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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04년 12월
  • 2004.12.01
  • 783
2004년, 한국의 시민사회는 전에 없는 갈등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개혁을 이끌어왔던 시민사회운동의 활동이 여전한 반면, 그동안 공개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던 보수인사들이 조직화되어 보수단체를 결성하고 집회와 시위를 전개하면서 사회갈등이 가시화되고 있다.이러한 진보와 보수, 혹은 개혁과 수구사이의 갈등의 전면화는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는 달리 어쩌면 우리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시민사회는 단일한 세력으로 구성된 총화단결의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세력간의 갈등이 일어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을 통해 나아가야할 방향이라 할 수 있다.

이제까지 한국의 시민운동은 감시와 비판을 통해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왔다. 시민운동의 성격을 규정지었던 이러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시민운동은 시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2004년은 시민운동의 본령으로 여겨지던 역할들이 한계를 보이면서, 시민운동이 가졌던 독점적인 지위가 상실되어가는 시기로 파악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시민운동은 비판과 감시를 넘어서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고 있으며, 또한 보수단체들의 등장으로 인해 시민사회내 유일한 문제제기 집단으로서의 지위를 위협받는다.

사회변화에 대한 시민운동의 새로운 대응은 총선에서부터 나타났다. 작년부터 이어진 것이지만 올 초 시민운동의 최대의 화두는 총선국면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오랜 논의 끝에 나타난 시민운동의 총선대응은 과거와 달리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정치개혁이라는 대의에는 동의하면서도 낙선운동, 당선운동, 정보공개운동, 시민정치교육운동, 후보전술, 선거참여운동 등 다양한 ‘따로 또 같이’의 운동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는 우리의 시민운동이 더 이상 하나의 관점, 하나의 행동으로 묶일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임과 동시에 변화된 상황에 대해 새로운 대응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시민참여의지 활성화가 시민운동의 새로운 출발점

시민운동의 총선에서의 다양한 대응은 탄핵정국에 의해 빛이 바랬다. 총선을 한달 여 앞두고 이루어진 야당의 탄핵소추의결은 전국민적 공분을 낳았고 이는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광화문의 촛불행렬로 나타났다. 광화문 촛불행렬은 시민들의 높은 민주주의 의식을 반영하는 동시에 기존의 시민운동의 역할이 그만큼 축소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탄핵정국에서 시민운동이 한 일은 집회의 주최자 역할에 국한됐고, 나아가 총선에서 시민운동은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탄핵과 총선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시민운동에 두 가지 함의를 준다. 먼저, 시민들의 참여의식이 이미 시민운동을 뛰어넘고 있다는 점이다. 탄핵과 총선에 이르는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시민들은 시민운동보다 먼저 스스로를 조직했고, 스스로의 투쟁방식을 설정했다. 이는 시민운동이 시민들과 만나는 방식을 새롭게 고민해야할 시점에 이렀음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여전히 한국의 정치사회 균열구조와 시민사회 균열구조는 불일치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구도 속에서 민주적 헤게모니가 정착됐지만 민주의 내용을 채우는 다양한 가치 및 이해관계는 정당구도 속에 반영되지 못했고 시민운동은 시민들의 다양한 가치를 정치사회로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참여하는 주체의 발견과 과대대표되는 정치권이라는 조건은 탄핵 이후 과정을 그대로 결정지었다. 시민운동의 지속적인 노력과 대중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은밀한 파병이 이뤄졌고, 시민들의 삶의 질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으며, 4대 개혁입법은 정치권의 흥정대상물로 전략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 사회의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는 보수기득권 엘리트 카르텔은 시민사회를 전복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한다.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볼 때, 총선 이후의 과정은 4.19, 6월 항쟁, 낙천낙선운동에서 나타났던 열광과 좌절의 싸이클이 다시 한번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되지만 똑같이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탄핵국면과 총선을 통해 민주적 헤게모니가 시민들의 힘으로 정착됐다는 사실이 새로운 출발점을 이루기 때문이다.

시민운동은 이 새로운 출발점에 근거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열광의 원천인 시민들의 참여의지를 보다 활성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민운동은 감시와 비판의 역할을 넘어 참여하고자 하는 시민들과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야 한다. 시민들이 시민운동보다 먼저 행동했다는 사실은 시민운동이 시민과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열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문화,풀뿌리화 지향하고 확대해야

감시와 비판을 넘어 시민들과 호흡하기 위한 시민운동의 노력은 하반기를 넘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전문화, 풀뿌리화의 경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전문화는 지금까지 한국의 시민운동이 꾸준히 지향해왔고, 앞으로도 지향해야할 방향이다. 10주년을 맞은 참여연대가 장기전망에서 전문화를 강조하고 있고, 평화, 인권, 기부, 국제연대 등의 다양한 전문 역량들이 성장하는 것은 이러한 방향을 잘 드러내고 있다.

풀뿌리화 역시 거듭 강조돼온 방향이지만, 최근 들어 운동방향을 지역운동으로 잡고, 풀뿌리화를 지향하는 그룹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미 지역에 터잡은 풀뿌리 조직들이 활동영역을 확대하고 있는가 하면, 초록가치에 입각해 풀뿌리화를 주장하는 초록정치연대가 지역적 토대를 구축하고 있고, 운동의 공백상태였던 서울이라는 광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려는 서울시민포럼, 서울시민연대가 출범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풀뿌리화가 단지 당위가 아니라 현실적 움직임을 잘 보여준다.

전문화와 풀뿌리화라는 기초위에서 한국의 시민운동이 추구해야할 것은 시민사회의 균열구조가 정치사회에 그대로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즉 시민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이해가 국회에 반영돼, 사회적인 문제가 거리에서가 아니라 국회에서 해결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 시민운동이 제도정치권내에 진입하는 문제가 심각하게 고민돼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시민운동 가치에 적합하게 아래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즉 풀뿌리에서부터 시민자치를 이루는 데에서 출발해 궁극적으로 시민의 가치를 국회에 반영하는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것만이 수혈이 아니라 헌혈을 해왔던 과거의 정치세력화와 구별될 뿐 아니라 열광과 좌절의 싸이클과 단절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시민운동은 무엇을 반대하기에는 크지만, 무엇을 성취하기에는 너무 작다. 다시 말해서 비판과 감시의 능력은 어느 정도 갖추었지만, 그것을 넘어 대안과 성취를 이루기에는 너무 작은 힘을 갖고 있다. 한국 시민운동에 있어 2004년은 시민운동이 처한 바로 이 지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시민운동은 이제 비판을 넘어 대안으로 나아가고 있다. 시민운동은 참여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과 참여와 성취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수많은 공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김정훈 성공회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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