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12월 2005-12-01   1593

집으로 가는 길에

저물 무렵 집으로 간다.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까닭은 그곳이 목적지이기 때문이 아니다. 다음날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쉬러 들르는 곳이 바로 집이다. 집은 쉬면서 생각하는 자기만의 은신처다. 잠들기 전에 하루를 되새기고, 내일의 대강을 설계한다. 집은 사람의 성격을 드러낸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을 터이다.

해질 녘에 집으로 돌아가듯, 한 해가 넘어가는 세밑에도 우리가 갈 곳은 집이다. 일 년 열두 달을 두고 보면, 12월은 전체가 저녁이다. 그래서 섣달에는 한 해를 돌이킨다. 이 마지막 달의 목표는 새해의 정월이다. 따라서 한 달 내내 정리하고 반성하며 기대에 젖는다.

우리는 안국동의 이 오래된 집으로 일 년의 귀가를 한다.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떠올리고 또 무엇을 계획할 것인가. 성찰의 대상으로 삼고 희망찬 꿈으로 꼽을 일들이 저마다 많겠다. 그럴 때 가장 떨어지고 부족한 사람부터 먼저 시작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아,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다.

우리는 얼마나 겸손하게 살았는가. 제일 먼저 따져 봐야 할 덕목이다. 함께 반성해야 할 한가지만 들라고 하더라도 단연 이것이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맞았던가, 송수화기 저편의 상대방에게 어떤 말투를 던졌던가, 글로 표현한 문장의 행간에 비수는 몇 개나 숨겼던가.

물론 우리는 한가롭게 친절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운동은 싸움이고, 우리는 거기에 동원된 투사들이다. 싸움꾼의 원칙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한번쯤 해 봐야 한다. 우리가 거는 싸움의 대상은 무엇인가. 적인가, 변화의 목표물인가. 이렇게 바꿔 말해 보면 더 쉽겠다. 우리가 누구에게 공격을 퍼부을 때, 그 목적은 적을 사멸시키는 것인가 아니면 상대의 잘못을 교정하는 것인가. 우리에게 궁극의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전투에서 승리하는 일인가 아니면 사회의 합리적인 조화와 공동의 이익을 일궈내는 일인가. 공포의 한가운데선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듯, 싸움이 진행중일 땐 곧잘 목적을 잊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스름의 계절에 함께 모여 앉아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겸손하지 못한 구석이 있었다고 느낀다면, 필경 스스로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힘을 그대로 사용하는 일을 곧장 권리의 행사라고 해버린다면, 항상 거기엔 남용의 흔적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가 금방 알아채지 못하는 얼룩이 남게 마련이다.

그래서 겸허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의 한마디, 몸짓 하나가 누구에게 심한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한 번 해도 될 일을 서너 번 반복하며 들뜨지 않았는지. 우리의 힘은 어디서 온 것이며, 우리에게 힘을 주는 이는 어디에 있는지. 그래서 적어도 이런 생각에까지 미쳐야 한다. 안국동 집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저 창밖 보도를 걷고 있는 갑남을녀의 시민들이라고.

그리하여 밤이 깊어지면, 신새벽까지 우리의 주인들과 함께 걸어도 좋다. 허우샤오시엔의 신작 영화 「카페 뤼미에르」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노래 한 구절을 흥얼거리며.

“집으로 가는 길에 생각에 잠긴다.”

차병직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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