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07-08월 2019-07-01   1104

[만남] 참여사회를 완성하는 사람들 – 김경일 회원

참여사회를 완성하는 사람들

김경일 회원

월간 참여사회 2019년 7-8월 합본호(통권 267호)

 

책자 하나가 우편함 밖으로 비쭉이 나와 있다. 매달 회원 자격으로, 필자 자격으로 받아 보는 「참여사회」다. 솔직히 바쁠 땐 비닐도 못 뜯은 채 곧장 책장 한구석에 처박기도 한다. 10년 전, 참여연대에 막 가입했을 땐 달랐다. 참여연대에 대해서 모르는 것도 궁금한 것도 많았던 시절, 한 달에 한 번씩 얼굴을 내미는 「참여사회」가 무척 반가웠다. 물론(?) 제일 재밌게 봤던 건 회원 인터뷰 코너였다. 근데 어찌어찌해서, 지금은 내가 바로 그 코너를 쓰고 있다. 그것도 무려 8년째 말이다. 인연이란 게 가끔은 무섭다. 

 

인연의 시작

뜬금없이 「참여사회」 얘기로 인터뷰를 시작한 이유가 있다. 오늘 만날 주인공이 바로 「참여사회」의 디자인과 제작을 맡고 있는 디자인 회사 ‘더 디앤씨’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제가 회사를 설립한 게 2002년이니까 거의 20년이 다 돼가네요. 그전에는 출판물 디자인 회사에서 편집디자이너로 일했어요.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 디자이너들이 30대가 되면 독립을 고민하게 돼요. 운동선수들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나이를 먹으면 운동 실력이 줄어드는 것처럼 디자이너도 감각이 떨어지는 거죠. 직업 특성상 밤샘 작업이 많은데 체력도 딸리고, 그러다 보니 독립을 꿈꾼다기보다 독립을 당하는 경우가 많죠.” 

 

회사 홈페이지를 둘러보니 체력적인 문제를 걱정하는 것치곤 이것저것 벌이는 일이 많아 보인다. 디자인 외주를 받는 것도 모자라 직접 기획 출간까지 하고 있다. 

“남의 책을 만들다 보니 디자인을 수정해 달라는 경우가 많아요. 내 책을 만들면 내 맘대로 디자인할 수 있겠다 싶어 출판 일을 시작했죠. 근데 책을 몇 권 내보니까 단지 누군가의 간섭 없이 책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이 일을 시작한 게 출판에 대한 모독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출판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디자인이 출판의 전부도 아니고.”

 

몇 년 전부터 본의 아니게 출판사 일을 하고 있는 나는 그의 오랜 경험과 지혜에 귀를 기울인다. 무엇보다 ‘책 만드는 일’에 대해 그가 보이는 겸손한 태도가 초보 편집자인 내게는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독립하고 첫 고객이 참여연대였다고요?

“네, 제일 처음 거래를 한 고객이죠. 사실 그전에 제가 직장생활 할 때부터 참여연대와 인연을 맺긴 했었어요. 그땐 고객이라기보다 일종의 재능기부 형태로 도와드렸죠. 아는 지인이 대기업 홍보실에 있다가 참여연대로 옮기셨는데 얼마 뒤 저한테 연락을 하셨더라고요.”

 

그가 연락을 받고 찾아간 곳은 을지로에 위치한 작은 디자인 회사였다. 디자이너라고 해봐야 한 명이 전부인 영세한 그곳에서 그의 지인이자 당시 참여사회 담당 간사는 모니터에 「참여사회」 표지를 띄워놓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처음엔 표지가 무척 복잡했어요. 제목도 많이 들어가 있는 데다, 어디는 하얗고 어디는 빨갛고. 아마도 참여연대가 돈이 없으니까 영세한 업체랑 작업을 하신 것 같은데 이분은 그룹 홍보실에서 일했잖아요. 당연히 디자인 퀄리티가 성에 안 차셨겠죠. 눈에 안 띈다고, 저보고 좀 도와달라고, 그래서 조금 정리만 해드렸죠.”

 

「참여사회」와 그의 옷깃은 이렇게 스쳤다. 그때의 그도, 8년 전의 나도, 이 인연이 이렇게나 오래 이어질 줄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7-8월 합본호(통권 267호)

「참여사회」편집디자인 자원활동으로 처음 맺어진 인연은 어느덧 「참여사회」 200호를 넘겨 2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서로의 든든한 파트너로 이어지고 있다  

출처 더디앤씨 홈페이지 www.thednc.co.kr

 

매월 「참여사회」를 만듭니다

“그렇게 처음엔 짬짬이 가서 표지를 만들어 드리다가 나중엔 아예 원고를 받아서 제 사무실에서 조금씩 작업을 해드렸죠. 물론 무보수였고요, 그게 아마 90년대 후반이었을 거예요.”

 

그의 앞에 십여 년 전 발간된 「참여사회」들이 여러 권 펼쳐져 있었다. 그 시대의 색깔과 정서가 묻어나는 표지들. 오래된 책을 들춰보는 그의 눈에 긴 시간이 압축적으로 스쳐 지난다. 「참여사회」의 디자인 작업을 직접 맡아서 하던 시절엔 읽기 싫어도 원고들을 모두 읽었다는 그에게 매체로서 「참여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책으로서 뭐 나무랄 데 없는 매체죠. 상업적인 매체들이 갖는 한계가 분명 있잖아요. 예전에 기업에서 홍보용으로 ‘사외보’ 같은 것을 많이 만들던 적이 있어요. 그런 매체엔 오히려 돈 받고 파는 책에서는 많이 다루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고 수준도 꽤 높았죠. 어디서도 얻지 못하는 정보들, 자주 접할 수 없는 필자들을 위주로 책이 만들어졌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그런 책자들이 거의 없어졌지만, 「참여사회」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참여연대 말고도 희망제작소,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등 여러 시민단체와 일한다. 그중엔 참여연대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 곳도 많다. 경제개혁연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문학작가회의, 우리교육 …. 예전엔 월간 『말』지와 작업도 했었다는 얘기에 문득 그도 블랙리스트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담 삼아 그런 얘기 한 적은 있죠. 블랙리스트에 들어가 있는 거 아니냐고.(웃음) 근데 사실 저희는 정부기관 일도 많이 하거든요. 한국자산관리공사와도 일했고, 한국산업인력공단도 있고….”

 

정부기관이나 기업하고 일할 땐 어떤가요? 시민단체와 많이 다른가요?

“함께 일할 사람의 성향이 가장 중요하긴 한데, 기업 중에서도 조직문화가 좀 경직된 곳이 있어요. 그런 데와 일할 땐 좀 힘들죠. 가장 힘들었던 곳이 삼성인데, 거긴 마치 군대 같아요. 일방적으로 오더를 내리는 방식도 그렇고, 디자이너나 기획자와의 의견 조율이 거의 되지 않는 것도 그렇고. 거래를 종료할 때도 그냥 팩스 한 통 보내더라고요.” 

 

삼성의 조직문화에 대해 잘 모르지만, 왠지 참 삼성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이 민주적이고 서로를 존중하며 사내 분위기 또한 자유롭다는 얘기를 듣는 게 더 쇼킹한 일 아닐까. 

 

월간 참여사회 2019년 7-8월 합본호(통권 267호)

“마감 때마다 싸우던 편집자와 모처럼만에 의견일치”였던 2009년 6월호 표지는 역대 참여사회 표지 중에서 그가 가장 애정하는 표지이기도 하다 

출처 더디앤씨 인스타그램 instagram.com/thednc.co.kr

 

종이책의 미래를 말하다 

지금 ‘더디앤씨’에는 그를 포함해 여덟 명의 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다. 직원들은 그를 ‘사장님’ 대신 ‘실장님’이란 호칭으로 부른다.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주인공들의 직함이 주로 실장님인데 말이죠. 

“하하하, 별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에요, 일단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사장님이란 호칭은 좀 불편하기도 하고 또 나이가 들어 보일 것 같아서요.”

 

결코 작지 않은 규모의 회사를 이끌고 계신데 경영자로서의 철학 같은 게 있으신가요?

“나이 들어서도 디자인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는데 경영철학까진 고민 안 해봤어요. 저희 같은 중소업체들은 현실적으로 직원들을 끝까지 책임져 줄 여력이 없거든요. 그러니 저희 직원들도 평생 여기서 일할 수는 없을 테고, 경영자로선 매년 직원들의 급여를 올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곳이 각자 미래에 대한 설계를 할 수 있는 그런 직장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은 하죠.”

 

거의 20년 동안 한 번도 급여를 동결했던 적이 없다니, 경영자로서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한데 그는 오히려 앞날을 걱정하고 있었다. 

“올해랑 내년은 어찌 될지 잘 모르겠어요. 경기가 안 좋은 영향도 있지만 그것보다 종이책 시장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 기업들이 만들던 이런저런 간행물들도 급격히 주는 추세고.”

 

같은 업계에 몸담고 있어선지 화제가 출판 시장의 암울한 현실과 미래로 옮겨가자 이야기가 길어진다. 많은 인쇄물들이 인터넷 웹사이트로 대체되고 있는 것, 옆 나라 일본처럼 다양하고 고유한 출판문화가 없다는 것, 젊은 세대가 활자보다 영상과 같은 이미지에 더 친숙하다는 것 등등, 업자들의 넋두리는 끝이 없다. 

“저희는 한 백만 부쯤 팔려야 베스트셀러라고 하던 시절을 지나왔잖아요. 그땐 잡지가 정말 홍수처럼 쏟아졌고 많은 기업들이 정기간행물을 만들었던 때라, 저는 디자이너로서 행복한 시절을 보낼 수 있었죠. 다만 제 이후의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종이책에 대한 고민들은 지금 세대들도 정말 꾸준히 하고 있는 거 같아요. 올해 ‘인디북 페스티벌’에 갔을 때도 다양한 내용과 형태의 책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걸 봤거든요.” 

 

업자들의 마지막 대화는 자연스럽게 종이책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일본 회사 ‘무인양품’의 총괄 아트디렉터 하라켄야라는 사람이 ‘햅틱(Haptic) 디자인’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어요. 촉감에 대한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건데, 한 예로 나가노올림픽 브로슈어를 제작할 때 그는 만지면 눈 같은 느낌이 나는 종이를 특별히 주문하기도 했죠. 이런 것들은 컴퓨터가 구현해낼 수 없는, 종이책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잖아요. 아마존 회장도 종이책은 절대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그랬대요. 자기 등 뒤의, 책장을 가득 메운 책들을 가리키면서 저 책들 때문에 이 방이 이렇게 폼이 나는데 책이 왜 없어지냐고. 맞는 말 같아요. USB 하나에 엄청난 양의 책이 들어가겠지만, 그거랑 책으로 채워진 공간이랑은 완전히 다르잖아요. 전 희망을 갖고 있어요. 종이책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예요.” 

 

디자인은 하나의 척도다 

최근 그는 글쓰기를 배우고 있다. 평생 책 만드는 일을 해 왔는데 생각해 보니 자신이 해온 일은 그저 책을 꾸미는 일이었다는 자각이 들었다고. 책에 들어갈 이야기를 직접 쓰고 디자인도 직접 해서 자신의 출판사에서 출간까지 하고 싶다는 꿈. 

 

“디자인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준, 문화적 척도라고 생각해요. 과거에 오세훈 시장이 ‘디자인 서울’이라는 걸 내세우면서 간판도 바꾸고 해치 상(像) 같은 걸 만들고 했었거든요. 디자인을 개발하듯이 밀어붙여서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는 아주 무식한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도시와 마을을 살리려면, 개발이니 뭐니 그런 식으로 되는 게 아니라 그곳에서 터 잡고 살아가는 이들이 하나둘 가꾸어 가야 되는 거예요. 시간이 흐르면서 조그만 가게들이 생기고 그 앞에 아담한 간판이 달리고 어느 날은 창가에 화분이 놓이고, 이렇게 차츰차츰 동네가 예뻐지는 거잖아요. 그런 동네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거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화적 수준이 점점 높아지는 거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어떤 디자이너가 좋은 디자인을 해서 제안을 했을 때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성숙되지 못한 거예요. 디자인만큼 정확한 척도는 없다고 생각해요.”

 

2012년 내가 처음 「참여사회」 회원 인터뷰를 했던 그 날의 떨림이 오롯이 기억난다. 컴퓨터의 인터뷰 원고 폴더를 열어 그동안 만났던 이들의 이름을 찬찬히 헤아린다. 60명이 넘어가는 숫자, 8년이 넘은 세월. 그 기간 동안 나와 그는 서로를 몰랐지만 나의 글은 그에게로 가서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이번 기회에 그를 포함해서 「참여사회」를 만들기 위해 크고 작은 노력들을 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면서, 이 원고를 그에게 보낸다.  

 


글.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9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사진. 이한나 미디어홍보팀 간사

녹취. 조연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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