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2005년 10월
  • 2005.10.01
  • 1264
2005년 가을, 국민들은 사상 최초로 대법원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았다. 누구도 법원이 폭정에 신음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점 거세어졌고 아울러 훨씬 복잡 다기해졌다. 개혁과 보수의 다툼은 식상한 이분법이 돼 버렸고 무엇인지 개혁인지도 논란거리다. 그러나 모두들 입을 모아 사법부의 변화를 외친다.

지난 30여 년 동안 네 차례의 ‘사법파동’에서 법원의 소신은 그 당시 국민들의 바람과 닿아 있었다. 군인 출신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호령하던 시대에 사법파동은 그들의 폭력과 부당한 간섭을 뿌리치고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내려는 몸부림이었다. 군인들이 나댔던 암흑기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1997년 그들에게 빚지지 않은 민간인 정부가 탄생했다. 국민들은 군인들의 폭정 뿐 아니라 그들이 남긴 권위주의와 부정부패의 흔적도 씻어내려고 했다. 법원의 소장 판사들도 안으로부터의 개혁을 요구하고 나섰다.

사법파동의 역사를 되짚어보며 국민들이 원하는 사법부의 변화는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실패한 독립투쟁, 1차 사법 파동

‘유신(維新)’한 해 전인 1971년 7월 28일, 서울지법 당직판사실에 같은 법원 형사부의 이범렬 부장판사와 최공웅 판사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증인 조사를 위해 출장을 가면서 변호사에게서 교통비 등으로 9만 7,000원을 받았다는 직무상 뇌물수수 혐의였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이 부장판사는 시국 공안 사범에 대해 잇따라 무죄판결을 내려 검찰에 미운 털이 박혀 있던 터였다. 영장은 기각됐다. 서울형사지법 판사 37명 전원이 집단사표를 냈으나 검찰이 영장을 다시 청구하자 전국 판사의 3분의 1이 넘는 153명이 사표를 냈다.

이 갈등의 뿌리는 대법원이 그 해 6월 군인과 군속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국가배상법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려 박정희의 화를 돋운 데 있었다. 유신체제는 사법부의 위헌법률심사권을 빼앗았고 밉보인 대법관들을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1차 사법파동은 이렇게 끝났다. 예나 지금이나 인사를 간섭 당하는 일만큼 치욕스런 일도 없다.

법원 내 민주화 요구 결집한 2차 파동, 정치판사 존재도 드러나

‘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즈음한 우리들의 견해’ 88년 6월 법원을 뒤흔든 성명서다. 이 문서에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임명 등 새로운 사법부를 구성하는 데 있어 국민들의 신뢰를 쌓고 법관들 스스로 반성과 다짐을 굳건히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가시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시 전체 법관의 절반에 가까운 430여 명의 판사가 성명서에 서명하면서 유임이 확실시되었던 김용철 대법원장이 물러나야 했다. 정권의 직접적인 외압은 없었지만 판사들은 법원이 법관과 국민들로부터 멀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서명을 이끌었던 고 한기택 부장판사, 이광범 유남규 부장판사, 김종훈 변호사 등이 중심이 돼 진보 성향의 법원 연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가 만들어졌다. 이처럼 2차 사법파동은 법원의 민주화를 외치는 목소리를 모으는 계기였지만 이와 더불어 판사들끼리의 내부 갈등도 표면화됐다. 군사정권이 입맛대로 세운 것으로 알려진 서울형사지법에서는 단 한 명의 판사도 서명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3차 파동, “군사정권 시절 반성하라”

93년 6월 서울민사지법 단독 판사 28명이 ‘사법부 개혁에 관한 우리의 의견’이라는 건의문을 법원에 제출했다. 소장 판사들의 요구는 2차 사법파동 때보다 직접적이고 거셌다. 판사들은 법원 수뇌부에 과거 군사정권 당시 사법부의 처신에 대한 반성을 요구했다. 법원 조직의 관료화를 지적하고 소신 있는 판결을 위해 대법원장 인사권을 견제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법원 수뇌부는 전국법원장회의를 소집했고 당시 이용훈 서울지법 서부지원장을 참석시켰다. 이 지원장은 전체 법관들의 의견을 모아 이 자리에서 발표했다.

3차 사법파동 때는 이른바 ‘정치판사 논쟁’이 일어나 법원 내부의 갈등이 더 깊어졌다. 2차 사법파동에 비켜서 있던 서울형사지법 판사들이 승진과 보직 등에서 혜택을 받는다는 등 정치판사로 비판받으면서 서울형사지법 폐지론도 불거져 나왔다.

4차 파동, “연공 서열 얽매인 대법관 제청방식 바꿔야”

2003년 8월 법원에서는 대법관 인사 관행의 문제점이 도마에 올랐다. 최종영 대법원장이 연공서열 위주의 인사 관행에 따라 대법관 제청 자문위원회에 사법시험 10, 11회 출신인 현직 법원장 3명을 추천하자 사법파동 우려가 현실이 됐다. 자문위원이었던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박재승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위원직 사퇴서를 냈고 박시환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사표를 제출했다. 이용구 서울북부지법 판사는 ‘현재 진행 중인 대법관 제청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재경지역 단독판사들이 전국 법관 여러분에게 대법원장의 재고를 건의하기 위한 의견 수렴을 하기로 했다’며 연판장을 돌렸다.

2차, 3차 사법파동 때와 달리 대법원장이 물러서는 일은 없었지만 판사들의 요구는 같았다. 연공서열 위주의 대법관 제청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법개혁의 첫걸음은 국민 참여와 신뢰 회복

이용훈 신임 대법원장의 취임 이후 내년 7월까지 13명의 대법관 가운데 9명이 바뀐다. 법원 안팎의 개혁 요구가 한층 거세어지는 것도 지금이 그만큼 좋은 기회라는 뜻이다. 그러나 개혁을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판사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대법관을 성별과 지역과 학벌을 고려해 뽑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주장한다. 실력 있는 법관들이 지켜야 할 사법부의 보루가 개혁의 이름을 앞세운 ‘이익집단’에 의해 혼란스러워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사법부는 한국사회에서 비교적 깨끗한 곳으로 남아 있다. 간혹 법관들의 탈선이 지적돼 왔지만 부정부패에서 비켜서 있었다. 자꾸 변하라는데 신물난다는 판사들도 있다. 그러나 개혁 요구에 질렸다는 말을 하기 전에 법원 바깥을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도 매일같이 철저하고 집요하게 비판받는다. 성역은 사라진지 오래다. 국민들이 판결을 불신한다거나 전관예우가 판친다는 바깥의 이야기에 질렸다면 안에서 일어나는 논란을 지켜볼 것을 권하고 싶다.

당장 다음달로 다가온 새 대법관 제청을 앞두고 판사들끼리도 의견이 나뉜다. 점잖던 평소 모습과 달리 극단적인 양상이다. 그 사람은 절대 안 되고, 저 사람이 되면 법원은 끝장이라고들 한다. 예전에 누가 불만스러웠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이렇게들 기준과 의견이 다르고 불만이 많을 때 해답은 상식으로 돌아가는 길 뿐이다.

모두가 찬성하는 사법부를 만든다는 것은 이상주의다. 다만 국민 모두가 참여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많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어떤 인물이 대법관이 되든지 국민은 사법부를 좀더 신뢰하지 않을까.
전지성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참여와 행동에 동참해주세요
참여연대 회원가입·후원하기
목록
닫기
닫기
© k2s0o1d4e0s2i1g5n. Some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