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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04년 12월
  • 2004.12.01
  • 996
아이는 몇 번의 고비를 겪으며 스스로 성인으로 성장한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아이가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실천하는 성인으로 자라지 못하듯이, 고비와 위기는 성장의 필수조건인 셈이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운동도 많은 고비와 위기를 겪으며 조금씩 성장하고, 십대 후반이 된 지금 이곳의 시민운동도 이제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고민하고 진통을 겪는 사춘기에 접어든 듯 하다.

무엇이 위기를 불러오고 있나?

위기의 징후는 크게 두 가지로 얘기할 수 있다. 하나는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입이라는 변화된 정치지형이다. 정치지형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지만, 과거 시민사회가 주도적으로 제기해 온 쟁점들(예를 들어, 분권과 균형발전, 사립학교법 개정, 국가보안법 폐지 등)이 제도정치권에서 공식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볼 때 이런 추세가 계속될 가능성은 높고 역행할 가능성은 낮다. 자연히 정당과 시민운동의 활동내용이 겹치게 되고, 이는 시민운동이 자칫 자신의 성과를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뿐 아니라 정치적인 ‘의심’을 받게 되는 상황을 불러올 것이다. 즉 이슈파이팅과 제도개혁을 중심활동으로 삼아온 시민운동은 성과를 거둘수록 개입할 영역이 줄어들고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는 ‘성과의 역설’에 직면하게 된다.

위기의 또 다른 징후는 시민운동 내부에서 발견된다. 그동안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점들을 바로잡는 데 있어 시민운동이 큰 역할을 해왔음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많은 문제들에 일일이 개입하다보니 싸움의 전선이 넓어질 수밖에 없고 자연히 재정과 인력 면에서 힘이 부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운동의 흐름이 빨라지고 정책적인 개입을 위한 전문성이 중시되다보니 시민이 의사소통구조에 개입하기가 어렵고 이로 인해 참여를 통한 시민의 역량강화(empowerment)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제도차원에서 개혁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지만 정작 그 제도를 운용하고 활력을 불어넣을 시민은 출현하지 않는 ‘개혁의 공백’이 드러나고 있다.

이 두 가지 징후가 어우러져 운동의 사춘기를 자극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물론 시민사회의 ‘도덕적 우위’를 바탕으로 시민운동이 부패한 제도정치를 질타하고 왜곡된 경제질서를 비판하는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겠지만 역할에 대한 장기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제도정치가 맡아야 할 몫을 시민운동이 계속 담보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또 개혁의 가속화를 명목으로 시민운동이 선거를 통해 정치사회로 ‘진입’ 또는 ‘올인’하는 것도 위험하다. 그건 자신의 진지를 비워둔 채 권력과 제도의 덫으로 돌진하는 무모한 실천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성실히 활동하기만 하면 다 잘 될 것이라는 순진한 낙관론을 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자치’는 새로운 가치 생성의 토대

지금 필요한 것은 이전과는 다른 ‘가치’를 생성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한국사회에서 논의되어온 가치는 주로 진보 대 보수, 개혁 대 수구였다. 그런데 이런 가치들은 현실의 구체적인 이해관계 속에서 구분의 의미를 잃어가고 구체적인 내용 없이 수사로만 거론되기에 시민운동의 가치로 자리잡기 어렵다. 새로운 가치는 단순히 “우리가 옳다”라는 일방적인 선언이 아니라 무엇이 올바른가를 능동적으로 찾아갈 때 생성된다.

그런 점에서 ‘자치’는 새로운 가치생성의 토대이다. 자치는 단순히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상향식 의견수렴과정을 가리키지 않는다. 자치는 제도보다 일상의 근본적인 변화를, 효율적인 결정보다 충분한 설명과 토론을 통한 결정을, 소수의 활동가 중심보다 대중의 직접적인 개입을 중시한다. 물론 지금 현실에서 대중 또는 시민의 자치는 잘 이뤄지지 않고 이를 근거로 자치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 그런 한계는 대중 또는 시민이 대의제 하에서 계속 길들여져왔기에 어쩔 수 없기도 하다.

하지만 계몽주의적 관점을 받아들여 일방적으로 대중 또는 시민을 교육하고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함께 고민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때 자치의 활력은 조금씩 살아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단체 내부 소통구조를 과감히 개혁하고(전체 회원의 정기적인 난상토론, 선거제에서 추첨제로 임원선출방식 전환 등) 단체의 투명성과 공개성을 확대해 대중 또는 시민이 서로 접촉하고 토의할 장을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자치는 당위나 이념이 아니라 현실과 밀착한 일상적인 이슈를 다룰 때, 개인의 구체적인 욕구에 기초를 둘 때 실현된다. 이런 자치의 활력은 이미 지역의 풀뿌리운동 단체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생성되고 있다. 조례제·개정운동, 예산학교, 이웃사랑방, 공부방 등 지역 풀뿌리 활동은 대중 또는 시민의 활력을 자극해 자치의 힘을 끌어내고 있다. 이런 흐름을 더욱더 활성화시키기 위해 장기적으로 중앙과 지역 시민운동은 서로의 ‘역할분담’과 양자를 잇는 소통망을 준비해야 한다. 서로에게 조금 더 관심을 쏟고 실질적으로 힘을 실어준다면, 이 소통망은 지역통화에서 시민통화로의 전환, 중앙의 부패만이 아니라 지역토호들의 영향력 제거 등 실질적인 성과를 낳을 것이다.

현실속에 잠재된 역량발굴 노력 필요

이를 위해 자치와 함께 ‘접붙이기’가 필요하다. 과거 ‘연대’라는 개념이 추상적인 이념의 동질성과 지속성을 전제한다면, ‘접붙이기’는 구체적인 욕구 접목을 통해 이질적인 내용을 생성한다. 특히 접붙이기는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이, 신사회운동과 구사회운동이 뒤섞인 우리 현실, 한 개인이 남·여성으로, 학부모로, 노동자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서 더욱더 중요하다.

한국 현실에서 계급 개념은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했고, 시민 개념 역시 분명한 내용을 가지지 못했으며, 사실 가장 활발하게 운동성을 표출하고 있는 것은 주민 개념이다. 하지만 어느 개념의 중심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노동조합 간부가 동네에서 활발하게 공부방 활동을 하면 계급운동일까, 시민운동일까, 주민운동일까? 이런 활동을 기존 개념으로 재단하기란 불가능하다. 만일 선을 긋지 않고 지역 내 다양한 자원(이미 작동하고 있는 사적 네트워크를 공론화시켜)을 활용한다면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어느 한 개념으로 운동의 토대와 방향성을 정리하지 않고 그 잠재력을 끌어낸다면 지속적으로 새로운 실험을 진행할 수 있다. 이는 따라잡기 식의 운동을 지양하고 한국사회의 고민으로, 때론 한국을 넘어선 세계적인 고민으로 그 속을 채우도록 도울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자치라는 가치와 접붙이기라는 실천은 주어진 가능성만을 보는 게 아니라 현실 속에 잠재된 힘을 간파하고 그것을 개화시키려는 노력이다. 시민운동이 장기적으로 나아갈 방향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에서 홍반장은 온 동네의 빈 공백을 도맡아 메운다. 홍반장의 힘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강요하지 않고 그것을 행동으로 표출함으로써 사람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데 있다. 그런 반장들이 많아질 때 시민운동은 새로운 활력을 찾을 것이다.
하승우 시민자치정책센터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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