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11월 2005-11-01   493

허무를 이기는 힘

남들도 그런가? 나는 살수록 쉬운 것들을 모르겠다. 사랑만 해도 그렇다. 아이가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남발하는 말인데 가만 생각하면 사랑이 뭔가, 역시 모르겠는 것이다. 다만 사랑이란 것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고만고만한 무수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반짝 하고 빛나는 순간이 필요하다는 것, 찰나와도 같은 섬광이 평범한 누군가를 유일하고 독특한 존재로 변화시킨다는 것 정도를 알고 있을 뿐이다.

검은 교복이 수의처럼 청춘을 옥죄고 있던 시절, 아마도 시건방 때문이겠지만 인생 만사가 시들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봤자 신문에 이름줄이나 오르내리며 거들먹거리는 인간이 될 것이고 그도 아니면 교복과 다름없는 정장에 한 평생이 묶인 월급쟁이나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대단한 허무주의자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의 나는 어린 패배자에 불과했다. 누구나와 다를 바 없이 꿈도 많고 욕망도 컸지만, 내 부모는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힌 이 사회의 이단자들이었고, 그 결과로서 당연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것이다. 그 지울 수 없는 열패감이 나를 어린 허무주의자로 만들었음이 분명하다.

이유야 어찌됐든 그 무렵 나는 저녁밥을 먹고 나면 하숙집 3층 옥상으로 올라가 시간이 흘러가는 모양이나 구경하곤 했다. 손바닥만 한 도시에 불이 켜지고 그 불이 꺼지고, 도시의 불빛에 가렸던 달이나 별이 도시를 감싸 안을 때까지 나는 정물처럼 옥상에 앉아 있었다. 내 청춘도, 내 평생의 시간도 이렇게 흘러갔으면, 그래서 다음날 아침 질마재 신화의 그 아낙처럼 한줌의 재로 변했으면…, 싶었다.

어느 날 밤, 옥상 위에서 서성거리던 나는 땅거미가 어둑어둑 내려앉는 골목길로 들어서는 레미콘 트럭을 보았다. 그 커다란 차에서 내린 것은 왜소한 중년의 사내였다. 그는 다른 트럭 기사들처럼 주위를 둘러보는 일도 없이 하숙집 옆으로 오십여 미터 길게 뻗어 있는 창녀촌을 향해 종종 걸음을 옮겼다. 두어 시간 흘렀을까. 도시의 집집마다 환하게 불을 밝힌 시간, 비틀거리며 걸어 나온 사내는 하필 하숙집 바로 앞의 전봇대에 머리를 박았다. 부근의 노란 가로등불에 듬성듬성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사내의 정수리가 훤히 드러났고, 사내는 전봇대에 머리를 박은 채 야윈 어깨를 들먹이며 울기 시작했다. 아득히 멀어지는 썰물처럼 사내는 여윈 어깨를 들썩거리며 점점 작아져 땅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나는 무심히 텅 빈 창녀촌 골목을 바라보았다. 저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까지 햇살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학교 쪽을 향해 돌아서던 내 시선이 무심히 엊저녁 사내가 기대고 있던 전봇대에 닿았다. 전봇대 아래 무언가 햇살을 튕겨내고 있었다. 가만 들여다보니 그것은 엊저녁의 사내이거나 그 사내와 다를 바 없는 누군가 슬픔처럼 토해놓은 토사물이었다. 반쯤 삭은 콩나물 대가리가 아직 덜 삭여진 슬픔인 양 비죽 고개를 내밀고 있었는데, 햇살은 어김없이 그 위로도 쏟아져 따스한 손길로 누추하디 누추한 그것들을 어루만지는 것이었다. 그 순간, 웬일인지 나는 유치한 허무주의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야윈 어깨의 그 사내가 절실하게 그리웠다. 그 사내가 엊저녁에 홀로 앉아 시래기국에 콩나물 무침과 김치, 오뎅무침을 먹는 모습이 눈앞에 선연했다.

오늘도 내 어깨를 부딪고 스쳐가는 낯모르는 사람들 역시 저 전봇대에 머리를 박은 사내와 같으리라. 저마다의 마음속에 담겨 있을 가장 누추하고 더러운 토사물을 저 햇살인 양 어루만지는 것이 곧 사랑이며 소설이며, 내가 살아갈 이유라고, 요즘도 그렇게 위안하며 한순간에 생의 끝을 목전에 둔 노파가 되고 싶은 쓸쓸함을 견디고 있다.

정지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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