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10월 2009-10-01   1244

서평_’나는 무엇일까’ 어른들도 못푸는 숙제



‘나는 무엇일까’
어른들도 못푸는 숙제


아이와 함께 읽고 대화하는 철학동화 모음


우순교 참여연대 회원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

초등학교 2학년 때 6·25를 즈음해 선생님이 숙제를 냈다. 부모님이 겪은 6·25 이야기를 듣고 적어 오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우리 동네는 시골이라 인민군을 직접 보지는 못했어. 간간이 총소리만 들렸지. 그럼 우린 솜이불을 덮고 숨었다. 총알이 무명 솜은 뚫지 못한다고 그랬거든.”

뭔가 대단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나로서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발표를 시키면 뭐라고 하지? 창피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그날 밤 나는 악몽을 꿨다. 밤인지 낮인지 모를 어둠 속에서 총성과 비명소리가 빗발치고 우리 가족은 피난을 갔다. 그리고 누군가가 죽었다.

죽음. 언젠가는 나도 죽을 것이다. 그런데 몸이 없어지면 마음은 어디로 갈까? 마음은 남을까? 살아 있는 마음이 죽은 몸을 보면 얼마나 끔찍할까?

그 뒤로 오랫동안 나는 같은 악몽을 꿨다.



어린 시절의 기억 둘.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게는 좋고도 싫은 친구가 하나 있었다. 재미있게 잘 놀다가 헤어지기 전에 꼭 이런 말을 하던 친구. 누가 너보고 이러더라, 누가 너보고 저러더라…….

억울함보다 두려움이 먼저 찾아왔다. 사람들은 나를 왜 그렇게 보는 걸까? 그때부터 나는 남의 눈을 의식했고 눈치를 봤다. 이중인격자 같아 싫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을 때 돌아올 비난이 더 무서웠다. 그 뒤로 내 학습의 목표는 오로지 고향을 뜨는 것이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기왕이면 아무도 나 같은 아이에게 신경 쓰지 않을 넓은 곳에서 새롭고 완전한 나를 구축하리라. 그러자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다.

좬나는 나야, 그렇지?좭는 독일 아동철학아카데미가 ‘스스로 하는 철학’을 기치로 뮌헨철학대학 출신 저자들과 함께 펴낸 책이다. 개성, 자유, 죽음, 정체성, 불안 등 어린이들이 일상에서 소소하게 부딪칠 수 있는 철학적인 문제 15가지를 각각 동화로 풀어내고 각 이야기 뒤에 몇 가지 질문을 실어 스스로 생각해 보게 한다. 마지막에는 부모와 함께 읽을 참고 글을 제시해 주제별 철학의 개념과 관련된 철학 사상을 간단히 소개하고 있다. 동화는 재미있고, 제시된 질문과 참고 글은 진지하고 깊이 있다. 

철학을, 논술 시험을 잘 보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현실에서 모처럼 철학을 철학답게 다룬  어린이 책이 나왔다기에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들었다. 그러고는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숨겨진 주제의 깊이와, 철학의 문제를 윤리나 도덕의 문제로 귀결 짓지 않은 과감함에 깜짝 놀랐다. 책을 덮은 뒤에는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걸까? 나는 무엇일까? 무엇이 나를 세상의 단 하나뿐인 ‘나’로 만드는 걸까?

어른인 나도 여태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책에서는 술술 잘 읽히는 재미있는 동화 뒤에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져 놓는다. 실은 아이였을 때 우리 자신도 얼마나 많이 이런 의문에 휩싸였던가? 
철학이 말 그대로 지혜의 학문이라면 이런 질문에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어린이들이 스스로 철학을 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 과정을 건강하게 헤쳐 나가 스스로의 답을 찾은 경험이 있다면,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얼마나 단단하고 그러면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나는 그 과정을 회피했기에 오랫동안 깊은 불안에 시달렸고, 어쩌면 내 아이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게 될 순간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와 같은 부모를 위해 책에서는 또 하나의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이야기 끝에 살짝 붙어 있는 참고글이 그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나’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체험하고 알아보기 위해 또 다른 ‘나’가 필요합니다. 또 다른 ‘나’는 바로 상대방이지요. 이와 관련해서 독특한 점은 한 사람이 어떤 개성을 지니는가 하는 점은 미리 확정되어 있는 내면적인 본성이 아니라 만남이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을 할 때 굳이 죽음을 생각하고 싶지 않으므로, 죽음이라는 척도를 가능하면 멀리 떼어놓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며 어떤 결정을 내릴 때에 자신의 죽음을 고려해야 합니다…”

만약 내 어린 시절에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눌 사람이 곁에 있었거나, 이런 문제를 고민해 보게 하는 책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겉보기에 큰 차이가 없을지라도 알맹이로서 내 삶은 훨씬 풍성하고 충만했을 것이다. 적어도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 두려워 문제를 회피하지는 않았겠지.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비단 어린이뿐만 아니라 함께 읽는 부모에게도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성장이란 어린이에게만 부여된 숙제는 아니니까. 더욱이 아이와 함께 마음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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