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5월 2009-05-01   1041

회원의 세상살이_사교육 시장의 공포와 인간의 행복




사교육 시장의 공포와 인간의 행복



이충도
참여연대 회원

얼마 전에 특목고 입시설명회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특목중·고가 설립 초기부터 인기 절정이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서울, 경기도가 고교 평준화를 하면서 목표를 잃은 평촌, 분당의 학부모들에게 ‘변별력’ 을 가진 학교로 외고 중심의 특목고를 소개하면서 붐이 일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특수목적 고등학교는 9개 계열, 129개다. 하지만 사교육 시장에서 얘기하는 특목고는 과학계열, 외국어계열로 한정되어 있다. 1년에 약 2만 명을 특목고에서 선발하는데 버블8(사교육에서는 부동산 버블7처럼 사교육 시장 버블8이 있다, 강남, 서초, 송파, 목동, 중계, 평촌, 분당, 일산)을 중심으로 약 20만 명의 학생이 특목고에 진학하려고 사교육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교육 시장에서 버블8의 학원은 영어, 수학, 과학으로 특화시켜 시장을 편성하고 있다.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은 모든 단위과목을 가르치는 종합 학원에서 입시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특화된 학원을 옮겨 가며 사교육을 받고 있다. 물론, 대치동을 중심으로 한 일부 부티크 학원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들은 월 수백만 원의 학원비로 극소수의 계층을 대상으로 한다. 사교육 기관은 자신들의 특화 과목에 따라 다른 전략들을 가지고 있지만, 독특한 공통점이 있다.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 한해에 약 60만인데 버블8 지역 외 학생들, 약 40만에 해당하는 학생들을 시장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은 동네 보습학원을 다니지만 일단 버블8 지역으로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 학원들의 본격적인 마케팅이 시작되는데 대개가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에게 공포를 심어 주는 것부터 시작한다.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해 이런 말이 회자 되고 있다.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이해력, 할아버지의 경제력. ‘내 새끼가 이 무한경쟁의 세상에서 도태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에서 비롯된 이 우습지 않은 우스갯소리는 사교육 시장의 모토나 다름이 없다. 사교육 시장에서는 엄마의 정보력을 상당히 중요하게 보는데 대체로 엄마의 정보력이란, 7할이 옆집 철수 엄마에게 들은 내용을 토대로 한다. 한국의 교육 정책은 매년 바뀌기 때문에 옆집 철수 엄마의 얘기는 언제나 1년 전 얘기이고 입시 컨설턴트나 학원 담당자들이 ‘지금은 그게 아니다’, ‘그러니까 아이가 낙오된 것 아니냐’는 말 한 마디면 쉽게 무너진다. 학원에서는 엄마에게 정보력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막상 대면하게 되면 ‘그 따위 정보력으로는 아이를 제대로 교육시킬 수 없다’고 한다. 제 아무리 이명박을 성토해온 아빠라도 엄마가 학원에서 듣고 온 심각한 공포에 대해 듣게 되면 제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게 된다. 당장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이해력이 부족한 아빠를 넘어 아이의 미래를 망치는 아빠가 된다. 할아버지는 숨겨놓은 땅을 팔아야 할 판이다. 엄마의 정보력은 사교육 시장에서 더 많은 공포를 주입하는 통로로 활용된다. 어느 자사고에 입학하는 중학생의 이력이 A4 용지 4장에 가득 찬다. 학원에서는 이런 이력서를 내밀려 당신의 아이가 얼마나 현실에 밀려 있는지 단박에 보여준다. 아이의 미래가 그 안에 다 들어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 그것이 사교육에서 바라는 공포다. 일단 이 공포에 빠지고 나면 아이의 행복이란 근원적인 물음조차 공포 안에서 찾으려고 한다. 60만의 입시 준비생에서 20만 안에 들어야 하고 다시 1할인 2만 명 안에 들어가지 않고서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는다. 교육이란 인간이 스스로의 자존감을 지키며 행복하게 살기 위한 여러 길을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의 교육 정책은 아이들의 행복이 아니라 변별력이란 겉치레만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교육은 그러한 정책에 공포를 주입하며 활성화된다. 이것이 과연 이명박 씨나 이 나라 정권만의 문제일까? 자본주의에 입각한 학원의 잘못된 마케팅만의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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