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10월 2002-10-24   304

선관위는 진보정당을 죽일 셈인가

정치개혁안 발표에 민노당 등 반대운동 박차


대통령의 임기 말이면 여지없이 일명 ‘게이트’로 불리는 각종 부정부패 사건들이 정국을 뒤흔든다. 부정부패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정치전문가들은 어마어마한 정치자금을 필요로 하는 한국의 정치환경에서 찾고 있다.

고비용 저효율의 한국 정치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군중집회다. 선거 때만 되면 후보들은 구름같이 몰려든 군중을 앞에 두고 사자후를 토하며 ‘세’를 과시하지만 청중의 상당수는 금품으로 동원된 이들이었다.

막대한 비용을 요구하는 동원정치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되었음은 물론이다. 그 대안으로 미디어 중심 선거가 등장했고 어느 정도 그 기틀도 잡아가고 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 서울시장 후보 초청토론회에서 첫선을 보인 미디어 선거는 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더욱 활성화되었다. 영향력도 커져 좬방송문화좭 2002년 5월호에 실린 기사 ‘TV토론 방송의 방향과 과제’(이성환)에 따르면 97년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TV토론이 후보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한 유권자가 조사대상자의 79.8%나 되었다.

선관위 미디어중심 선거관련안 국회 제출

이처럼 미디어 선거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돈 덜 드는 선거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거세지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9월 7일 국회에 청중동원·조직가동 등 돈이 많이 드는 선거운동방식을 중단하고 미디어 중심의 선거운동 방법 도입을 골자로 한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정치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선관위의 정치개혁안에서는 방송위원회 산하에 방송사·학계·대한변호사협회·언론인단체·시민단체 등이 추천하는 11인 이내의 위원과 국회에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이 추천하는 각 1인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선거방송연설·토론위원회를 설치하여 합동방송연설회, 텔레비전방송 대담·토론회 및 텔레비전방송 정책토론회를 주관하도록 했다.

대통령선거에서는 텔레비전 방송을 이용한 합동연설회를 3회 열고 공영방송사는 자기 부담으로 생중계 방송하며 다른 방송사도 자기 부담으로 중계방송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대통령 후보자는 공개장소 연설·대담용 자동차와 확성장치를 이용한 거리연설을 할 수 없게 해 동원정치를 금지시켰다.

하지만 선관위의 정치개혁안에 대해 기존 정당이 일부조항에 대해 제동을 걸고 나서는 한편 군소정당들은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정치권은 미디어 선거로의 전환이나, 선거공영제를 통해 돈 안 드는 선거를 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군소정당들은 선거공영제 확대에 따른 후보자 난립 억제 방안이 소수당의 제도권 진입을 더 어렵게 하는 제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치개혁안에 소수정당 강력 반발

개정안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의 기탁금을 현행 5억 원 에서 20억 원으로 올리고, 무소속과 국고보조금 배분대상 정당이 아닌 정당의 경우 추천요건을 대폭 강화했다.

기탁금 반환도 차등화하여 후보자가 유효투표총수의 10% 이상을 얻었을 때 기탁금 전액, 5% 이상 10% 미만은 75%, 2% 이상 5% 미만은 50%를 돌려주고, 2% 미만을 얻은 후보자의 기탁금은 국고에 귀속하도록 했다. 선거에 들어간 비용도 같은 방식으로 채워주도록 해 재정상태가 나쁘고 지지도가 낮은 정당들은 정치개혁안이 오히려 새 정치세력의 제도권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지방선거를 통해 제3당의 입지를 굳히고 처음으로 국고보조금을 받았지만 여전히 재정상태가 나쁜 민주노동당은 선관위의 정치개혁안에 대해 “선거 자체를 죽이고 민주노동당을 고사시키겠다는 폭거에 다름 아니다”고 밝혔다. 사회당 또한 “선거법 개정안은 우리 정치의 근본적인 개혁과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갈망하는 국민들의 염원을 중앙선관위와 기성 정치권이 철저히 외면한 결과”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소수정당 정치참여 보장방안 마련 필요

9월 7일 국회에 제출된 선관위 개정안은 지난 7월 28일 발표된 선관위의 선거·정당·정치자금 개혁방안과 상당히 다르다. 선관위는 그동안 언론계, 학계, 정당,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수렴을 거쳐 최종안을 확정했다고 밝혔지만 기존 정당의 요구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7월 개정안이 발표된 후 시민단체와 진보정당들은 미디어 선거를 정착시키기 위한 바람직한 방안을 논의해 왔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민주노동당은 9월 3일 ‘미디어 선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가장 쟁점이 되었던 것은 선거방송연설·토론위원회 구성과 TV토론회 참가기준이었다. 최용익 문화방송 미디어비평 팀장은 “기존 정당들이 선거방송연설·토론위원회를 주도해서는 안 된다”며 위원회에 정당참여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은 “선거에 70% 이상의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디어에서 소수정당은 차별받아 왔다”며 지방선거 지지율 5% 이상으로 제한한 TV토론회 참가기준을 낮출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진보정당들은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에 따라 TV토론은커녕 대통령 후보를 내는 일에서부터 커다란 장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녹색평화당, 사회당, 전국교수노동조합, 전국학생회협의회 등은 ‘선거법 개악 저지, 정치관계법 전면 개정과 국민참정권 실현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고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선관위가 제출한 개정안이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한나라당은 대통령 후보의 유권자 접촉을 금지하는 법안,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기탁금 20억 원 규정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협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기존 정당들의 정치논리에 따라 개혁의지가 퇴색하는 것을 막고 깨끗한 선거와 참정권 확대란 본래 취지에 걸맞는개선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태욱(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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