며, 다양한 안보교육과 경제발전에 관광사업(매춘사업)이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한 교양강좌를 실시했다. 1973년 6월 문교부장관은 매춘여성을 애국자이자 산업역군이라 부추기며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최대의 서비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달러에 환장한 국가는 할 말 안 할 말을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1978년 기생관광 목표치는 105만 명에 4억 2천만 달러였고, 1979년에는 120만 명에 5억 달러였다. 신문에는 연일 기생파티광고가 실렸다.    

신흥공업국으로 부상한 한국은 세계 속에서 매춘의 천국이기도 했다. ‘한강의 기적’에 섬유산업 노동자들, 서독 광부들, 사우디의 건설노동자들, 베트남에서 대리전쟁을 했던 젊은이들 외에 매춘여성들의 ‘아낌없는 서비스’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국가는 달러가 되지 않는 매춘이나 성의 부도덕 문제나 권력의 도덕적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는 가차 없이 매춘여성들을 탄압하고 범죄자 취급을 했다.



성노동자 권리운동 촉구되기까지
 
90년대로 책장은 넘어간다. 60년대에 정비석, 70년대에 최인호, 조선작이 있었다면, 90년대에는 마광수, 장정일 등이 등장한다. 막 밀려온 세기말의 성 담론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에 휩쓸려 성 해방과 개인적 자유주의가 제창된다. 이때 구성애처럼 성적 담론으로 일약 스타가 된 이들도 출현했지만, 제도권의 보호 속에서 ‘올바른 성문화 형성’이라는 허울을 표방하면서 가부장적 가족 이데올로기 강화로 결론을 내리곤 했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성매매방지특별법(성특법)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성특법을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은 매매춘뿐 아니라 결혼제도 역시 근절해야 한다는 한 극단까지 갔다. 어떤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스트라면 사창가로 진출해야 한다”고 권장하기까지 했다. 마치 서구 제국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식민지 여성의 구제’는 계몽된 백인여성의 임무라고 여기며 식민지로 진출했듯이, 그런 주장은 매춘여성을 구제해야 할 타자로 대상화했다. 성특법은 한국 페미니즘의 정치적 성과임에 틀림없지만, 페미니스트들 간의 분열을 만들어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런 가운데 한국의 주류 페미니즘의 성담론은 ‘도덕적 엄숙주의’를 강조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평가다.

성특법은 룸살롱이나 비밀 매춘업소의 여성들은 봐주고, 집창촌의 여성들만 단속에 걸려 전과자가 되었다. 이들 매춘여성들은 어디로 갔을까? 지하로 잠적했거나 외국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지하로 잠적하는 것을 거부한 매춘여성들이 외쳤다. “우리는 매춘여성이 아니라 성노동자다”라고. 그러면서 힘을 합쳐 거리로 나섰다. 이른바 2004년부터 이듬해까지 진행된 성노동자 권리운동, 혹은 매매춘 비범죄주의의 촉구다. 매춘여성은 범죄자가 아니라 성노동자라는 것, 따라서 개인의 주체적인 정체성 확립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저자가 요약한 권리운동은 10가지로 요약된다. 나는 이 내용에 깊이 공감했다. 성노동자들이 합법적인 다른 업종처럼 특정한 장소에 매매춘업소를 형성하게 되면 업주도 자신의 사업을 보호하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고, 성노동자 역시 폭력배들을 당당하게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모욕과 폭력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며, 건강과 예방교육이 용이해짐으로써 안전한 성이 가능해질 것이며, 전과자라는 낙인에서 해방되어 두려움 없이 쉽게 다른 직종으로 이동할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이다.

‘매매춘 비범죄주의’가 유엔규정에 처음 발의된 때는 1949년, 유엔총회 미국 대표였던 엘리노어 루스벨트에 의해서였다. 50개 국가가 이를 비준했으며 현재 호주의 일부 주와 뉴질랜드에서 실현되고 있다.

“우리도 당신들이 그러하듯이 하나의 직업인이다, 당신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로는 노동자이고, 우아한 말로는 ‘근로자’이다.”

이 간단하고도 당연한 주장을 수용하는 것이 그토록 힘든 일일까? 이 책은 진심어린 어조로 묻고 있다. 이런 주장을 펼친 저자에게 대학교수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운동가인 모씨는 “그렇담 성숙 씨도 돈 필요하면 성매매 하겠네요”, “딸이 성매매를 해도 가만히 있겠네요”라고 조롱했던가보다. 저자에게 이 대단한 페미니스트의 조롱은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어떤 영역에든 귀족들이 있다. 성노동자의 인권을 항구적으로 유린하는 것은 국가와 비정하고 위선적인 사회통념뿐 아니라, 표방하는 것이 무엇이든 바로 이런 사이비 귀족들의 자기기만과 이중성도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뼈 시리게 다시 확인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느 선 이상 생각을 전개시키기 어려운 성노동자 문제를 이 책은 명쾌하게 그 해결책과 방향까지 제시해준다. 성노동자들의 소망과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을 묵살하고 외면할 자격을 갖춘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그야말로 범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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