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11월 2005-11-01   1226

사망한 응급환자 10명 중 4명은 살릴 수 있었다!

응급의료의 문제점과 대응방안

중풍, 심장마비, 사고 같은 응급질환은 우리나라 주요 사망원이다. 이와 같은 질환으로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들이 초기에 얼마나 적절한 응급진료를 받느냐에 따라 진료결과가 결정된다. 적절한 진료를 받을 경우 정상적인 상태로 퇴원을 할 수 있는 환자가 응급진료의 지연이나 진료오류로 불운하게 사망하거나, 장애를 가지고 퇴원할 수도 있는 것이다.

높은 예방가능한 사망률

사고로 사망한 응급환자 10명 가운데 4명은 신속하고 적절하게 치료를 받았다면 살 수 있는 ‘예방가능한 사망’이라는 연구결과가 최근 언론을 떠들썩하게 하였다. 이러한 수치는 미국, 영국과 같은 선진국에 비하여 3배나 높은 수준이며, 심지어 싱가포르에 비해서도 2배나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이 지하에서 들으면 통곡을 할 노릇이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교통사고, 심장마비, 중풍 등 우리 국민 누구에게나 뜻하지 않게 닥칠 수 있는 일들이 대표적인 응급 상황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우리 모두 가슴이 서늘해진다. ‘혹시 내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제대로 응급처치를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응급의료체계를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중요한 사회적 안전장치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진국에 크게 뒤지지 않는 의료수준을 자부하는 우리나라에서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교통사고로 피를 많이 흘려 쇼크에 빠진 응급환자’의 예를 들어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를 진단해 보자. 이런 응급환자에게는 정맥주사로 많은 양의 수액을 사고 현장에서 신속하게 주입하여 혈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2004년에 조사된 바에 의하면 ‘출혈성 쇼크’ 환자에게 119 구급대원이 이 같은 응급처치를 한 경우는 3%에 불과하였다. 정맥주사와 같이 응급환자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을 ‘1급 응급구조사’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체 119 구급대원 중에서 1급 응급구조사는 17%에 불과하다. 적어도 절반은 1급 응급구조사여야 하는 데도 말이다. 또한 1급 응급구조사의 응급처치 능력 역시 의심받을 만한 수준이다.

다음으로 119 구급대는 이런 중환자를 신속하게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조금 오래된 조사 결과이지만 중환자를 제대로 된 처치를 받을 수 없는 중소병원으로, 경환자를 대학병원과 같은 대형병원으로 이송한 경우가 36%나 되었다. 구급대원이 중환자와 경환자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환자가 중소병원으로 이송되면, 제대로 된 응급진료를 받으면 살 수 있는 응급환자가 사망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생긴다. 외국 연구에 의하면 ‘예방가능한 사망’의 대부분은 중환자를 중소병원으로 이송하는 경우에 발생한다고 한다. 반대로 대형병원이 경환자로 넘쳐나면, 중환자 진료를 위해 많은 인력과 고가의 장비를 갖춘 대형병원이 경환자를 진료하는 데 대부분의 노력을 들이는 동안 정작 중환자는 제대로 된 진료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응급의료자원을 낭비하고 중환자 진료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응급환자가 병원에 도착한 다음에는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 아니다. 응급의학 교과서에는 이런 ‘출혈성 쇼크’ 환자에게 30분 이내에 수혈을 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응급실에서는 1시간 이내에 수혈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드물다. 예방가능한 사망환자에서 발생한 진료오류의 약 절반은 병원 응급실에서 발생한 것이었으면, 이 중 약 2/3는 수혈과 같이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는 ‘소생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만약이 응급환자가 간 파열로 인해 신속하게 응급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하자. 미국 외과학회에서는 간 파열로 쇼크에 빠진 환자는 응급실 도착 후 1시간 이내에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조사된 바에 의하면 이런 응급환자가 신속하게 수술을 받은 경우는 10명에 1명 꼴도 되지 않았다. 최근 이루어진 조사 결과는 이러한 우리나라 응급의료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예방가능한’ 사망환자의 65%는 병원에서 진료오류로 인한 사망이었다.

중병에 걸린 응급의료체계

어떻게 하면 우리 국민들은 제대로 된 응급의료시스템 아래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응급의료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어야 한다. 행자부와 지방자치단체는 119 구급대의 1급 응급구조사 인력을 대폭 충원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 내에서 응급의료는 투자우선순위에서 한참 멀어져 있다. 우선순위를 올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문제를 명확하게 드러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응급의료의 수준을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지역주민들에게는 교통사고나 심장마비와 같은 응급상황이 자신에게 닥치면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는 불안한 상황에 살고 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에게는 ‘청계천 복원’ 못지않게 ‘응급의료시스템 구축’도 표심을 좌우하는 중요한 일임을 알려주어야 한다. 병원들이 응급실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지 않도록 응급진료에 대한 건강보험수가도 원가를 보전할 수 있는 수준으로 대폭 인상해야 한다. 사실 병원이 응급실에 10원을 투자하면 건강보험에서 돌려받는 돈은 7원이 채 되지 못한다.

하지만 투자를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응급의료시스템을 만들 수 없다. 119 구급대와 응급의료기관의 질적 수준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해야 하며, 그 결과에 따라 잘 하는 곳에는 추가 예산 배정, 건강보험 수가 인상과 같은 유인을 제공하고 잘못하는 곳에는 상응하는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 제대로 된 응급의료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당근과 채찍이 모두 필요하다.

사실 5년 전에 조사된 바에 따르면 사고환자 10명 중 5명이 ‘예방가능한 사망’ 환자였다. 만족할 수는 없지만 응급의료시스템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것이다. 2003년부터 보건복지부가 응급의료기금에서 응급의료기관을 지원해 온 덕택이다. 그런데 공공의료 강화라는 구호를 줄기차게 외쳐온 참여정부가 역설적으로 대표적인 공공의료분야인 응급의료를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해 왔던 응급의료기금을 기금운영합리화라는 명목 하에 폐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응급의료정책을 포함한 의료정책은 경제정책에 종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제대로 된 응급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가는 응급환자에 가슴 아파하며 경제성장률만큼이나 응급의료의 심각성을 중시하는 정부를 바라며, 응급의료시스템에 더 많이 투자하기로 한 정부 정책에 따라 건강보험료를 올리는 데 기꺼이 동의할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해 본다.

김 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