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7월 2003-07-01   1255

이휘현과 최을영이 전여옥을 말하다

그를 페미니스트라 부르기 힘든 이유


본지는 상반기 진행했던 “두 여자 그 남자”를 하반기부터 “두 남자 그 여자”로 바꾼다. 첫 번째 그 여자는 전여옥. 그는 특유의 필력으로 화제를 몰고 다닌다. 여성들에게 테러리스트가 될 것을 선동하며 한때 “페미니스트”의 상징이기도 했던 그. 그러나 두 남자가 보는 전여옥에 대한 평가는 조금 다르다. 두 남자는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그를 논하려고 애썼다. 편집자 주

『일본은 없다』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후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로 페미니스트의 상징으로 이미지를 굳혀 온 전여옥. 그러나 그가 최근 『조선일보』에 연재하는 칼럼과 기사들은 그의 과거의 이미지와 부합되지 않아 독자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베스트셀러와 작가들』(인물과사상)에서 전여옥에게 진정한 테러리스트가 되라고 주문했던 최을영(『새전북신문』 기자)과 남성의 눈으로 보는 페미니즘에 대한 끊임없는 글쓰기를 하고 있는 이휘현(자유기고가)이 만났다.

최을영(이하 최) : 전여옥 씨가 쓰는 칼럼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주로 저자가 아닌 전 방송인이나 언론인의 자격으로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가 언론인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방송에 대한 비평을 조선일보라는 매체를 통해 꾸준히 해오고 있다 해서 그를 과연 방송인이나 언론인이라고 볼 수 있는가. 나는 먼저 그것부터 따져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휘현(이하 이) :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전여옥은 한국방송공사에서 15년간 근무했고, 이후에도 언론인으로의 정체성을 상당 부분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상품성을 꼼꼼이 따지는 사람이다. 전여옥은 단순한 저자로서보다는 저널리스트로서의 글쟁이로 자신을 상품화시키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까지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전여옥 스스로도 글을 통해 자신의 자본주의적 마인드를 공언한 바가 있으니 말이다.

최 : 전여옥은 요즘 정치를, 특히 청와대를 거침없이 비판하고 있다. 비판적 글쓰기에는 일정 정도의 책임과 윤리의식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최근 그가 『조선일보』에 게재한 글들, 가령 유시민이나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거침없이 내뱉은 글들은, 스스로 갈무리하지 못할 무책임한 글쓰기로 일관하고 있지 않나 싶다. 결국, 내가 처음에 꺼냈던 자격이라고 하는 화두는 책임과 최소한의 윤리의식을 감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 그 부분은 동의한다. 확실히, 전여옥은 정치에 대해 화끈하게 발언한다. 남성중심의 사회에 대한 발언도 화끈하다. 그런 화끈한 발언이 자신이 맡아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일본은 없다』나 『여성들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 『간절히@두려움 없이』 등 그의 저서에서도 그런 면모가 잘 드러난다. 그런 그의 화끈함이 그 사람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화끈함이 논리를 상실했을 때 매력은 실종되고 만다. 이번에 문제로 불거진 노무현 대통령 비판 글은 여과되지 못한 감정의 배설물 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최 : 전여옥의 글 중심에는 언제나 전여옥 자신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전여옥에게서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이 그것이다. 그는 페미니스트를 자임하고 있고 실제로 한국사회에서 대표적인 페미니스트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지만, 그가 갖고 있는 페미니즘의 출발점도 결국은 전여옥이라고 하는 고유명사다. 그가 페미니스트를 자임하고 있으면서도 왠지 미덥지 못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본다.

이 : 페미니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얼마 전 『조선일보』 5월 1일자에 실렸던 “전여옥 맹호부대 신병훈련소를 가다”라는 기사를 보고 황당했다. 이 르포에서 전여옥은 신병훈련소를 진정한 남자가 태어나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심지어 그는 “대한민국의 남성으로 태어났다면 그 남자다움의 생산공장은 바로 군대”라고 표현했다. 또 군대의 한 조교가 “기본적인 욕구를 통제시키면 단순해집니다. 통제하기도 쉽죠. 그리고 일과표가 빡빡해서 다른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라고 말한 것을 전여옥은 그처럼 당당한 조교를 처음 본다며 치켜세웠다. 전여옥의 지도자 이데올로기가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군대가 소년가장들의 천국이라는 말까지 했다. 요즘 한국 남성들이 갖고 있는 우월감의 근원지 중 하나는 군대다. 그건 최을영 씨나 나나 군대를 다녀왔기 때문에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는 직장에서 남자가 군대 때문에 3호봉이 높은 것에 분노하면서 애를 낳는 여자는 3호봉 더 올려달라고 주장했던 여자다. 그런데 남성중심사회와 그 질서에 대해 테러리스트가 되자고 선동하던 그가 어떻게 신병훈련소에 대한 미담을 써내려 갈 수 있었을까. 정말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 : 『조선일보』에 기고한 군대 관련 글은 충분히 비판받을 수 있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적은 게 아쉽다. 페미니스트로서의 전여옥이란 인물에 대한 평가는 여성운동단체들 사이에 약간씩 입장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이프』는 전여옥 씨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알고 있는데, 『여성신문』의 경우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한 때 전여옥에게 지면을 할애해 준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자처하는 사람에게 열악한 상황 아래 놓여 있는 여성운동계가 함부로 아군이냐 적군이냐 묻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긴 한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입장은 전여옥이 정말 페미니스트로서의 진정성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물음을 던지자는 쪽에 있다. 물론 그 진정성의 잣대가 무엇이냐라는 문제로 들어가면 복잡해지겠지만 말이다.

이 : 일반적인 남성들의 전여옥에 대한 평가는 ‘드세다’라는 이미지다. 단순히 그 사람이 쓴 글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위험하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호전적인 기질이 매우 강하다. 또한 전여옥은 자신에게 확신이 서면 어떠한 비판에도 꿈쩍하지 않는 스타일인 것 같다. 누구 말마따나 돌쇠 스타일이다. 그런 그의 기질이 어느 땐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또 어느 때에는 단점이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단점은 비판에 무감각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비판에 휘둘릴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정도 민감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전여옥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민감함 혹은 섬세함이 아닐까.

최 : 전여옥이 행하고 있는 비판과 관련지어 얘기해보자. 전여옥은 호·불호가 분명한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그의 정치비판은 그런 기질과 무관하지 않다. 정몽준에 대한 너그러움과 노무현에 대한 가차없음은 이를 잘 보여준다. 또한 그는 유독 언론비판에는 약하다.

이 : 이미 말했지만, 전여옥은 자신을 어떻게 상품화시켜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자체에 대해서 비판할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상품화하기 위해 의제를 선택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비판받을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여옥의 비판방식은 ‘상품성’에 따라서 선택적 친화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노무현 비판에는 과감하면서도 언론 개혁같은 화두를 애써 외면하는 이유가 다 거기에 있다. 정치 비판은 상품 가치가 충분하지만, 자신의 글을 잘 실어주는 『조선일보』에 대한 비판은 득보다는 실이 더 많다는 것을 스스로가 아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전여옥은 영악하다. 하지만, 그 영악함이 때로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그는 알아야 할 것이다.

전여옥에 대한 비판은 정당한가?

최 : 전여옥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보수성이나 엘리트주의, 보스 기질은 많은 남성들의 특징이다. 따라서 전여옥에 대한 최근의 비판들을 보다보면 과연 전여옥이 아닌 일반 남성이라면 그와 같은 비판을 받았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이 : 전여옥이 ‘여성’ 공인이기 때문에 받는 피해가 전혀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글에 대한 비판적인 반응의 이면에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이 여자가!”라는 반응이 분명 개입할 것이다. 그게 비록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한 구조적 틀로부터 파생한 무의식적 반응이라 해도 말이다. 아마 남성으로 태어난 이상 제 아무리 남성 페미니스트를 자처해도 최을영 씨나 나나 그런 무의식적 반응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구조적 무의식을 핑계로 전여옥에 대한 비판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전여옥 스스로도 그런 면죄부를 원치는 않을 것이다.

1990년대 말 쏟아져 나왔던 성공한 여성들에 대한 스토리는 우리 사회를 흔들어 놓았다. 이른바 슈퍼우먼신드롬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여성이 바로 전여옥이다. 그렇지만 그 유행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신만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그의 조언은 대리만족은 줬지만 많은 평범한 여성들에게 공감을 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최근에는 직장여성들의 삶을 미화시키지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소설가 조선희의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가 더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많은 여성들이 사회로 진출하면서 성공에 대한 현실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전여옥은 가부장적인 구조 속에서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냉정하게 제시했고 남성중심 사회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전여옥은 그가 말하던 성공에 이르면서 점차 자신을 배반하고 있다.

두 남자는 전여옥에 대해 토론하면서 자신이 여성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게 아닌지를 점검했다. 자신을 행동하는 페미니스트 남성이라고 여기는 남자들에게 여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불편한 모양이다. 더구나 전여옥은 적극적인 페미니스트의 상징이 아닌가.

그러나 고민 끝에 이들이 내린 결론은 전여옥은 페미니즘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영악함만 가지고 있을 뿐 결코 페미니스트는 아니라는 것이다. 아울러 전여옥은 페미니스트로도, 언론인으로도 부적절하다는 의견들을 나눴다. 좀더 책임감 있는 발언으로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 나가기를 요구했다.

전여옥이 테러리스트가 되라고 말한 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에게 자극을 받았는지 많은 여성들이 사회곳곳에서 테러를 일으키고 있다. 여성에 의해 세상은 변하고 있다. 이제 여성들은 일하게 해달라고, 성공하게 해달라고 외치지 않는다. 일할 수 있게 만드는, 여성을 키우는 환경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개인의 노력으로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아이를 키우는 직장여성이 되면 누가 말려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전여옥은 돌쇠의 정신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군대문화의 본질에 대해 계속 질타를 가할 수 있는 여성이 되어야 하며 여성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진득한 고민을 풀어야 한다. 전여옥이 『간절히@두려움없이』의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21세기에는 ‘분노, 남성들에 대한 적대감, 왜곡된 지식, 가족주의’ 등을 버리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전여옥과 같은 여성이 다양하게 쏟아져 나와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지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하되지도 않는 세상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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