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9월 2009-09-01   1321

김대중 대통령 추도사_당신이 꿈꾸었던 세상, 우리가 이루어가겠습니다




당신이 꿈꾸었던 세상,
우리가 이루어가겠습니다



박원순 변호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어느 샌가 우리도 전직 대통령들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대통령을 모시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물어봅니다.
과연 우리가 존경할만한 대통령이 있는가라고.


또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과연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대통령이 있는가라고.


그리고 온 세상에 물어봅니다.
과연 우리에게 용서와 화해를 가르쳐준 대통령이 있는가라고.


온 국민들에게 물어봅니다.
절망과 어둠의 시대에 고난에 처한 국민과 더불어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눈 대통령이 있었는가라고.


우리 시대에 물어봅니다.
진정으로 국정을 위한 준비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국난을 헤쳐 나갈 지혜를 갖추었던 대통령이 있었는가라고.


지구촌의 사람들에게 물어봅니다.
과연 세계인들이 진정으로 그 용기에 감동하고 그 헌신에 동의하며 마음으로부터 지지와 존경을 보낸 대통령이 이 대한민국에 있었는가라고.


다시 물어봅니다.
우리 현대사에서 정말로 대통령다운 대통령이 있었는가라고.


오직 유일하게 예라고 답할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당신, 당신뿐입니다.


가난한 낙도에서 태어나, 불행한 시대를 맞이한 당신 앞에는 늘 절망과 수난의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생애는 독재와 억압, 구금과 연금, 납치와 망명의 기나긴 핍박과 어둠의 세월이었습니다.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한 번의 사형선고를 받고, 오랜 기간의 영어생활을 하고
수년간의 망명생활을 해야 했던 당신은 어찌 그리 지독한 운명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던 것인가요?


조국이 독재와 절망의 바다에 빠져있는데 당신만 거기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겠지요.
아니 당신은 조금만 타협하면 얼마든지 그런 형극의 길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정상배들이 판을 치고 변절자가 속출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당신만은 의연하게 불의와의 타협을 거부하고 푸르른 소나무처럼,
굳건한 대지처럼 원칙과 철학을 지키고 목숨으로 국민들의 곁을 지켰습니다.


끝까지 독재와 불의에 저항하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투쟁함으로써 스스로 불행한 시대의 희생양이 되어
불운한 조국의 제단에 바쳤습니다.


그럼으로써 당신은 민주주의와 인권, 인간의 시대로 가는 길목에
우리의 목자가 되고 길잡이가 되고 행동하는 양심이 되고 고난의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재벌경제에는 대중경제론으로대결적 남북관계에는 햇볕정책으로성장일변도의 정책에서 상생의 분배가 함께 하는 균형 잡힌 사회복지정책으로늘 당신은 대안을 가지고 정치를 했습니다.


늘 당신은 꼼꼼하게 메모하고 작은 수치를 외우는 쫀쫀한 정치가였습니다.
모두가 부패와 주지육림의 요정정치를 즐기고 있을 때 당신은 독서하고 학습하고 공부하는 샌님 정치가였습니다.
당신이 질의하는 날에는 각료들이 답변준비로 밤을 설치던 전설이 생겼습니다.


당신은 1971년 장충단공원 연설에서 “이번 선거에서 박정희 씨가 승리하면 선거 없는 총통시대”가 올 것이라고 단언하고  예언했습니다.   과연 유신이 실시되고 선거는 사라졌습니다.


이런 놀라운 통찰력은 바로 그런 학습의 결과였습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대통령, 현명한 지도자의 모습을 당신에게서 찾았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한 다음  첫 내각에서 아주 보수적인 인사를 초대 통일부장관에게 임명하였습니다.
시민사회는 모두 반대하였습니다. 제가 당시 사무처장으로 있던 참여연대에서도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 나는 당신의 현명한 인사에 대해 감탄했습니다.
당신과는 생각이 다른, 그러나 당신의 반대파를 대변하는 사람을 통일부 장관에 앉힘으로서
반대파와 보수파를 껴안고 당신의 대북정책을 그대로 밀고 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포용의 정치이고 상생의 정치입니다.
오바바 미국 대통령이 최대의 정적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을 껴안고 적대적 정권인수의 상황에서
전 정권하에서 임명된 게이츠 국방장관을 유임시킨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지혜가  참으로 아쉬운 시대입니다.


당신은 당신을 박해하고 핍박한 모든 사람을 용서하겠다고 선언하고 또한 실천하였습니다.
당신을 납치하고 당신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당신을 빨갱이로 음해한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당신의 보복을 두려워하고 있었을 그 사람들에게 당신은 포용과 용서의 손을 내 밈으로써
이 땅에 평화가 정착하고 대화가 숨 쉬도록 만들었습니다.
당신의 필생의 사업은 역시 남북평화의 정착입니다.
오랜 세월 가꾸어온 당신의 남북정책은 집권 후에 결국  햇볕정책으로 승화되고 마침내
남북정상회담과  6·15선언으로 꽃피었습니다.
냉전의 찬바람 대신 화해와 평화의 따뜻한 바람이 이 한반도에 불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뿌린 씨는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으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노벨평화상은 당신의 집념, 당신의 꿈, 당신의 헌신에 대한 작은 보답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당신과 우리 모두가 함께 일구었던 민주주의의 가치와 인권의 깃발이 내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고 소수자가 탄압받기 시작하였습니다.
대량투옥이 재개되고 공안기관의 발호가 재발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참으로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것이라는  것을 새삼 절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씨뿌리고 가꾸었던 남북대화와 교류, 경제협력이 거의 파탄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나라는 이념갈등, 노사대결, 빈부격차, 지역감정, 세대갈등으로 찢어져 있습니다.
평생 몸 바쳐 헌신했던 그 모든 가치와 성취들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러한 역사의 역진을 막기 위해 당신은 안간힘을 쓰셨습니다.
그러나 미처 이런 역사의 퇴보와 퇴행을 막기 전에 당신은 가셨습니다.
많은 사람의 걱정과 우려, 반대와 저항 속에서도 그 역류의 흐름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님, 너무  걱정하지 말고  편히 가십시오.


그 언제 불의가 정의를 이긴 적이 있었던가요.
그 언제 독재가 민주주의를 이긴 적이 있었던가요.
그 언제 부당한 권력이 국민의 소망과 염원을 영원히 억눌렀던 적이 있었는가요.
그 언제 한강의 물이 하류에서 상류로 거꾸로 흐른 적이 있었던가요.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상생, 용서와 통합, 자유와 정의, 남북의 대화와 협력
당신이 꿈꾸었던 그 모든 가치와 지향들은 저 창공의 해와 별처럼 다시 살아올 것입니다
당신이 남긴 그 뜻, 그 꿈을 우리가 그대로 간직하고 온 몸을 다하여 실천함으로써
당신이 바라고 지키고 성취했던 그 모든 것을 우리가 지킬 것입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2009년 8월 22일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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