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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01월
  • 200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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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들의 힘으로 앞당겨야 할

한반도 평화




글·사진 김재명
<프레시안>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겸임교수

아프리카의 초원지대를 어슬렁거리는 육식동물들은 배가 고프지 않으면 다른 동물을 죽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살육’을 벌일 뿐이다. 짐승 또는 야수라 해도 마구잡이로 먹잇감을 쌓아놓았다가 썩어서 버리는 일은 없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다르다. 배가 불러도 곳간을 더 채우려 싸움을 벌인다. 오로지 내가 살기 위해, 나를 공격하는 적을 죽여야 하는 방어전쟁보다는 호전적인 침략전쟁을 벌이기 일쑤다. 인구는 세계 5%이면서 석유소비는 25%로 ‘석유에 중독됐다’는 소릴 듣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서 비롯된 ‘더러운 전쟁’이 한 보기다.

우리는 왜 이런 전쟁에 반대하는가. 전쟁은 비이성적인 유혈극이다. ‘이성적인 전쟁’이란 ‘정직한 상인’이나 ‘정직한 정치인’이란 말처럼 말이 안 되는 모순어법이다. 삶과 죽음의 극한상황에서 정부군이나 반군, 민병대 가릴 것 없이 이성적인 존재로 남기 어렵다. 전쟁이란 광풍은 우리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폭력에 중독된 인간들을 만들어낸다. 전투원의 눈초리는 살벌해지고, 행동거지는 난폭해진다. 그런 전쟁의 혼란 속에 여성이나 소년, 노약자는 물리적 폭력의 희생양이 되기 십상이다.  댄 스미스(노르웨이 오슬로 국제평화연구소 연구원)에 따르면, 1990년대 전반기 전쟁희생자 550만 명 가운데 75%가 민간인이다(4명 가운데 3명). 이런 사실은 이 땅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전쟁을 반대하는 주요한 근거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곳곳에서 진행중인 ‘소리없는 내전’

우리는 날마다 어디선가 유혈투쟁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이름도 무력충돌, 국제분쟁, 내전, 무장투쟁, 민족해방전쟁, 테러 등등 다양하다. 어떤 것을 ‘전쟁’이라고 규정할지는 전쟁연구자마다 다르다. 그렇지만 가장 많이 받아들여지는 전쟁 규정은 ‘1년 동안에 사망자가 1천 명 이상 낸 유혈충돌’이다. 전쟁과 군사분야의 세계적인 싱크 탱크인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군비·군축·국제안보 연감』 2008년도 연감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한 해 전쟁희생자 1천 명 이상을 낳은 ‘주요 무장투쟁’(major armed conflicts)은 모두 34개다. 다행히도 분쟁지역 숫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들어왔다. 이를테면 2007년 1년 동안 전쟁을 치른 곳은 13개 지역이지만 2006년엔 17개 지역이었으니, 1년 사이에 4개 지역이 줄어든 셈이다.

그러나 분쟁이 일어난 지역 숫자만 갖고 지구촌 상황이 나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역마다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터키는 한 해 전보다 전쟁희생자가 50% 이상 늘어났다. 또 다른 문제는 고질적인 분쟁지역들이다. 21세기 들어 해마다 1천 명 이상의 전쟁 희생자를 낳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카슈미르, 스리랑카(이상 아시아) 체첸(유럽), 콜롬비아(남미)는 지구촌의 단골 분쟁지역으로 꼽힌다. 이들 지역은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어왔고 살아남은 사람들조차 폭력의 위협에 떨며 불안한 하루들을 보내는 중이다. 안타까운 일은 이런 상황이 2009년 들어 더 나아질 전망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볼 점 하나. 전쟁을 ‘한 해에 1천 명 이상 사망자’ 기준으로 보는 것도 전쟁연구자들의 편의적 분류일 뿐이라는 점이다. 한 해에 990명이 죽은 전쟁은 전쟁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 분명이 전쟁이다. 절반을 뚝 잘라 500명이 죽었다 해도, 아니, 50명이 죽었다 해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큰 슬픔에 잠기게 마련이다. 요점은, 전쟁 희생자가 1천 명이 안 된다고 전쟁이 아니라고 말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도 아시아와 아프리카 곳곳에서는 국제적인 언론보도에서 소외된 이른바 ‘소리 없는 내전’이 벌어지고 있다. 총소리와 박격포 터지는 소리들은 분명히 있지만, 그런 전쟁에 휘말린 사람들의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지구촌 사람들의 안방에까지 뉴스로 전달되지 않을 뿐이다.


지구촌 평화를 위협하는 테러전쟁

2009년 새해 들어 전쟁으로 고통받아온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모처럼 밝은 기운이 흐르게 될까? 안타깝게도 그 대답은 “아니오”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지구촌 곳곳에서 총성이 터지고 피의 유혈사태는 이어지고 있다. 유일 초강대국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이란 이름 아래 벌여온 더러운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은 왜 미국을 미워하는지, 왜 테러를 하려는지, 테러의 근본동기를 헤아리지 않고 ‘테러리스트’만을 잡겠다고 나서는 것은 미련한 일이다. 제2, 제3의 오사마 빈 라덴과 그를 따르는 젊은이들이 줄을 설 것이다. 미국의 새 대통령 오바마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병력을 두 배 가량 늘려 상황을 안정시키겠다고 하지만, 미국의 테러전쟁은 끝모를 무한전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지구촌 평화의 길은 멀어져만 갈 뿐이다.

먼 남의 나라 얘기할 것 없이 2009년 한반도 상황은 어떠할까. 전쟁이야 터질 리가 없겠지만, 여러 가지로 답답한 상황이다. 북한 핵폐기를 둘러싸고 삐꺽거리는 모습도 그렇지만, 더 답답한 상황은 남북관계다. 금강산 관광은 이미 중단됐다. ‘6·15공동선언이 낳은 옥동자’라 일컬어지는 개성공단도 거의 문을 닫지나 않을까 걱정되는 상황이다.

경제전문가들은 그럴 경우 생겨날 경제적 손실이 몇 천억이니 몇 조니 셈을 한다. 그것보다 더 큰 손실은 이해와 신뢰에 바탕한 평화구축의 바탕이 무너지고, 나아가 민족통일이란 큰 틀에서 점점 멀어지는 상황 그 자체다. 일이 이렇게 꼬인 데엔 이명박 정부 탓도 크다. ‘6·15 공동선언’(2000년)과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10·4선언’(2007년)을 휴지처럼 내던지고 한미동맹에 목을 맨 이명박 정부의 오만한 반통일적 대북강공책이 문제다. 현정부의 근시안적인 대북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길 바라는 것은 어려운 일인 듯하다. 그래도 바뀌도록 압력을 넣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한반도 평화를 걱정하는 민초들의 힘, 촛불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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