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10월 2006-10-01   1740

한국군의 역사

국군 창설의 역사

사람들은 지나간 역사 속에서 깨달음과 자부심을 얻고 밝은 미래를 다짐하는 힘을 얻는다. 우리나라 군대는 고대 삼국시대로부터 근세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쟁을 치러온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왕조시대의 군대는 어디까지나 왕실을 지키기 위한 목적의 군대였기 때문에 역사적 참고사항은 될 수 있어도 한국군의 역사에 정식으로 포함시킬 수는 없다.

전제 군주제가 아닌 공화제 시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인 민국(民國) 건립 이후의 군대부터 한국군의 역사라 말한다. 일제에 침탈당한 조국을 되찾기 위해 항일 독립전쟁에서 피 흘려 싸운 독립군과 광복군의 장엄한 무장투쟁은 왕조시대로 회귀하기 위한 항쟁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국군의 시작은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식군대였던 광복군에 정통성과 법통이 있다.

그러나 우리 국군 장병들은 이토록 자랑스러운 한국군 탄생의 역사, 항일 무장투쟁의 빛나는 전통에 대해서 잘 모른다. 국군창설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광복 후 군을 장악해버린 일본군 출신 친일 앞잡이들이 자신들의 반민족적 행태가 들춰질 것이 두려워 가장 중요한 이 부분의 역사를 고의로 삭제해버렸기 때문이다.

자부심이 없는 군대는 죽은 군대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연합작전계획이 잘 짜여있고, 최첨단 무기로 무장되어 훈련이 정확하게 잘 되어 있으며, 병참지원이 탄탄하다 하더라도 전투원들의 마음속에 자부심이 없으면 결국은 허물어지고 만다. 이 자부심은 자기가 속해 있는 군대에 대한 자부심으로부터 나온다. 군의 자랑스러운 역사에서 배우고 습득된다.

갓 들어와 어리뻥뻥 비실비실한 신병이라도 제3사단 백골부대에 전입하여 백골부대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교육받고 백골 마크를 가슴에 달아주면 그때부터 눈빛이 달라지고 똘똘해진다고 한다. 부대역사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1년간 평화재향군인회의 성장 과정을 보면서 조직의 발전은 뜻있는 몇몇 사람에게 달려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말없이 헌신봉사하고 있는 그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 부모님을 비롯한 친척들로부터 영향 받았거나 스승 혹은 선배들의 삶의 과정을 보며 은연중에 정의감과 역사의식이 배태된 분들이다. 성장 배경의 가족사와 사회적 환경의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자부심을 지켜온 이들이 열정을 쏟고 있다.

국군의 자부심 회복 시급하다.

월남전에서 미군이 패한 원인이 바로 전투원들이 그 전쟁의 목적과 의미에 대한 자부심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라크에서 미군이 패망의 길로 치닫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장병들의 마음속에 자부심을 심어줄 수 없으면 긴 시간을 놓고 볼 때는 필패하고 만다. 우리 장병들은 대한민국 국군의 역사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까?

국군 탄생의 역사적 의의와 의미는 장병들의 자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 중요한 부분의 역사를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필자는 기초군사 훈련을 받으면서 “국군의 효시는 국방경비대”라고 어물어물 짤막하게 들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는 그 다음의 설명이 이어지지 않았다.

처음 군인이 되는 과정에서 강렬한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국방경비대는 1946년 1월 치안유지의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주로 일본 군대 및 경찰에 몸담고 있던 친일분자들로 구성된 단체로서 국군 탄생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국군의 역사를 어떻게 써야 항일 독립전쟁 부분을 없애버릴 수 있을까만을 고민하던 친일세력에게 동족상잔의 6·25전쟁은 절호의 기회였다. 6·25를 아주 강하게 부각시켜 항일 무장 투쟁사를 없애버리도록 계략을 꾸몄다. 항일 독립 운동을 벌인 많은 이들을 빨갱이로 몰아 제거하는 공포천하를 만들면서 민족반역 친일도당을 애국자로 둔갑시키는 세뇌교육을 철두철미 조직적으로 시켰다.

이를 확고히 다지기 위해 국군사의 첫 장을 장식해야 할 국군의 날을 6·25 전쟁 중에서 택했다. 국군의 날은 국군 창설기념일로서 군 최대의 명절이다. 대대적인 경축 행사를 통하여 국군 발족의 의의를 되새기며 장병들의 자부심을 드높이고 국민들의 애정과 신뢰를 다지고 확산하는 날이 되어야 함에도 이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1956년 9월14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6·25전쟁 중 최초로 38도선을 돌파한 날을 기념한다며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정해버렸다. 사실 그날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조인된 날(53년 10월 1일)이기 때문에 그들에겐 매우 의의 있는 날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동족상잔의 6·25에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착각토록 조작해 놓은 것이다.

결과 사관학교를 졸업하고도 광복군 및 독립군, 육사의 전신인 신흥무관학교를 모른다. 청산리 봉오동 전투, 김좌진, 홍범도, 지청천, 이동녕,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에 대해 모른다. 이러니 예비역 장군 대부분이 민족적 자부심 없이 강대국에 대한 공포와 사대주의에 찌든 군상들로 전락해버렸다. 군사 주권인 전시작전통제권을 이유 없이 즉시 환수하라고 호통쳐야 할 이들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떼지어 반대하고 있다.

국군의 날이 대한민국의 법통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군대 광복군의 창설일(1940년 9월 17일)이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국군의 날 정상화가 바로 국군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출발점이다. 군 과거사 정리의 핵심과제다. 국군의 날을 정상화하여 국군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고취하고 군사독재에 이용만 당해 부정적으로 형성된 군의 이미지를 불식시켜 국민적 애정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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