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12월 2002-11-29   1701

“걷고 싶은 서울”을 위하여

월간 『참여사회』에 ‘서울만보기’를 연재한지도 어느새 만 2년이 되었다. 2년은 아주 길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나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이다. 사실 나는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다. 시간은 참으로 무섭게 지나간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어디론가 시간은 빠르게 사라져버린다.

그동안 나름대로 서울의 여러 모습을 살펴보고자 애썼지만, 그저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는 데 그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지금까지 서울의 모습을 가능한 한 사실대로 기록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이 엉망진창의 도시를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드는 데 이바지하고 싶었다. 이런 바람이 잘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도 내 노력이 전혀 무의미한 것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실을 직시할 때, 비로소 이상이 자라날 수 있는 법이다. 이상은 단순한 백일몽이 아니다. 현실을 올바로 보고 문제를 제대로 찾아낼 때, 비로소 이상이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품고 서울의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녔다. 인상을 찌푸리고 푸념할 때가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희망을 아예 버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오랜 시간에 걸친 꾸준한 노력만이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 수 있다.

본래는 마지막 연재를 이명박 시장과의 인터뷰로 쓸 계획이었지만, 이 시장 쪽에서 『참여사회』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것저것 물어볼 것이 많았는데,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비판의 인터뷰’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내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것은 이 시장 쪽이 잘못 생각한 것이라고 알려주고 싶다. 나는 난마처럼 얽힌 서울의 문제를 풀려면 이 시장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장이 펼치고 있는 정책들 중에는 분명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역사적 과업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 시장 쪽은 제대로 된 ‘칭찬’을 들을 아까운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어디를 둘러볼까 고민하다가 지하철 7호선을 타고 강남 고속버스터미널로 갔다. 일대변신을 한 이곳의 모습과 문제를 살펴보는 것으로 ‘서울만보기’를 마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서울에는 이곳처럼 ‘환골탈태’한 곳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곳은 서울과 지방을 이어주는 결절점으로서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곳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으며, 왜 이렇게 변하게 되었는가?

낡고 지저분했던 호남선의 변신

1970년에 경부고속도로가 뚫리면서 한국은 고속버스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1978년에 세워진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은 그 상징과 같은 곳이 되었다. 그런데 이곳은 고속버스의 운행지역에 따라 이상하게 구획되어 건설되었다. 경부선과 영동선을 한 곳으로 호남선을 또 한 곳으로 모은 것이다. 지역 간의 거리를 근거로 이렇게 나눈 것으로 보이지만,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은 영남과 호남으로 갈라진 우리의 지역주의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꼭 이렇게 해야 했을까?

경부선과 영동선 터미널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파격적인 모습을 한 거대한 건물로 지어졌다. 반면에 호남선 터미널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밋밋한 단층 건물이었다. 경부선과 영동선의 터미널은 4층에도 승차장이 있는 커다란 복합상가였다. 그러나 호남선 터미널은 ‘시외버스 터미널’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낡고 지저분한 곳이었다. 이제는 없어지고 만 예전의 호남선 터미널을 떠올리면, ‘영남 정권’의 ‘호남 차별’이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의 호남선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1990년대 후반을 지나며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일대는 크게 변했다.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낡고 지저분한 ‘시외버스 터미널’의 꼴을 하고 있던 호남선 터미널이다. 그 자리에 신세계백화점이 들어서서 이제 고속버스 터미널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자칫하면 아예 없어진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정도이다.

사람들은 길가의 문을 통해 호남선 터미널로 들어갈 수 있지만, 이곳의 전체적인 구조는 신세계백화점을 통해 들어가도록 만들어진 것 같다. 나는 이미 여러 차례 이곳을 갔지만, 한번도 길가의 문을 통해 호남선 터미널로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사실 이번에 찬찬히 둘러보기 전까지는 백화점을 통해서만 호남선 터미널로 들어갈 수 있는 줄 알았다.

오랜만에 이곳에 오는 사람은 깜짝 놀라게 된다. 낡고 지저분한 ‘시외버스 터미널’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데, 눈에 보이는 것은 짙은 밤색 대리석의 거창한 상자건물이기 때문이다. 바로 신세계백화점이다. 낡고 지저분한 ‘시외버스 터미널’이 최고급 백화점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터미널 자체도 대단히 고급스럽게 바뀌었다. ‘공항버스 터미널’과 함께 쓰는 공간이어서 그런지 지금 호남선 터미널은 거의 ‘공항 터미널’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호남선 터미널 안의 상점들도 사뭇 달라졌다. ‘시외버스 터미널’ 주변의 볼품없이 간판만 요란한 가게들은 사라지고 ‘공항 터미널’에 어울리는 깨끗하고 화려한 가게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지린내가 진동하던 ‘시외버스 터미널’의 화장실도 거의 호텔급 화장실로 깨끗하게 바뀌었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세계적인 고급호텔인 JW메리어트호텔로 이어진다. 옛 호남선 터미널의 자리에는 신세계백화점이 들어서고 그 남쪽의 언덕받이에는 고급호텔이 들어선 것이다. 30층 높이로 우뚝 선 메리어트호텔은 이곳의 경관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이와 함께 이 호텔에서 경부선 터미널로 이어지는 보도의 경관이 크게 바뀌었다. 이곳에도 예전에는 볼 수 없는 고급스러운 꼴을 한 2층 건물들이 들어선 것이다. 그리고 메리어트호텔 앞에는 길 건너편의 아파트단지와 이어지는 다리를 놓았다. 너무 요란한 꼴을 하고 있어서 보기에 거북한 다리이지만, 아파트단지 주민들에게는 너무나 고마운 다리인 모양이다. 길가 쪽 동에 이 다리의 건설을 축하하는 큰 현수막들을 여럿 내걸었다. 이 다리가 건설되어 지하철 3호선과 7호선에 빨리 갈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생활여건이 개선되어 아파트 값이 많이 올랐을 것이다. 그러니 왜 축하할 일이 아니었겠는가?

변화는 완벽한 것으로 보인다. 낡고 지저분한 ‘시외버스 터미널’이 이 나라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공간으로 싹 모습을 바꾸었다. 공간이 이렇게 크게 바뀌었으니 당연하게도 이런 변화에 걸맞는 멋진 이름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곳은 ‘센트럴 시티’라는 ‘세련된’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 둘레의 어디서나 ‘센트럴 시티’를 읊조리는 안내판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센트럴 시티’라는 이름은 추상적이다. 이것은 신세계백화점, 메리어트호텔, 그리고 이 일대의 지하공간을 아울러 부르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부유한 삶 그리고 백화점 문화

‘센트럴 시티’는 그것이 포괄하고 있는 공간을 소유한 회사의 이름이기도 하다. 1970년대에 이른바 ‘율산신화’로 널리 알려진 신선호 씨가 경영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2001년 10월에 애경그룹이 경영권을 손에 넣게 되었다. 아무튼 그 홈페이지의 설명에 따르면, ‘센트럴 시티’는 ‘도심 속의 작은 도시’를 뜻한다고 한다. 모든 것을 갖추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 이런 이름을 지은 모양이다. 아닌게아니라 이곳은 먹고 자고 놀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심지어 ‘온천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더운물에 몸을 씻고 쉬기에도 좋은 곳인 모양이다. 식당은 지하와 지상에 골고루 퍼져 있다. 분식집에서 고급식당까지, 한식에서 양식이나 일식까지 여러 가지 음식점들이 ‘센트럴 시티’의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놀이 시설은 지하에 자리잡고 있다. 영화관은 물론이고 커다란 서점도 자리잡고 있다. 지하공간은 예전에도 중요했다. 1978년에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이 들어설 때부터 이곳의 지하공간은 커다란 상가로 개발되었다. 그러나 ‘센트럴 시티’의 지하공간은 다르다. 이곳은 ‘롯데월드’의 지하공간과 비슷하다. 지상뿐만 아니라 지하공간까지도 확 바뀌어 버린 것이다. ‘센트럴 시티’는 지상과 지하를 아우르는 여러 시설들로 이루어진 ‘복합문화공간’이다.

호남선 터미널이 이렇게 바뀌었다는 데에 놀라게 되기는 하지만, 이런 식의 변화 자체가 특별한 것은 전혀 아니다. 1990년대 내내 우리는 이런 식의 변화를 서울의 곳곳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 백화점은 주로 소공동에 모여 있었다. 그 무렵 신세계, 미도파, 롯데는 백화점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부유한 삶’ 자체를 뜻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 신세계, 미도파, 롯데는 점차 예전과 같은 독보적인 의미를 잃게 되었다. 소공동뿐만 아니라 서울의 곳곳에서 백화점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경제성장에 따라 이른바 ‘중산층’의 수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다시 1990년대에 들어와서 백화점들은 단순히 재래시장과 비교되는 ‘고급’ 물건을 파는 곳에서 지역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찾아와서 즐기고 배우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뀌었다. 이제 서울의 곳곳에 들어선 백화점들은 우리 사회가 ‘잘살게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기념전’이며, 지역주민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귀중한 ‘지역문화시설’이다.

그러나 백화점의 문화는 무엇보다 돈이라는 매개를 통하지 않고는 결코 누릴 수 없는 ‘상품문화’이다. 돈을 가진 자들은 그 화려하고 깨끗한 성채 안에서 온갖 물건들을 다 사고, 또 온갖 맛있는 것들을 다 사먹고, 또 온갖 재미있는 것들을 다 즐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그 밖에서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백화점이 ‘복합문화공간’의 구실을 하는 것은 나름대로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화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재이다. 그런 만큼 우리는 곳곳에서 ‘공적 복합문화공간’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백화점이 아무리 ‘문화공간’의 흉내를 낸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복합 상품문화공간’일 뿐이다. ‘센트럴 시티’도 그렇다.

장애물투성이 보행로

호남선 터미널이라는 공적 공간이 신세계 백화점이라는 사적 상업공간으로 바뀌면서 그 둘레의 공적 공간에도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다. 이 점에서 이곳의 변화는 공적 공간의 사적 변화가 낳을 수 있는 문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마지막 연재의 대상지역으로 이곳을 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세계백화점이 들어서면서 기존의 호남선 터미널만 없어진 것이 아니라 그 앞의 보도도 크게 바뀌고 말았다. 넓은 마당을 만들어서 나무들을 심어놓기도 했고 조형물을 설치해 놓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보도는 형편없이 망가지고 말았다. 반포대교에서 경부선 터미널로 이어지는 보도는 기가 막힐 정도로 뒤틀어졌다. 택시 정거장을 보도 안쪽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에 보행자는 곧장 걸어가지 못하고 안쪽으로 휘돌아 걸어야 한다. 더욱이 택시가 들어오는 찻길을 건너야 한다. 찻길을 건넌 보행자는 다시 여러 장애물들을 피해 큰 찻길과 이어진 바깥쪽으로 휘돌아 걸어야 한다. 신세계백화점의 앞마당은 넓지만 나무를 심어놓고, 또 그 앞으로는 지하입구를 너무나 크게 만들어 놓았다. 보행자는 신세계백화점의 손님이 되거나, 아니면 찻길에 바짝 붙어서 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이 백화점의 버스 정류장은 택시가 나가는 길과 지하 주차장에서 차가 나오는 길로 막혀서 섬과 같은 꼴이 되었다. 이곳에서 버스를 타려면 지정된 곳까지 걸어가 횡단보도를 이용해 찻길을 건너야 한다.

이에 대한 원성이 아마도 자자했던 모양이다. 이곳의 보도에는 번쩍거리는 방식철로 보도 안전판이 둘러져 있다. 그런데 지하 주차장의 출구 쪽의 보도에는 그 안전판을 없애버렸다. 그곳에서 ‘무단횡단’을 해서 버스 정류장으로 갈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경부선 터미널로 이어지는 쪽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곳에는 보도 위에 커다란 시설을 설치해 놓아서 편하게 걸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시야가 막힐 지경이다. 찻길로 내몰려 이곳을 불편하게 지나가면 지하입구가 입을 쩍 벌리고 오가는 사람들을 빨아들이려 애쓰고 있다.

‘센트럴 시티’의 신세계백화점 앞은 보행자를 무시하고 보도를 재정비한 대표적인 사례지역이다. 이곳에서는 꼭 이런 식으로까지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앞마당의 나무들에 작은 전구들을 다느라 한창 분주하다. 나무 한 그루에 몇 개나 다느냐고 인부에게 물으니 자기도 잘 모른단다.

대충 수만 개의 전구를 매달게 된단다. 나더러 정확히 세면 일억 원을 주겠다는 농담을 한다.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해 나무를 겨우내 고문하려는 것이다. 저런 짓을 한다고 돈을 쓰느니 앞마당을 편하게 만드는 게 훨씬 나을텐데. 이 땅의 부자들은, 노약자나 장애인은 고사하고 일반 보행자도 편하게 걸을 수 없도록 보도를 멋대로 뜯어고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가?

걷고 싶은 서울, 살고 싶은 서울

호남선 터미널이 화려하게 바뀌고 나자 경부선 터미널은 상대적으로 훨씬 퇴락한 꼴이 되고 말았다. 사실 경부선 터미널은 1990년대부터 줄곧 퇴락의 길을 걸었던 것 같다. 한때는 4층에서도 차를 타는 ‘입체 터미널’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1층만이 터미널로 이용되게 되었다. 고속버스가 오르내리던 양쪽의 긴 경사로는 이제 주차장으로나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언제부터인가 건물의 꼭대기에는 대형 시티비전을 설치해 놓았다. 고속버스를 타고 경부선 터미널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이 시티비전을 통해 환영의 인사말을 볼 수 있다. 물론 더 큰 목적은 광고판으로 이용하는 것이지만.

경부선 터미널은 ‘센트럴 시티’의 것이지만, 그러나 ‘센트럴 시티’에 속하지 않는다. 이 터미널 건물과 그 주변 지역의 모습은 여전히 1980년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낡기는 했어도, 예전의 호남선 터미널처럼 초라하지는 않다. 빈틈없이 건물이 들어서고 보도를 엉망으로 망가뜨린 호남선 터미널 쪽에 비해 경부선 터미널 쪽은 훨씬 더 여유가 있고 열려 있어서 인간적이다. 또 먼 길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또는 돌아오지 않는 터미널의 정취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낭만적인 공간이다.

호남선 터미널의 재개발은 실패작이다. 장삿속을 염두에 두고 공적 공간의 사적 변화를 추구한 결과이다. 나는 차라리 친구들과 그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며 농담을 나누면서 남원행 버스의 출발시간을 기다리던 예전의 호남선 터미널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모든 도시의 가장 큰 문화적 자산은 역사이다. 서울의 가장 큰 불행은 개발의 이름으로 그 역사에 대한 무지막지한 파괴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센트럴 시티’에서도 이런 불행이 반복되었던 것 같다. 그것도 오가는 시민들의 보행권을 크게 침해하는 방향으로. ‘걷고 싶은 서울’은 ‘살고 싶은 서울’을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다. 나는 정말이지 편하고 즐겁게 서울을 걸어다니고 싶다.

홍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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