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10월 2002-10-24   1018

이동권에 귀막은 이명박 서울시장

저상버스 도입 약속 물건너 가나


“버스요? 내 평생에 두 번 타봤어요. 2년 전에 택시가 하도 안 잡혀서 동생 등에 업혀 마을버스 탄 적이 있죠. 또 한번은 10년 전쯤… 이제 잘 기억도 나질 않네요.”

평생 버스를 두 번밖에 타보지 못했다는 뇌병변 장애 1급을 가진 최성미 씨(여·29세). 그녀는 결코 특별한 장애인이 아니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의 경우 평생 버스 한번 못 타본 장애인은 수두룩하다.

지난해 8월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공동대표 박경석·이동권연대)에서는 ‘버스타기 운동’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운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총 17회 진행된 버스타기 운동에는 매번 휠체어 장애인이 보통 10∼15명 정도 참여한다.

그 운동에 매번 참여한 장애인이 있다면 아마 그 장애인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버스를 타본 장애인이 아닐까 싶다. 그 주인공은 바로 박경석 이동권연대 공동대표다.

지난 8월 12일 박 대표와 약 10여 명의 장애인들은 국가인권위를 점거하고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지난 5월 지하철 5호선 발산역에서 한 중증장애인이 경사형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해 사망한 사건에 대한 서울시의 공개사과와 장애인 이동권 보장 대책마련을 요구하며 시작한 농성이다.

그러나 한 달이 넘어가도록 서울시는 공개사과를 거부하고 있고, 실질적인 이동권 보장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저상버스 도입 공개 약속

“장애인 편의시설이 형식적으로 설치돼 전면 재점검이 필요하다. 시내버스의 20% 정도는 저상버스로 대체해 이동권을 확보하겠다. 공익근무요원을 활용해 콜택시 100대를 운영하겠다.”

지난 5월 22일 이명박 서울시장은 사회복지계 관련 단체에서 개최한 서울시장 후보 초청 사회복지정책간담회에서 이렇게 공언했다. 그중 콜택시 100대 도입은 추경예산에 포함됨에 따라 그 실현이 가까워졌다. 거꾸로 가는 정책이어서 문제가 되지만 말이다.

장애인을 포함한 노인, 임산부, 아동 등 교통약자에 대한 교통정책은 크게 대중교통수단과 특별교통수단의 확보라는 두 줄기가 있다. 무료셔틀버스, 심부름센터, 해피콜 서비스 등은 특별교통수단에 해당된다. 콜택시도 마찬가지다. 물론 대중교통수단은 장애인계에서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저상버스’로 대표된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김경혜 박사는 지난해 서울시 용역을 받아 진행한 ‘장애인·노약자 통행수요 조사 및 정책연구’를 통해 “서울시의 교통약자에 대한 교통정책의 문제점은 대중교통수단의 발전 없이 특별교통수단에 치우치는 등 종합적인 교통정책이 부재하다는 점”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 시장의 콜택시 도입 정책이 서울시의 교통약자 교통정책 기형화(奇形化)에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저상버스를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던 이 시장의 약속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다만 지난 8월 서울시의회에서 장애인 이동권 확보 대책을 질의한 심재옥 의원에게 음성직 교통관리실장이 “저상버스 도입을 포함하는 대중교통 시스템을 고려중이며 관련 공무원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추진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라고 답변한 것에 그 희망이 걸려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이후 서울시는 저상버스 도입 추진위와 관련된 구체적인 조처는 아직 내놓고 있지 않다.

이 모든 것은 둘째치고 발산역 사고에 대한 서울시의 공개사과는 장애인과 서울시 사이에 필히 넘어야 할 강이다. 공개사과가 중요한 이유는 그동안 수많은 리프트 사고, 편의시설 미비로 인해 장애인들이 겪어야 했던 차별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장애인들이 사고를 당하면 높은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유감스럽다’, ‘송구스럽다’라고 위로하지만 그 이후에 책임지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개인적인 유감이나 사과는 아무나 할 수 있다. 저상버스 도입을 생각할 정도로 이 시장이 장애인 이동권 확보에 애정이 있다면 공개사과를 왜 못하느냐?”

박경석 대표는 공개사과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나 공개사과에 대한 이명박 서울시장의 입장은 참으로 오묘(?)하다.

“당시 시장이 아닌 보통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장애인 삶’의 안타까운 실상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무관심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는가 싶기도 했습니다. 우리 모두 돌이켜보아야 할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지난 8월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장애인들의 투쟁이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여론이 악화되자 이 시장이 ‘장애인 여러분께 드립니다’라는 제목을 달아 내놓은 발산역 참사에 대한 입장이다.

한편 경찰은 이미 발산역 참사에 대해 “개인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였다”고 결론지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최근 발산역 사고와 관련 경사형 리프트의 구조적 위험성을 인정하는 정부 문서가 공개되는가 하면 한나라당이 ‘정부 책임’을 주장하는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최근 새사회연대(대표 이창수)에서 국무총리실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 공개한 ‘장애인 이동 편의시설 점검 결과’(7월 8∼10일 실시)에는 “경사형 휠체어 리프트는 수동식 휠체어가 탑승하도록 설계돼 있으나 승강대보다 길이가 긴(1.2m 정도) 전동스쿠터가 탑승하고 있어 안전사고 우려”, “발산역 장애인 추락사고도 경사형 리프트에 전동스쿠터로 탑승하는 과정에서 발생” 등의 내용이 포함돼, 리프트의 구조적 위험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또한 한나라당은 지난 9월 11일 장애인 이동권연대가 발산역 참사에 대한 입장을 묻자(9월 2일자) 회신을 통해 “불안전한 지하철 휠체어 리프트 설치 및 유지관리로 인한 사고는 인명에 해를 끼치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 설령 개인적 과실로 인한 사고였다 하더라도 국가가 포괄적 책임을 면키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지난 9월 11일 알루미늄 사다리를 목에 걸고, 지하철 1호선 시청역 선로를 점거했던 장애인들의 “이명박 서울시장은 당장 나와서 사과하라!”는 울부짖음에 대한 메아리는 언제쯤 되돌아올지 궁금하다.

소장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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