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9월 2003-09-01   804

서울시 청렴계약제 3년이 남긴 교훈

부패방지 효과 논란… 옴부즈만 감시 실질화 필요


“시민참여를 통한 공공 조달영역의 부패통제’라는 모토를 내걸고 참여연대가 지난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서울시와 공동으로 진행한 ‘청렴계약제’와 ‘청렴계약 옴부즈만제도’는 시민참여와 ‘공치’(governance)의 선구적 모델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시민참여 방식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청렴계약제와 청렴계약 옴부즈만 제도가 부패통제 장치로서 어느 정도의 효력을 지니는지, 지난 3년의 경험을 통해 점검해보고, 그 교훈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취임 6개월을 맞이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라는 명칭에 걸맞는 시민참여 비전과 계획을 제출하고 있는가? 아직까지는 부정적이다. 물론 시민참여란 과제는 몇 개월 안에 성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민참여’를 민원채널의 다양화나 관료의 장막 사이에 외부인사들을 끼워 넣는 위원회 설립 정도로 생각하는 한 진정한 시민참여는 요원하다.이런 맥락에서 참여연대와 서울시가 지난 3년 동안 실험해본 ‘청렴계약제’와 ‘청렴 옴부즈만제도’의 성과를 살펴보는 것은 참여정부의 시민참여 제도화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성과에 대한 엇갈린 평가

청렴계약제는 서울시가 발주하는 모든 건설공사·물품구매·용역계약 입찰에 참가하는 업체와 행정기관 양당사자가 입찰·계약·계약이행 과정에서 뇌물을 제공하거나 받지 않고, 이의 이행 여부를 시민대표인 옴부즈만이 감독하여 규정위반이 발견될 경우에는 제재를 받겠다는 것을 상호 서약하는 제도다.

청렴계약제는 입찰에 참가한 모든 업체에게 다른 경쟁업체가 뇌물을 제공하지 않으며 정부 발주 부서에서도 부패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고 절차를 투명하게 한다는 점을 확신시킴으로써, 입찰에 참가한 업체가 뇌물을 제공하지 않도록 하여 정부가 발주하는 공사 및 조달 부문에서 부패와 그에 따른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키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서울시 청렴계약제의 운영 및 옴부즈만 활동 현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청렴계약제 적용 건수는 총 10만2328회로 이중 물품 구매가 7만877건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건설공사 1만5416건, 기술 용역 825건 순이다. 이 중 옴부즈만이 일정 금액 이상(건설인 경우 50억 원 , 설계·감리 용역인 경우 10억 원, 물품조달인 경우 2억 원)인 사업의 발주·계약·계약이행 과정에서 실시한 3단계 평가회가 9번 개최됐고, 41개 공사현장에 대한 47차례의 현장 방문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청렴계약제 위반사항에 대한 감사 요구가 3년 동안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 제도가 부패방지제도로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반된 견해가 존재한다. 먼저 청렴계약제 시행에 따라 행정투명성에 대한 신뢰도 상승과 서약서 상호 교환과 옴부즈만의 감시가 공무원과 업체에게 부패에 대한 ‘심리적 억제 효과’를 준다는 점을 들어 제도의 긍정성을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 실제로 2001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62.5%의 기업인이 청렴계약제 시행으로 뇌물이 줄었다는 데 대해 긍정적 답변(매우 그렇다 6.7%, 그렇다고 55.8%)을 했다.

반면에 실효성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청렴계약제 시행 이후 옴부즈만에 접수된 제보나 이들이 적발한 부패행위가 한 건도 없었다는 사실이, 청렴계약제가 ‘서류작업’으로 전락했으며 시민의 대표인 옴부즈만이 들러리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

청렴계약제 위반사항이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사실은 청렴계약제가 부패 통제라는 도입 취지에 비추어 부족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그동안 옴부즈만이 충분한 지원체계(현재 1인의 서울시 직원이 보좌하고 있다) 없이 비상근으로 주 1회 현장을 방문하거나 서류를 검토하는 식으로 활동한 점을 고려한다면, 이것이 제도 자체의 한계인지, 아니면 운영상의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

서울시 청렴계약제 도입에 주의해야 할 점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시민운동이 청렴계약제를 활용할 경우 주의해야 할 점들을 정리해 볼 수 있다. 먼저,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나 공기업에서 채택하고 있는 현재의 ‘옴부즈만 없는 청렴계약제’는 사실상 ‘전시성 사업’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에 대한 보완장치가 필요하다. 옴부즈만의 감시가 뒤따르지 않는 한 청렴계약제는 단순 ‘서류작업’에 지나지 않는 반면, ‘청렴’계약제라는 명칭은 지자체나 공기업의 알맹이 없는 행정을 포장해 주는 역할을 한다. 행정기관(특히 자치단체장)이 제도 도입에 적극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처럼 도입된 제도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부침을 겪는다는 점이다. 서울시만 하더라도 고건 전 시장이 도입한 제도를 이명박 시장이 인수받은 후 담당 공무원의 태도가 달라졌다. 공무원 조직의 특성상 인사권자가 관심갖고 있는 사업에 공무원들은 열의를 갖고 매달린다. 마찬가지로 시장이 바뀌면 이러한 열의도 곧바로 식어버린다. 결국 제도의 부침을 피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옴부즈만이 포함된 ‘온전한 청렴계약제’를 조례 형태로 도입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둘째, 옴부즈만을 추천하려고 할 때는 자기 단체가 옴부즈만 운영을 위한 충분한 계획과 내부역량을 갖고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 특히 시민단체와는 다른 조직운영원리와 의사결정구조, 문화체계를 갖고 있는 행정기관과 공동으로 제도를 운영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에 대해 사전에 대비해야 한다. 권력감시에 익숙해져 있는 시민단체일수록 ‘행정참여’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참여’는 ‘감시’와 비교할 수 없는 책임감과 이에 걸맞는 준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참여연대가 청렴계약제를 진행한 3년 동안 서울시는 ▲조례제정 약속의 철회 ▲지원인력의 축소와 같은 불성실한 자세를 보였지만 이를 견제할 ‘제재 수단’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공동운영을 제안하는 순간부터 시민단체가 종종 행동수단으로 채택하는 위원회 탈퇴와 같은 전술은 공동 진행자로서 보여서는 안 될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이유로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또한 옴부즈만 운영을 관(官) 쪽에만 맡기지 않으려면 시민단체 역시 그에 상응하는 지원 인력과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특히 제도는 도입하되, 큰 사고 치지 않고 운영하기를 바라는 행정관료의 타성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목적과 활동 계획(예컨대 가장 많은 예산이 드는 사업만을 집중 감시한다든지, 내부 제보 유인에 집중한다든지)을 세워야 할 것이다.

좀더 많은 준비와 역량 투여가 필요

‘시민참여’와 더불어 ‘참여정부’에 의해 강조되는 의제가 ‘지방분권’이다. 그러나 ‘주민소환제’나 ‘주민감사청구’처럼 시민에 의한 감시제도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는 부패한 토착세력과 결탁한 지방자치단체에 권력을 넘겨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지방분권은 시민참여에 의한 견제가 보장될 때 완성된다. 청렴계약제와 옴부즈만제도 역시 이런 맥락에서 그 의미를 가진다.

다만 이 제도가 오직 말로만 부패방지를 떠드는 당국의 생색내기식 사업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시민운동은 현재보다 더 많은 준비와 역량을 투여해야 한다는 것이 지난 3년간 청렴계약제 활동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이다.

최한수 참여연대 투명사회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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