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2월 2004-02-01   294

[인터뷰]참여연대와 함께 자란 우정

권병덕, 이동헌 회원

고등학생 때부터 참여연대에 가입하여 현재 대학생이 될 때까지 참여연대와 함께 해온 두 청년을 만나 보았다. 바로 00학번 병덕과 동헌. 아직 새파란 젊음이다. 솔직히 그 동안 회원모임이나 자원활동 경험이 있어서 우리는 서로 처음 보는 사이는 아니다. 그네들도 인터뷰를 맡은 기자가 본인인 것을 알고는 “이거 정말 거짓말도 못 하겠네요.”하고 입맛을 다셨다.

우리 사귀고 있어요, 1500일째 ! ^_^

둘은 사실 고등학생 시절부터 같은 반 친구였다. 서로 비슷한 점은 전혀 없어 보이는 두 친구. 병덕이는 말도 많고 주장이 강한 편이지만 동헌이는 좀 조용한 편이다. 그나마 군 복무를 마치고 말이 많아졌다고 하니 그 전에는 얼마나 말이 없었던 것일까? 인터뷰 내내 조용하기만 한 그의 이야기를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둘 사이는 말로는 통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

젊음! 폭발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었던 그들

고등학생일 때도 공부에 별 취미가 없었던 그들은 폭발하는 에너지를 내뿜을 대상이 필요했다. 그들은 같이 신문도 만들고 밴드도 결성하고 여러 가지 일을 벌였다. 그러다가 98년, 고2 때 병덕이가 참여연대에 먼저 가입했다.

“뭔가 해보고 싶었어요. 그 나이 때 다 그렇듯 하고 싶은 건 많았는데,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싶었죠. 참여연대는 언론에 자주 나오니까 알게 됐고…. 정말 대단해 보였어요. 제가 좀 순진했는지 모르겠지만 시민단체에 가입하면 무조건 같이 활동해야 되는 줄 알았거든요.”

동헌이는 2000년 1월에 참여연대에 가입했다. 가입한 이유는 병덕이의 권유 때문. 그 때 청소년 회원모임 “와(with)”도 결성되었다. 바로 이들이 ‘와’의 초기멤버이자 주축인물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이미 대학생이 된 그들이었지만 청소년 문제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지 않았다. 특별히 무엇을 같이 해보자는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선 뭐든지 함께 해보고 싶었다. 주로 ‘청소년’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여름.겨울 청소년 인권캠프나 ‘알바 페스티벌’ 등 단편적인 행사를 준비하기도 하고, 같이 모여 토론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도 정체성에 대해 토론 중이란다.

꿈을 향한 날개짓

이제 그들은 대학생이다. 병덕이는 사회학을 공부하고 싶어 편입을 준비하고 있고, 동헌이는 군대 갔다 와서 쉬면서 유럽여행을 하기 위해 돈을 벌고 있다. 동헌이가 유럽여행을 결심한 계기는 사뭇 인상적이다. 2000년 5월경 박원순 변호사님과 우연한 기회에 함께 유럽여행에 대해 깊은 대화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당시 박변호사님이 숙명여대에 초청강연을 갈 때 동헌이가 도우미로 따라갔었다. 강의 후 박변호사님은 강연료로 받은 10만 원을 동헌이에게 유럽여행 자금으로 쓰라고 주셨다. “꼭 가봐라, 인생에 좋은 경험이 될 거다.”라는 말씀과 함께. 정말 재밌는 사실은, 그 때 숙명여대에서 강의를 듣던 학생 중에는 필자도 있었다는 점이다. ‘아~ 그때 박변호사님과 함께 교실에 따라 들어온 남학생이 바로 동헌이 너였구나.’

속일 수 없는 반골기질

병덕이는 대학에서도 공부보다는 학생회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요즘 대학사회가 맘에 안 든다. 학생회가 어떤 사회적 이슈에 대해 주장을 해도 과거처럼 신기해하는 학생이 없다. 다 알고 있다는 투이고 너무 개인적인 소비주의 문화에 물들어 있다. 학생운동권에도 희망이 없고 조만간 끝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리는 그는 요즘 그 반동으로 활발하게 생겨나는 비권, 반(反)운동권 학생회에도 비판의 칼날을 놓치지 않는다.

헤비메탈을 좋아해서 별명도 ‘메탈’이라는 동헌. 고등학교 때부터 머리를 기르려고 몇 번이나 시도하다가 늘 학교 선생님에 의해 머리카락을 잘렸다. 그가 한 때 장발이었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머리 기르는 것을 그렇게 좋아했다니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딱이었겠네” 하니 그는 대뜸 이렇게 대답한다. “조선시대에는 또 머리를 자를 수 없게 할 테니 그 때 태어났으면 막 자르려고 했겠죠.”

“사람들이 규제가 없어서 망나니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입고 싶은 옷, 하고 싶은 머리모양, 다 하면서 자란 아이는 졸업할 때 오히려 제일 단정하게 하고 졸업할 것 같은데요.”

스스로를 폐인이라 부르는 그네들의 관심사는 컴퓨터 게임. 한창 게임 얘기를 할 때는 대화가 잘 안 통한다. 이들은 또 비주얼한 집회를 좋아한다. 가령 미선이 효순이를 추모했던 2002년 촛불집회가 주었던 그 느낌, 바로 익명의 대중이라고만 느꼈던 시민들이 하나가 되어 촛불을 밝혔던 그 감동의 느낌은 잊을 수 없고 그립기까지 하다.

좀더 다양한 자원활동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