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12월 2005-12-01   1267

실종 사건은 ‘영구적 범죄’

1989년부터 92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발생한 스리랑카 실종자 사건은, 스리랑카 정부군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에서 반란자를 축출한다는 명목아래 대규모로, 또 체계적으로 일어났다. 당시 정부는 국가전복을 기도한 자들을 색출한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으나 정작 그 피해자들은 무고한 시민, 학생, 청년들이었다.

나는 스리랑카 실종자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약 9개월 동안 스리랑카에 머물면서 30여 명의 실종자 가족을 만나 구체적인 내용을 들었다. 인터뷰 대상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그들은 가족의 실종이란 끔찍하고 불행한 사건이 일어난 날짜와 시간, 장소, 용의자 등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다. 한 인터뷰 대상자는 “실종됐던 사람들 중 시신을 찾은 가족은 그래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이 나라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라 믿고 있는 가족들도 있다. 종교의 힘으로 그 믿음을 유지하고 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믿음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시신을 찾지 못한 가족들은 장례식을 치러야 할지 아니면 생일날에 케이크를 사야할지 몰라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있다. 이처럼 실종은 다른 범죄와 달리 ‘영구적 범죄’ 혹은 ‘지속되는 범죄’인 것이다.

도대체 누구한테 신고를 하란 말이냐

정부의 사주, 동의 또는 묵인 속에 무고한 국민을 납치하고 실종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이들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집단인 경찰, 군대 그리고 준군사부대였다. 인터뷰를 통해 들었던 사건들이 스리랑카 실종사건을 대표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유사한 진행 과정을 발견할 수 있다.

인민해방전선(JVP)은 국가를 무력으로 전복하기 위해 경찰서를 공격했다. 이 당의 당원과 지지자, 소위 ‘빨간 책’이라 불리는 서적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뿐 아니라 젊은 사람은 우선적으로 정부의 납치 대상이었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질투심 또한 실종사건의 원인이 됐다는 점이다. 경찰서나 군대에서 JVP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체포하고 있을 때 갑자기 마을에서 부자가 된 사람이나 사소한 싸움으로 원한을 품게 된 사람에 대해 이들이 JVP를 지지한다고 신고를 하는 것이다. 경찰에서는 불문곡직 신고된 사람들을 불법체포, 고문, 불법 구금, 납치했다. 또 많은 사건들은 통금시간에 군인이라고 스스로를 밝힌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와 ‘몇 시간 조사 후에 풀려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거나 ‘아침에 군대캠프로 찾으러 오라’고 말하며 아들이나 남편을 데리고 가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다음 날 캠프로 찾아가면 그런 사람은 없다고 쫓아냈고, 설령 있다고 확인한 뒤에도 면회는 불가능했다.

남은 가족은 주로 전업주부로, 남편이나 아들을 찾을 방법을 알지 못했다. 지인이나 인권단체 혹은 유력한 정치인의 조력으로 경찰서에 사건을 신고해도 경찰서에서는 접수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신고는 받았으나 후일 근거 서류를 찾지 못한 사례도 있었고, 경찰서에서 요구한 대로 내용을 기술하면 접수해 주겠다고 사건조작을 시도한 경찰관들도 있었다. 유가족들은 답답한 심정으로 “경찰이랑 군인이랑 한 통속이다. 경찰들은 신고를 받지 않고 오히려 욕을 하며 경찰서를 나가라 위협하는데 도대체 누구에게 신고를 하란 말이냐?”며 울분을 토했다.

가해자들은 체포한 시민에게 혹독한 고문을 가하고 죽인 뒤 시신에 남아있는 고문의 증거들과 신원을 확인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또 JVP에 동조하는 세력이나 일반 국민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 타이어와 함께 시신에 불을 놓아 훼손했다. 군인이나 경찰이 그 주변에 숨어 있다 시신을 구경하거나 수습하려 한 사람을 JVP 지지자로 지목하여 또 다시 납치하고 실종시켰다. 이러한 이유로 시민들은 타이어와 함께 탄 시신을 방치하게 됐다. 타이어가 부족해 더 이상 시신을 태울 수 없게 되자 시체를 길거리에 방치해 두어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국가폭력에 침묵한 시민사회

스리랑카에서는 실종사건과 관련, 여러 명의 변호사가 살해당했고 40명 이상의 변호사가 나라를 떠나야 했다. JVP당원이나 지지자, 무고한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들도 경찰과 군대가 작성한 살인대상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종사건이 한창 일어나고 있었을 때, 시민사회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유가족들도 당시에는 실종과 살인, 고문이 일상적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자기 가족이 실종 당했다고 말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수만 명이 실종된 뒤에야 국제사면위원회 등 국제인권단체들과 스리랑카를 탈출한 사람들을 통해 사건이 외부에 알려졌고 그 뒤 실종자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1994년 찬드리카 반다라나야케 쿠마라퉁가는 ‘실종자 부모와 유가족단체’, ‘어머니 전선’등의 단체로부터 실종문제 해결 공약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통령 당선 후 이 단체들은 사라져 버렸고 ‘강제실종자 조사를 위한 대통령조사위원회’가 설치됐다. 실종자 유가족들이 경찰서에 찾아와 실종사실을 소상히 밝히면 사망증명서를 발급해 주었다. 이 증명서는 단순히 국가배상을 받는 데 사용됐다. 배상액은 만 17세 이하의 실종자는 우리 돈으로 15만 원, 어른은 25만 원 가량이었다.

위원회의 존속시한은 3년으로, 한 번 연장되었으나 대통령에게 최종 보고서를 만들어 제출 한 뒤 해체됐다. 위원회가 집계한 실종자 수는 2만 7,000여 명. 그러나 국내 및 국제단체는 정부 및 경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신고하지 않는 사람까지 하면 6만 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광범위한 진상조사, 가해자 처벌, 적절한 배상, 유족들에 대한 정신적 치료, 국가기념일 지정, 기념비 설립 등을 권고했으나 정부가 취한 행동은 하나도 없다.

대통령 보고에서 주요 가해자 중 한 명인 군 장성은 ‘현재 스리랑카 군대는 북부와 동부를 장악하고 있는 LTTE(타밀엘람해방호랑이들·타밀족의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반군)와 내전 중인데 만약 우리를 모두 처벌한다면 누가 이 나라를 지키겠느냐?’며 실종 사건에 군이 깊숙이 개입됐음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가해자들은 현재 모두 정계나 군대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어 처벌받지 않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공식 집계된 실종자 중 실제 JVP당원이나 지지자들은 3% 미만이라는 위원회의 보고는 당시 국가폭력이 얼마나 맹목적으로 자행되었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6만 건의 실종 사건 중 한 건만 처벌받아

공식적으로는 약 2만 7,000건, 비공식적으로는 6만 건의 실종 사건 중 현재까지 가해자가 처벌된 사건은 엠빌러피티야 학생 사건이 유일하다. 이 지역의 한 학교에서 14~19세의 학생 48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은 어처구니없게도 연애편지에서 시작되었다. 엠빌러피티야 학교의 한 학생은 같은 학교 여학생에게 연애편지를 주려고 했으나 친구가 그 편지를 낚아챔으로서 많은 학생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됐고 그 학생을 놀리기 시작했다. 연애편지를 쓴 학생의 아버지는 이 학교의 교장으로, 아들을 놀리는 다른 학생들을 타이르기 시작했다. 교실을 돌다가 아이들이 자신을 비난하는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난 교장은 이들을 정학시켰다. 교장의 아들과 연애편지를 가로챈 친구의 형 사이의 주먹다짐이 학생들의 싸움으로 비화되자, 교장은 경찰을 불렀고 학생들은 체포되었다 곧 풀려났다. 아들을 보호하기 위한 교장의 행동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교장은 근처에 주둔하며 자신과 친분이 있는 군대의 책임자에게 이들이 모두 JVP지지자라고 알렸다. 그 책임자는 통금시간을 이용해 군대를 동원, 하루에 2~3명 씩 모두 48명을 납치했다. 시신은 아직까지 찾지 못했으나, 7~8㎞ 떨어진 곳에서 타이어와 함께 불에 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100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 사건의 책임자는 법원으로부터 징역형을 선고받음으로써 6만 여 건 중 가해자가 처벌을 받은 유일무이한 사건이 되었다. 불행히도 아직까지 스리랑카에서는 실종사건이 범죄라고 명문화되어 있지 않아서 이 사건도 실종이 아닌 납치, 유괴죄로 판결을 받았다.

실종을 범죄로 단죄하려는 국제사회의 움직임

스리랑카의 인권단체는 한국의 5·18기념재단과 홍콩의 아시아인권위원회의 도움으로 기념비를 설립했고, 10월 27일을 ‘실종자 추모의 날’로 정해 추모하고 있다. 몇몇 인권변호사들과 인권단체, 실종자 유족이 힘을 모아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는 소식은 흐뭇한 일이나, 실종사건에 연루된 많은 사람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어 법안의 통과는 그리 쉽지 않을 전망이다.

1992년 12월18일 강제실종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선언문이 나온 지 13년이 지난 2005년 9월, 제5차 실무그룹은 ‘강제실종으로부터 모든 사람의 보호를 위한 국제 규약’ 초안을 채택, 이를 인권위원회에 전달했다. 주요 내용은 실종은 범죄이며, 그 피해자는 실종자뿐 아니라 그로 인해 직접적으로 고통을 받는 개인도 포함되며, 개인이 직접 위원회에 청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규약은 국가의 서명이나 비준 후 그 효력이 발생하므로, 이미 일어났던 사건은 다루지 않는다. 스리랑카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필리핀, 네팔,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카슈미르, 동티모르, 캄보디아, 인도 등 아시아의 많은 지역에서 과거에 실종이 대규모로 일어났고 현재도 일어나고 있다.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전쟁 당시 정부와 미군에 의한 학살과 강제실종, 그리고 군사독재정권에서 일어난 이데올로기적 탄압 사건들로 아직까지 낙인찍힌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에게 과연 정부는 무엇을 할 것인지 깊게 성찰하게 보아야 할 것이다. 과거청산 법안을 누더기로 만든 집단, 공권력의 인권침해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를 저지하려는 집단, 외국인이라 해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인종차별적 집단은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

과거청산은 한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도 관련된 문제다. 피해자를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한 번 만이라도 진지하게 들어보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문정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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