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11월 2002-10-30   1330

NGO · 정부 · 주민조직 삼두 마차로 빈곤 퇴치! 필리핀 시민운동 현장을 가다

낯설기만 하던 필리핀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직업병(?)이 발동했다. 필리핀의 가장 큰 사회문제는 뭘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NGO들의 활동은 어떻게 펼쳐지고 있을까?

막 낯을 익힌 필리핀 친구들에게 짧은 영어로 더듬거리며 질문을 퍼붓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큰 문제는 빈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조금 과장하면 필리핀은 NGO의 천국(?)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시민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시아에서 몇 안 되는 영어 문화권이어서인지, 많은 국제 NGO들이 필리핀에 본부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은 직·간접적으로 빈민운동과 연관돼 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빈곤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알음알음으로 시민단체와 빈민지역을 방문하면서 빈곤문제가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그렇다면 필리핀 빈곤의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빈곤퇴치국가위원회의 빈곤극복전략

전국민의 40%가 빈민층이다 보니 빈곤극복은 시민사회, 정부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시대적 과제로 다가온다. 한국 시민단체 연수단이 빈곤퇴치국가위원회(National Anti-Poverty Commission, 이하 NAPC)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좋은 기회다 싶어 동행했다.

NAPC는 빈곤극복을 위해 정부와 시민사회 대표자로 구성한 법정기구로, 독립 국가기구이다. 위원장은 현직 대통령인 아로요(Arroyo)이고, 부위원장은 사회복지장관과 시민사회단체 대표다.

위원회는 50명의 상근 직원과 14개의 소위원회로 구성돼 있는데, 각 위원회는 정부측과 시민사회 인사가 반씩 차지하고 있다. 전체 인원이 약 300명에 이르는, 명실공히 빈곤극복을 위한 종합적인 대책기구인 셈이다. NAPC 사무처의 실무국장인 따따(TATA)는 한국 방문단을 위해 일부러 설명 자료까지 만드는 등 성의를 보였다. NGO 활동가 출신인 그녀는 NAPC가 정부기관이 아닌, 독립기구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위원회 활동을 소개했다. NAPC는 빈곤대책을 마련해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한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를 조정하고, 시민사회와 지역주민조직의 참여를 보장하면서 정부의 정책 집행을 감시한다.

NAPC는 빈곤극복 전략으로 1)자산 개혁(Asset Reform) 2)인적자원 개발 3)생계대책과 고용창출 4)사회보장 등을 세우고 이를 위한 세부 정책을 마련한다. 따따의 설명 중에 인상적이었던 점은, 빈곤문제를 단순히 수입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사회적 참여의 박탈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순간 빈곤문제를 경제문제로 바라보던 시야의 편협성을 깨달았다. 이어서 “한국은 과연 부유한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NAPC의 조직과 운영체계는 시민사회의 합의를 모아 일을 해나가는 민주적인 모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1년 예산이 12억 원이라는 설명에, 이렇게 적은 돈으로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NGO의 빈민 지원 활동

NAPC에서 그들의 활동을 평가해 달라고 하자 민간단체의 중견 활동가인 조카스(JOCAS)는 “그들은 매일 회의를 하지만 효과적인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법이 제정된 것은 98년이지만, 우여곡절 끝에 실제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라고 하니, 평가하기에 아직 이른지도 모른다.

NGO들의 빈민지원활동은 크게 생계 지원, 의료 및 장학 사업, 생존권 보호 등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메트로 마닐라 곳곳에서 각종 개발계획으로 빈민들이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

주민조직 스스로 대표자 선출

철거에 따른 적절한 생계 및 이주대책이 없이 진행되는 각종 개발사업은 도시빈민에게는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NGO들은 활동가를 문제 지역에 보내 주민들을 조직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가는 활동을 편다. 주목할 만한 점은 주민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주민 스스로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주체적으로 조직을 만들도록 돕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주민조직은 스스로 대표자를 선출하고, 활동계획도 결정한다. 활동가는 보조적인 일을 할 뿐이다. 재이주 지역의 주민지원활동도 활발하다.

이렇듯 많은 단체들이 활발하게 빈민운동을 하는데 왜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는 것일까?

현장활동가를 교육하는 아시아 네트워크 LOCOA의 나효우 사무총장은 “필리핀 NGO는 매우 발달돼 있지만 대부분 해외 펀드에 의존한 프로젝트형 단기 사업에 치중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조세개혁, 부패척결, 정치개혁 등 사회 구조적 접근을 위한 범시민사회의 연대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공동체 차원의 빈곤극복 노력도 있다. 모범적인 주민조직 사례로 인용해도 손색이 없는 SAMASAMA(‘어깨 걸고 함께’라는 뜻)의 경우, 주민 스스로 작은 신용조합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15명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조합원이 1000명을 웃돈다. 이들은 주민들이 구멍가게 등 소규모 사업을 시작할 때, 30만 원에서 300만 원까지 융자도 해 준다. 소규모 금융은 빈민들의 생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빈곤 극복을 위한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토지문제와 극심한 빈부격차, 정치부패, 초국적 기업의 자원 수탈 등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 지가 관건이다. 기실 필리핀의 시민사회 운동가들은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빈곤의 악순환으로 다수 국민이 교육, 의료 등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도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이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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