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3월 2009-03-01   1430

삶의 길목에서_꼴불견 해외여행




꼴불견  해외여행



고진하
참여사회’ 편집위원

경제가 어렵다는 마당에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자축할 일이 있어 여럿이 오래 전부터 다달이 계를 부어 간 알뜰여행이니 너무 눈 흘기지 마시길. 집을 비운 닷새 중 2박3일은 아이들끼리 집에 있었다. 외할머니를 오시게 하려 했으나 저희들끼리 한번 그렇게 해보고 싶다 했다. 큰애는 평소에 불안을 민감하게 느끼는 아이다.

철모르고 쿨쿨 자는 동생 곁에 누워 도둑이 들어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동생을 먼저 창문 넘어 도망가게 하고, 어쩌고 궁리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다. 동생에게 엄마 없는 동안 언니가 잘해주더냐 물으니 대뜸 “내가 더 잘해주었는데” 한다. 자기가 언니보다 일을 많이 했다는 뜻이다. 엄마가 없으니 계모 밑에 있는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언니가 이제 엄마 속을 알 것 같다고 말하더라 했다.

엄마 없는 동안 아이들도 좋은 경험을 했다.

이번에 다녀온 곳은 태국.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거리가 멀지 않고,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겨울에 더운 나라를 간다는 매력에 끌려 선택한 여행지이다.

태국에 가보니 실제로 한국인 관광객이 참 많았다. 수도인 방콕 주변에서는 웬만한 곳에서 다 마주칠 수 있었다.

반면 방콕을 벗어나 몇 시간만 가도 한국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 곳에는 유럽인들이 북적댔다.

여행문화가 다변화되고 있다지만 한국인이 아직도 대도시와 볼거리 위주의 관광에 머물러 있는 반면 유럽 사람들은 휴양과 체험 위주의 여행을 즐긴다는 증좌로 보면 될 것이다. 해외여행이 보편화된 지 오래라 해도 내용과 질적 측면을 살펴보면 후한 점수를 매길 수만은 없는 것 같다. 짧은 경험을 통해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특히나 한국 여행자들의 에티켓은 아직도 2% 부족하다는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첫날, 밤비행기를 타고 방콕에 도착하여 호텔에 짐을 푸니 자정이 훨씬 넘었다. 그곳은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묵는 곳이었다. 새벽 두 시 넘어 든 잠은 고작 세 시간 정도밖에 이어지지 못했다. 어수선한 발자국 소리, 부산스럽게 문 두드리고 여닫는 소리, 밥 먹으러 가자고 다른 일행들이 문 밖에서 서로 부르고 깨우는 소리에 잠을 깨고 말았다. 방음처리가 부실한 탓도 있겠지만 새벽의 호텔 복도는 로비보다 소란스러웠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반쯤. 애써 잠을 청해보았지만 소음이 계속돼 다시 잠들기는 어려웠다. 옷을 걸치고 나가 아직 자고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 조용히 좀 해주시라고 부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을 설치고 나니 빡빡하게 짜인 첫날 일정이 버겁게 느껴졌다.

셋째 날 같은 호텔에 다시 투숙하게 되었을 때 걱정이 된 우리는 한국인이 없는 층에 방을 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그 날은 느긋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외국에 나가서 같은 나라 사람을 피해야 하는 상황이 좀 씁쓸했지만 말이다.

여행사나 가이드들은 관광지나 쇼핑 소개에만 쓰지 말고 복도에서 조용히 다니고, 문은 살며시 여닫고, 몰려다니며 떠들지 말라고 관광객 예절 교육도 시켜주었으면 싶다.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떠는 꼴불견은 다른 곳에서도 기다리고 있었다. 태국의 전통마사지를 받아보고 싶다는 일행이 있어 마사지 숍을 찾게 되었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업소라 손님들이 모두 한국인이어서 가게에 들어선 순간 어쩐지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매트리스에 눕자 커튼이 쳐지고 주위가 어둑해졌다.

한숨 자거나 조용히 쉬면서 하루의 피로를 풀기에 알맞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한국 남성 손님들이 들어왔는지 갑자기 왁자지껄해졌다. 그들은 마사지 숍이 자기 집 안방이라도 되는 양 시끄러운 어느 지방 사투리로 시시껄렁한 잡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안하무인의 소란행위를 견디다 못해 우리 일행이 “한국 남자들 어디 가나 시끄러워. 좀 조용히 합시다” 하고 주의를 주자 그때서야 조용해졌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최근 태국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감정이 악화되었다 한다.

원인은 한국 남성이 태국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이 최근에 연거푸 두 건이나 일어났기 때문이다.
현 왕조 성립 이후 외세의 지배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는 긍지가 대단한 태국인들에게 외국인에 의한 자국 여성의 피살 사건은 충격과 함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힌 사건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같은 방식으로 되갚아주어야 한다는 감정적인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며 가이드는 행동 조심을 당부했다.

가난한 나라에 가서 돈이면 다 된다는 식으로 천박하게 행동하거나 마초근성을 드러내는 미성숙함, 이제는 졸업할 때도 되지 않았는지.

마지막으로 반강제적인 쇼핑은 여전히 패키지 여행의 고질병이다.

우리만 해도 사흘 중 하루가 온통 쇼핑에 할애되었으니 너무 하지 않았는가.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말이다.

보석, 토산품, 라텍스 침구, 로열 젤리, 한약……. 도대체 여행을 갔는지 쇼핑을 갔는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한약 쇼핑은 교포가 운영하는 한의원에 관광객을 데려가 약을 파는 것이었다. 우리는 가이드에게 원치 않는다고 했건만, 한의원 원장은 마치 우리가 원해서 온 것처럼 인사말을 늘어놓아 그러잖아도 불쾌한데 분통 터지게 했다.

그는 한국에선 모든 한의사가 같은 방식으로 침을 놓기 때문에 한의원을 바꾸어봤자 낫기 힘들다며 이곳에서 침을 맞고 효험을 볼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생약은 탕약과 달리 좋은 약재를 쓰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진맥 후에 누구에게나 생약을 권했다. 일행 중 한 명이 약을 한 달 치 구입했는데 가격이 국내에서와 같은 수준이었다. 쇼핑이 어떤 사람에게는 꼭 사고 싶었던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겠지만 단체관광의 특성상 원치 않는 사람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단체 관광의 발전을 위해 도를 넘는 쇼핑 강제 행위는 자제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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