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7월 2009-07-01   1190

헌법새로읽기_사생활, 당신의 은밀한 공간이 위협받고 있다




사생활, 당신의 은밀한 공간이 위협받고 있다




김진
변호사


하도 황당한 세상에 살다 보니 웬만한 일에 무뎌지는 것처럼, 누구보다 인권 문제에 민감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둔해진다. 증거기록 속에서 산더미 같은 이메일을 봤을 때도 그랬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달랐다. 우선 자신들의 이메일이 도대체 언제 수사기관으로 압수되었는지 전혀 몰랐는데 어찌 된 일인지 한 번 놀랐고, 그 양과 내용에 다시 한 번 놀랐다. 한 동안 이메일로 웬만한 내용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메일 압수수색 영장을 제출받아 살펴보니, 영장에는 사람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 기재되어 있고 기간이나 수·발신자도 제한하지 않은 채 모든 메일을 보내 달라고 씌어 있었다. 영장은 그대로 발부되었고, 메일 회사에서는 시킨 대로 보냈다고 했다.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사후에 알리는 절차도 없다. 법원에 의하면 송수신이 끝난 전자우편은 현행법상 물건에 해당해 감청영장이 아니라 압수수색영장이고, 물건을 압수수색하는 데 기간을 따로 정하지 않는단다. 그렇게 100명이 넘는 사람들의 ‘포털업체 가입시부터 자료송부일까지’ 모든 메일이 검찰청으로 갔다.


“자백은 증거의 왕”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빅브라더의 시대, 증거의 왕은 단연 이메일이고 휴대폰 통화내역이며, 교통카드에 찍힌 전철역 이름이다. 돈이 문제된 사건에서 계좌추적 결과를 빼놓을 수 없다. 수사기관이 이것들을 손에 넣으면 언제, 어디에 있었고, 누구와 이야기를 했으며, 얼마의 돈을 어떻게 썼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시간문제다. 분명 인신구속을 통해 자백을 강요하고 부정확한 사람들의 기억과 진술에 의존하는 것보다 나은 ‘과학수사’라고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그 덕에 수사기관만 조사하기 편해진 것은 약 오르는 일이지만 핸드폰 통화, 교통카드 사용으로 인해 내 일거수 일투족이 누군가에 의해 확인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문명과 편익의 대가로 치르는 비용이라며 대충 포기하고 산다.

그러나 이메일 ‘내용’은 다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주고받는 이메일의 비밀이 보장된다는 전제하에 사실을 과장하기도 하고 자기 머릿속의 구상을 얘기하기도 하고, 서로를 독려하거나 질책하며, 때로는 허황된 얘기도 하면서 자신의 사생활영역을 구축한다. 수신인만 볼 것이라는 확신으로 때로는 남들이 보면 부끄러울 사랑 고백도 적어 보내고 ‘나에게’ 쓰는 기능을 이용해 일기장에 적을 내용을 적기도 한다. 이메일 내용은 사생활의 핵심적인 공간이 되고 있다.

내가 맡은 사건에서는 수사와 재판을 위해 이메일을 압수한 것이고, 재판 과정에서만 쓰였다. 사건과 직접 관계가 없는 사적인 통신 내용을 전 국민에게 공개한 것에 비하면 정말 새 발의 피인 셈이다. 헌법에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는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는 나라에서, 21세기 ‘대명천지’에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


범죄 수사라는 공적인 목적으로 한 것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원래 기본권으로서의 사생활의 비밀은 다름 아닌 ‘국가’가 사생활영역을 들여다보는 것에 대한 보호를 제공하는 기본권이며, 사생활의 자유는 국가가 사생활의 자유로운 형성을 방해하거나 금지하는 것에 대한 보호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보호하는 것은 개인의 내밀한 내용의 비밀을 유지할 권리, 개인이 자신의 사생활의 불가침을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 개인의 양심영역이나 성적 영역과 같은 내밀한 영역에 대한 보호, 인격적인 감정세계의 존중의 권리와 정신적인 내면생활이 침해받지 아니할 권리이다(헌법재판소 2003. 10. 30. 선고 2002헌마518 판결).

그러니 이 권리가 제 힘을 발휘해야 하는 곳은 바로 이렇게 국가가 치고 들어올 때이다. “사생활이라고 하더라도 범죄와 관련이 있을 때는 법률로 제한이 가능하다”는 반론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메일을 단순히 이렇게 ‘물건’으로 보아, 다른 물건들과 똑같이 취급하는 ‘형사소송법’이 그 잣대가 되는 것이 옳은가. 통신비밀보호법은 감청한 내용 뿐 아니라 그 통신사실 기록만 조회한 것에도 비밀을 지켜야 한다고 하고 있는데, 이메일의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괜찮다는 해석이 과연 옳은가.

법률로 기본권을 제한할 때도 넘어서는 안 되는 ‘선’과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우리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마지노선으로 정하는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이고 ‘비례의 원칙’이다. 헌법재판소는 마지노선으로서의 ‘본질적 내용’을 “만약 이를 제한하는 경우에는 기본권 그 자체가 무의미하여지는 경우에 그 본질적인 요소를 말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헌법재판소 1996. 1. 25. 선고 93헌바5 결정).

그렇다면 ‘사생활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은 무엇일까. ‘사생활의 자유’란, 사회공동체의 일반적인 생활규범의 범위 내에서 사생활을 자유롭게 형성해 나가고 그 설계 및 내용에 대해서 외부로부터의 간섭을 받지 아니할 권리이고, 그 중에서도 ‘사생활의 비밀’은 사생활과 관련된 사사로운 자신만의 영역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타인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권리이므로(헌법재판소 2001. 8. 30. 선고 99헌바92 결정), 그 본질은 전적으로 사적인 의견 교환과 내밀한 마음에 관한 것이 된다.

요즈음 나는 이런 식의 무차별적인 이메일 압수수색이 가지는 위험을 몸으로도 느끼고 있다. 내 의뢰인들의 7년치 메일이 통째로 검찰청에 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혹시 내가 그동안 이상한 소리를 적어서 보낸 메일이 있지 않았을까 고민해야 했고, 검사가 위증죄로 처벌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증인들에게 메일을 보내면서는 자구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한다. 내 다음(Daum) 웹 메일에 저장되어 있는, 때로는 부끄럽고 언제나 불량한 ‘물건’ – 내가 주고받은 10,362통의 메일들을 다 내려 받은 다음, “미국 영장을 가져오라”고 한다는 지메일이나 핫메일로 망명해야 하나 고민이다.

“나쁜 일을 하지 말면 되지”라고? 모르는 소리. 기본권이 다 그렇지만, 사생활 보호는 나쁜 이야기 하는 사람도 그게 사생활이면 보호해야 한다는 데 진짜 의미가 있는 것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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