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8월 2003-08-01   795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

‘세계화에서 지역화로!’


선진국과 거대 초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대한 비판은 그 동안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모든 나라가 빗장을 열면 사람들이 더 잘 살게 될 것이라는 세계화론자들의 주장은 허구에 지나지 않았다. 국경을 뛰어넘는 무한경쟁으로 빈곤국은 물론 선진국에서도 삶은 갈수록 팍팍해져 평범한 사람들조차 그 문제점을 실감하게 됐다.

그럼에도 ‘세계화 주장은 이제 쓰레기통에 쳐박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길을 제시하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효율성, 경쟁력, 무한한 욕구 등으로 무장한 세계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아니냐 하는 무력감마저 떨쳐버리기 어렵다. 1999년 미국 시애틀 시위 등으로 세계화의 시계바늘을 조금 늦추는 데는 성공했지만 말이다.

반세계화 지지자가 아니더라도 이런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는 한여름의 청량제처럼 다가온다. 이 책은 세계화가 빚는 병폐에 대한 종합진단서이자 뛰어난 처방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세계 25개국 60여 개 단체의 연대모임 성격인 ‘세계화에 관한 국제포럼’이 명망 있는 전문가와 활동가 19명으로 ‘대안 태스크포스팀’를 구성해 99년부터 공동연구에 들어간 뒤, 지난해 11월 그 결과를 담아 펴낸 보고서가 이 책이다. 반세계화 진영이 대안모색에 초점을 맞춰 3년에 걸쳐 흘린 땀의 추출물인 만큼, 독자들이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적어도 반세계화 세력이 대책없이 거리시위만 일삼거나 ‘무식하게’ 보호무역주의만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은 알게 될 것이다. 나아가 독자들이 더 나은 세계에 대한 비전을 갖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빈곤국을 유혹하는 ‘기업 세계화’

이 책은 현재의 세계화를 ‘기업 세계화’라고 규정해 그 주도세력이자 최대 수혜세력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고, 다양한 통계와 사례를 근거로 세계화의 실패를 체계적으로 진단한다. 국경을 허물어 금융자본과 기업활동의 자유를 무제한 보장하는 세계화가 빈곤을 없애거나 빈부격차를 줄이기는커녕 초국적 기업으로 부를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은 여러 국제기구는 물론 ‘세계화의 기관차’인 미국의 정보기관 분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 중앙정보국은 「글로벌 트렌드 2015」라는 보고서에서 “세계화는 승자와 패자 사이의 격차를 훨씬 더 크게 벌려놓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는 지금 20여 개의 부자나라와 한참 뒤에서 좇아가는 한국 등 10여 개 나라, 그리고 갈수록 뒤쳐지기만 하는 140여 개의 가난한 나라로 나뉘어 있는 형국이다.

개도국과 빈곤국을 옥죄고 있는 외채 상황의 악화는 더욱 분명한 증거다. 제3세계의 외채잔액은 세계경제가 호황기를 맞았던 90년대에도 해마다 1000억 달러씩 늘어 2001년 2조40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 책은 빈곤국이 개발을 앞세운 세계화의 유혹에 빠져 헤어날 수 없게 되는 ‘외채 악순환’의 메커니즘을 면밀하게 해부했다.

가난한 나라를 착취해 빚더미만 늘어나게 하는 세계화 체제는 대증요법으로 치유 불가능하므로 ‘세계화의 저지’를 넘어서 ‘역전’이 필요하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기업활동의 자유가 선진국에 이어 후진국으로 부를 흘러 들어가게 할 것이라는 기업 세계화론자의 사고는 근본적 결함을 안고 있어 확연히 다른 인식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유지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원칙의 하나로 ‘세계화에서 지역화’로의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전환을 제시한다. 초국적 기업과 금융자본이 세계화 논리를 앞세워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린 각종 규제 등 경제·정치적 결정권을 지역공동체에 되돌려줘야 한다는 게 그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지역공동체는 구성원들의 삶에 가장 적합한 기업·투자·조세정책을 채택해 지역경제를 되살릴 수 있다. 외부에 대한 의존을 최소화함으로써 외환위기처럼 소수의 외국자본이나 기업에 생존권을 저당잡힐 위험은 없다. 외채상환과 수입대금 확보를 위한 수출에 목을 맬 필요가 없으므로 균형잡힌 산업발전이 가능하고, 선진국이 압도하는 ‘자유로운’ 무역이 아닌 ‘공정한’ 무역이 자리잡을 여건이 마련된다.

세계화 세력과의 ‘정치적 싸움’

이 책은 더 나은 세계를 위해 사람들의 삶을 평가하는 잣대부터 바꿀 것을 권고한다. 흔히 쓰이는 국내총생산(GDP)이나 그것을 인구수로 나눈 국민소득이라는 수치가 주는 허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총생산에는 돈으로 거래되지 않는, 다시 말해 스스로 사용하기 위한 생산은 전혀 포함되지 않는다. 자연자원 파괴와 같은 마이너스 요소 또한 반영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이 건강이 나빠져 의사의 수입이 늘어나거나, 범죄증가로 보안시스템 수요가 증대되거나, 마실 물의 질이 떨어져 생수가 많이 팔리면 국내총생산이 늘어나 경제가 성장한 것처럼 보이는 역설적 구조로 돼 있다. 따라서 그 사회의 복지·보건·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GPI(진정한 진보 지표)같은 새 지표로 대체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책은 대안 에너지 정책, 대안농업·제조업 정책, 대안운송 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더 나은 세계로 가는 현실성 있는 수단들을 내놓고 있다. 세계화의 첨병인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 세계무역기구를 폐지하고 유엔의 경제·노동·보건·환경기구들이 세계경제 규칙을 다시 쓰고 관리하도록 하자는 등의 신선한 제안들도 적지 않다. 이와 함께 미국의 경제제재 강화 때문에 기존의 사탕수수 수출일변도에서 여러 가지 작물의 유기농법으로 농업의 방향을 튼 쿠바가 거둔 성공담과 같은 풍부한 실례들은 반세계화 운동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이 책 지은이들의 단호한 부인에도 지역화 발상은 마치 고립된 전통사회로 되돌아가자는 식으로 들릴 수 있고, 책에 담긴 일부 주장은 너무 ‘과격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이 책의 주된 흐름인 세계화 전면 거부에 대해선 반세계화 이론가 사이에서도 견해차가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책에 소개된 여러 대안이나 시도들은 책의 전체 흐름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쓰임새가 적지 않은 ‘지적 무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 책이 밝힌 것처럼 “더욱 세련된 비전과 명제에 이르기 위해 더 많은 논의와 대화를 촉진하는 데” 책을 펴낸 목적이 있는 만큼 앞으로 대안이 좀더 설득력과 현실성을 띠도록 가다듬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세계화 주도세력과 본격적으로 펼치게 될 ‘정치적 싸움’에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도록 하는 일이다. 개도국과 세계 시민사회, 여기에 동조하는 일부 선진국 정치세력 사이의 ‘거대한 연대’가 형성될 수 있는 분위기는 이미 무르익었다.

이 책은 마지막으로 “이런 중대한 과정에 독자 당신도 동참하기를” 촉구한다.

박중언 『한겨레』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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