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6월 2004-06-01   899

해결사 콤플렉스

대학 시절의 일이다. 고대 병원 뒤편 산꼭대기에 단칸방을 얻어 자취를 하던 친구에게 얹혀 한 겨울과 한 봄을 난 적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집안을 책임져야 했던 그에게 학업과 생활, 시대 모두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의 상습적인 건망증을 호소했다. 학교의 상담실과 병원의 정신과를 오가면서 치료를 받았지만 그리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나서야 그는 이 증세를 그저 조금 불편한 습관 정도로 이해하기 시작했고, 적어도 건망증이 자신의 삶을 파괴시킬지도 모른다는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는 정신적 질환 혹은 장애는 그 자체보다 그러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 또는 지나치게 심각하게 여기는 것이 더 해악적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그는 나에게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경증 혹은 중증 정신질환자들이고 치료 대상이라며 이런저런 사례를 들어 그 증세를 설명하곤 한다. 꽤나 날카롭기도 하거니와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담고 있는 것들이라 나는 이 말들이 큰 지혜가 될 것으로 여기며 늘 경청하고 있다.

한 번은 그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그의 콤플렉스에 대해 고민을 토로했다. 남의 어려운 사정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도와줘야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일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회사 동료가 신혼여행지를 제주도로 정했는데 도무지 숙소를 잡지 못해 걱정이라는 말을 듣고, 자신이 나서서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까지 동원해서 제주신라호텔의 방을 어렵게 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료는 신혼여행지를 동남아로 바꿨다면서 자신에게 제주도 이야기를 한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책임이 자신에게 있고 그것을 피해가는 것은 비겁하고 책임회피라고 여기는 것도 정도가 심하면 콤플렉스가 된다.

회사 일에 대해 사장보다 더 회사 걱정을 하는 직원, 결혼상대로 어울리지 않는다며 친구의 결혼을 목숨걸고 반대하는 친구, 사이가 안 좋은 가족을 화해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며느리. 심리상담을 하는 한 친구는 이런 증세에 대해 ‘해결사 콤플렉스’라고 하면 좋겠다고 했다.

해결사 콤플렉스는 주로 장남이나 장녀로 자라면서 어려서부터 늘 문제해결에 대한 의무감을 가져야 했던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난다. 다른 이의 문제를 자신이 해결해줘야 한다는 것은 분명 미덕이지만, 습관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러한 문제들에 집착하는 것은 자신은 물론이고 그 문제의 당사자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문득 일개 사원의 처지에서 사장의 잘못된 선택이 회사를 망치고 있다고 핏대를 올리던 지난 시절의 내 혈기가 혹시 넘치는 책임감에서가 아니고 해결사 콤플렉스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것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태도 자체에 스스로 만족했던 해결사 콤플렉스가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이왕재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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