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8월 2003-08-01   1788

현대자동차울산공장 비정규노동조합 출범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의 새로운 시험대


지난 7월 9일, 현대자동자 울산공장의 비정규노조가 깃발을 올렸다. 1만5000여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이들 하청노동자가 단결에 성공하면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비정규노조가 된다. 현대자동차노조라는 강력한 정규직 노조가 이미 존재함에도 비정규노동자들은 왜 독자노조를 건설할 수 밖에 없었을까. 일부 언론이 부각시키는 것처럼 현대자동차 내의 노노갈등 때문인가. 이들이 넘어야 할 산은 무엇인가. 해답을 얻기 위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찾았다. 편집자 주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 하나되어 우린 나선다. 승리의 그날까지∼.”

현대자동차 울산출고센터 앞. 장대비 사이로 ‘파업가’가 울려 퍼진다. 출근시간에 맞춰 30여 명의 사람들이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1회용 비옷을 뚫어버릴 정도의 폭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정규노조 건설로 우리도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구호를 외쳐대는 이들은 현대자동차울산공장 비정규노동조합 간부들과 노학연대를 실천하러 온 대학생들이다.

2003년 7월 9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노동조합(이하 현자비정규노조)이 탄생했다. 130여 명의 하청노동자들이 울산 북구청에 노조설립 신고를 한 것이다. 이미 정규직노동자로 구성된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이하 현자노조)가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직만의 별도 노조가 만들어지자 곧바로 언론들은 ‘노노갈등’을 키워드로 분석을 시도했다. 그다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그동안 재계와 언론은 비정규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 있을 때마다 정부와 기업의 노동정책에 대한 이들의 불만을 정규직 노동자들의책임으로 떠넘기곤 했다.

그렇다면 비정규직 노조의 건설이 정규직 노조와는 전혀 무관한 것인가. 얼마 전 조흥은행 노조 파업 때 인터넷을 통해 표출된 대기업노조에 대한 비정규직 및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의 깊은 불신의 원인은 무엇인가. 파업에 극도의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재계와 언론이 이용, 톡톡히 재미를 봤던 비정규 노동자들의 목소리. ‘노노갈등’이란 단어 하나로 간단히 마침표를 찍어버리기엔 그 목소리에 담겨 있는 고민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그 때문일까.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앞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이 부르는 “흩어지면 죽는다”란 노래 가사가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동일 노동, 다른 임금, 다른 처우

5단지로 나눠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는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뒤섞여 일하고 있다. 원청, 즉 정규직 노동자는 현자노조에 가입한 노조원만 약 3만9000여 명이다. 하청 비정규직은 정확한 추산이 불가능하다. 1차부터 3차까지 내려가는 하청 시스템 때문에 회사측도 1차 하청 정도만 규모를 파악하고 있다. 현자비정규노조는 전체 하청노동자가 적어도 1만5000여 명 이상이 될것으로 추산한다. 이들 모두가 노조원이 되면 단일사업장으론 최대규모다.

원청 노동자들과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시간과 작업량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같은 공장 내에서, 같은 컨베이어 벨트에서 함께 일한다. 그러나 급여만큼은 동일하지 않다. 평균 근속연수는 15∼20년인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의 평균 근속연수는 1∼2년에 불과하다. 근속연수에 따라 수당이 올라가는 급여체계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원·하청 노동자간의 급여차는 엄청나다. 같은 1년차끼리 비교해 보면, 정규직 노동자가 시간당 3500∼3800원의 시급이 적용되는 것에 비해 비정규직은 2500∼2700원에 불과하다. 여기에 수당, 상여금, 시간외 수당까지 고려해 총액을 계산하면 1차 하청 노동자가 받는 연봉은 정규직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5공장에서 일하는 한 1차 하청 노동자의 급여명세표에는 “노동시간 363시간, 실수령액 92만2260원”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이 달엔 파업 때문에 노동시간이 다소 줄었지만, 통상 월 400시간이 넘는다고 한다. 그래봐야 급여는 큰 차이가 없어, 100만 원을 겨우 넘을 뿐이다.

상여금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비정규 노동자에게는 초과근무에 대해서도 기본근무와 동일한 시급이 적용된다. 초과업무에는 더 높은 시급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기본근무시간이 240시간이니까 매월 160시간에 대해서는 시급 적용에서부터 손해를 봐야한다.

그뿐 아니다. 안기호 현자비정규노조 위원장은 “기본적인 후생복지에서조차 제외되어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체력단련실과 통근버스는 물론 의무실도 이용할 수 없다”는 현실을 지적했다. ‘하청노동자 사이트’에는 작업에 필요한 기본적 의류와 장비조차도 제대로 지급 받지 못한다는 사연을 비롯해 사측의 노동착취와 열악한 근무조건에 대한 하소연들이 연일 쏟아진다.

현자노조 내부에 비정규문제가 불거진 건 ‘아산 식칼테러’사건 이후부터다. 지난 3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월차 휴가를 쓰려던 하청 노동자 한 명이 관리자에게 폭행을 당하고 병원에 입원한 뒤, 또 다시 식칼로 아킬레스건이 잘리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 일은 하청노동자들을 단일대오에 모이게 했고, 단위노조에서는 그동안 구호에 머물렀던 비정규직 차별철폐운동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됐다. 5월 2일 현대자동차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투쟁위원회(이하 비투위)’를 구성해 본격적으로 부당노동행위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현자노조 측도 이들과 함께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에 대해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현우 현자노조 대외협력실장은 “비투위와 현자노조의 결론은 원·하청이 공동으로 노조에 가입해 향후 공동투쟁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04년 현자노조의 대의원대회를 통해 규약개정 등의 공투 계획을 세웠다”며, “올해 임금협상부터 양자연대가 본격화 했다”고 밝혔다.

“2004년까지 한시적 조직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투위가 단독노조 깃발을 들어 현자노조는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현자노조는 노조설립일 하루 전인 7월 8일 ‘우려와 문제의식’이라는 문건을 통해 “단독노조건설을 제고해 줄 것”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비투위는 이날 오후 노조설립총회를 갖고 단독노조설립을 강행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계기는 비정규직이 처한 급박한 상황이었다. 갤로퍼가 단종 되면서 갤로퍼 제조공장에서 일하는 535명의 하청노동자들이 해고위협에 직면한 것이다. 하청노동자들에게는 이미 일상화 돼버린 해고위협을 외면할 수 없어서 이번에는 비투위가 적극 대응에 나선 것이다.

비투위가 천막농성을 시작하면서 고용승계를 요구하자, 사측은 농성을 강제해산하고 8명의 농성주도자들에게 5000만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걸었다. 안기호 현자비정규노조 위원장을 포함한 8명의 농성주도자들은 수배상태로 공장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나마 비정규노동자들의 구심점이 된 비투위의 활동자체가 어렵게 되자, 내년까지 기다리자는 현자노조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는 것이 현자비정규노조 측의 설명이다.

안 위원장은 “일단 한시적으로라도 회사측의 노동탄압과 해고위협에 맞서줄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내년 규약개정을 통해 원·하청 공동가입이 가능해지면, 비정규노조는 즉각 해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자간의 연대수준이 어느 정도로 계속 될지 짐작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냥 정규직노조만을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 보다 본질적인 답변일 것이다.

비정규노조의 한 조합원은 “비정규문제는 모든 단위가 당면 투쟁과제로 삼고 있다. 민주노총도 이미 5년 전부터 핵심과제로 삼았고 현대자동차 등 단위노조도 같다. 다들 이견은 없다. 그러나 현실과 실천은 다르다”며 냉정히 지적했다. 그는 “원·하청이 같은 조합원이 되어 공동 투쟁하면, 일단 현재로서는 정규직이 자신의 몫을 비정규직에게 나누어야하는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에 앞서, 원·하청이 공동 가입할 수 있도록 하자는 규약개정부터 어려울지 모른다”며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특히 임단투를 지나 노조위원장 선거국면으로 넘어가면, 조합원들 표심에 신경쓰느라 비정규직 문제가 찬밥신세가 될 게 아니냐는 우려도 이번 독자노조 설립 결단에 한몫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울산현대자동차의 비정규노조 건설은 언론보도로 매우 심각한 상황인 것처럼 알려졌으나, 오히려 공장 내부는 잠잠해 보였다. 그러나 이미 노동자들은 예민하게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승용3공장 의장부에서 만난 한 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문제 취재하러 왔다’는 말이 떨어지가 무섭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비정규노동자 문제가 심각하지만, 그것을 정규직의 몫에서 떼어가는 게 맞느냐. 특히 경제신문 등은 노골적으로‘대기업 공장노동자들이 지나치게 고임금이다’라고 하는데, 어디 까놓고 말해보자. 이 공장에서 10∼20년씩 근속하고 1년 365일 하루에 10시간도 넘게 이 컨베이어벨트에서 일해 받는 돈이 연봉 4000만 원이다. 잔업 안 하면 우리연봉도 2700∼2800만 원 수준이다. 언론은 4000∼5000만 원만 부각하지, 우리가 어떻게 일하는지는 말 안 한다”고 성토했다. 올해로 13년째 일하는 이 노동자는 마치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착취하는 것처럼 보도하는 행태를 강력히 비판했다.

비정규노조에 대해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이러한 언론보도 때문에 대다수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우선 불쾌한 심정’이라는 것도 덧붙였다.

현자노조의 사업방침과는 달리 작업장 노동자들의 비정규직에 대한 연대의식은 아직 미치지 못하는 상황인데, 현자노조의 입장은 어떠할까. 노조는 진행 중인 임금단체협상으로 어수선했다. 이현우 대외협력실장은 ‘비정규’라는 말을 듣자 담배부터 피워 물었다. 노노갈등으로 부각되면서 이곳 노조사무실로도 취재와 인터뷰요청이 쇄도한다고 했다. 실제로 짧은 시간동안 온 몇통의 전화 대부분이 비정규관련 문의였다. 현자노조는 비정규노조 설립 다음날에 “환영하며 끝까지 연대하겠다”는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일단 출범했으니 ‘우려와 문제의식’조차도 조심스러울 정도로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이 실장은 “비정규노조만으로 자본의 탄압을 이겨낼 수가 없다. 비정규노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규직노조가 해야할 일이 더 많다. 우리와의 연대 정도가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규모 비정규노조가 결성된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현자비정규노조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대규모 비정규노조가 실패를 거듭하는 상황에서 현자비정규노조마저 실패한다면 한국사회에서 비정규노조가 성공할 수 있는 토대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게 민주노총의 시각이다. 이런 주목에 대해 현자노조는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정규직과의 연대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성공한 비정규노조를 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현주(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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