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11월 2002-10-30   976

정치권 눈치보기로 선거공영제 보도 실종

대통령선거가 두 달 남짓 남았다. 국회 국정감사나 본회의장은 산적한 국정 현안과 법안 처리는 뒤로 한 채 선거를 의식한 폭로와 비방만이 난무하고 있다. 선거가 있는 해에는 으레 그랬지만 올해는 더 유난스럽다. ‘현대상선 4억 달러 대북 지원설’, ‘김대업 병풍 공작설’, ‘서해교전 북 위협 첩보 묵살설’, ‘노벨평화상 로비 의혹’, ‘공적자금 수혜기업 기양건설의 한나라당 지원설’, ‘한나라당 언론대책문건’…. 확인되지 않은 설과 의혹이 꼬리를 잇는다.

이에 편승한 일부 언론은 이런 설들을 확대 편집해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원하는 편파보도를 일삼고 있다. 정치권과의 암묵적 커넥션 속에서 제기된 폭로 보도들은 의혹을 부풀리거나 재생산하는 가운데 사실 규명은 ‘나 몰라라’ 하는 식이다. 그런 한편 언론들은 정치권의 진흙탕 싸움을 훈계한다. ‘난장판 국회’, ‘막가파 국회’라는 표현들이 신문 지면에 등장한다. 언론의 이중적인 모습이다.

속 다르고 겉 다른 언론

그러다 보니 국민들의 정치 불신과 냉소주의는 더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벌써부터 올 대선은 가장 더러운 선거전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이번 선거만큼은 과거 돈 선거의 굴레를 벗고 선거운동 방식을 바꾸자는 여론이 그 어느 때보다 드높다. 중앙선관위는 지난 9월초 사람 동원 중심 선거운동을 축소하고, 미디어 선거기회를 늘린 선거공영제 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선관위 안은 국가가 부담하는 신문 방송 광고 등을 확대하고 TV 토론 및 연설회를 개선하는 대신 정당 연설회와 후보자 거리연설 금지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돈을 묶고 입은 풀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선관위의 개선안은 미디어 선거기회를 국회 교섭단체에게 유리하게 한정하고, 기탁금을 인상해 논란이 일고 있다. 경실련과 민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기탁금 인상 등 선관위 일부 개선안의 수정을 요구하고, 민주노동당은 선관위 개선안이 “소수정당에게는 족쇄”라며 반발하고 있다. 또한 서울YMCA 및 언론단체들은 TV토론 운영과 참가범위에 대한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선거비용의 국가부담 확대는 찬성하면서도 부담스러운 기탁금 인상과 유권자 직접 접촉을 제한한 안에 대해선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언론들은 전반적으로 환영하면서도 일부 문제점을 따지기도 했다. 그런데 언론의 문제의식은 주로 정치권의 반응을 전하는 데 무게중심이 있었다. 선관위 개선안이 발표되자 9월 9일과 10일에 대부분 언론들은 ‘선거공영제의 국회 입법’을 촉구했다. 한편으론 기존 정당이 제기한 문제들을 중점 보도한 반면 시민사회단체나 민주노동당의 의견은 축소 보도했다.

사설의 경우 9월 9일자에서는 선관위가 개정 선거법에 따라 올 연말 동창회 및 향우회 금지 입장을 밝히자 『조선』은 ‘포고 동창회와 향우회를 금한다’, 『동아』는 ‘동창회와 향우회 무조건 막을 수 있나’,『경향』은 ‘대선 동창회 금지 신중히’ 제하 사설을 실었다.

반면 정작 선관위의 선거공영제안 중 민주노동당과 시민사회단체가 제기한 돈 선거로 인한 참정권 제한 문제에 대해선 9월 10일자에서 『한겨레』의 ‘선관위 개정의견의 좋은 점, 문제점’과 『경향』의 ‘돈으로 정치신인 막으려나’ 사설에서만 언급했을 뿐이다.

그나마 이런 보도나 논평 또한 10일 이후에는 사라져 버렸다. 『미디어오늘』은 기획보도(10월 3일자, 미디어정치시대 시리즈)에서 “언론계가 미디어선거를 통한 선거공영제에 대체로 찬성하고 있으나, 정치개혁입법을 달가워하지 않은 정치권의 반응을 지켜보자는 입장”이라고 그 분위기를 전했다. 미디어선거로 언론이 이해득실에서 손해볼 것 없으나 정치권의 눈치를 지나치게 살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철새 정치인들의 이합집산과 정쟁에 날이 새는 국회에서 정치개혁 입법 논의는 한 발짝도 진전이 없다. 정치개혁특위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있으며, 언론도 이 문제를 덮어두고 후보자간 공방과 정치권 정쟁만을 중계하고 있다. 『한겨레』가 9월 16일자에 1면과 3면에서 지지부진한 정치개혁입법 과정을 짚었을 정도이다. 중앙선관위는 18일 정치권의 압력에 밀려 동창회 금지 조항 등의 완화 입장을 밝히자 19일과 20일 『문화』와 『국민』 등 소수 언론만이 ‘법개정을 촉구’하는 사설을 실었다. 그리고 국회 회기 내내 지금껏 후속보도는 나오지 않고 있다.

정치권과 언론만의 잔치로 전락

무릇 선거는 한 사회 내의 다양한 쟁점과 의제들이 표면화되고 논의되는 과정이다. 이런 선거과정에서 언론은 사회적 쟁점과 의제들에 대한 공론의 장으로서, 그리고 후보자들의 정책과 자질 검증을 통해 유권자에게 올바른 판단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언론은 정책대결이 독자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는 자의적인 판단으로 흥미 위주의 경마식 보도에 치중하고 있다. 더 나아가 킹메이커를 자임하여 보도를 이용해 선거에 개입한다. 그러다 보니 선거과정에 정책 쟁점은 없고 경쟁 정당과 후보를 겨냥한 의혹들만 확산된다. 한때 반부패 제도화, 청와대 지방 이전(민주당)이나 부유세 신설(민주노동당), 초당적 경제위기 협의기구 등 민감한 정책쟁점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를 다룬 보도의 비중은 폭로 보도에 비하면 극히 왜소하다. 그밖에도 시민사회 각 분야에서 선거국면을 맞아 여러 현안들과 정책 쟁점들을 제안하고 있지만 언론은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9월 24일 참여연대 등 3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2002 대선 유권자연대’가 발족하여 반부패 입법 완료, 정책중심 선거운동, 선거자금 투명화 등을 내걸고 후보자 서약운동 전개 및 10대 개혁의제 선정하겠다고 했다. 언론들은 이 역시 단체 발족 소식만을 전한 채 그 활동과 내용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한편에선 지난 총선 당시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에 대해 법원의 손해배상 패소 판결이 나오자 대선연대 활동에 예의 딴죽을 걸기도 했다. 『동아』는 9월 27일 ‘대선연대도 법절차 존중해야’ 사설에서 “총선연대의 맥을 잇는 대선연대의 활동에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면서 “정책검증을 하면서 특정 후보에 대한 호불호가 드러날 가능성이 있고, 시민운동가 중 특정 정당이나 정파에 치우친 듯한 행동을 해온 사람이 적지 않아 운동의 성격을 정치적으로 변모시킬지 모른다”고 쓰고 있다.

시민불복종 운동으로서 낙선운동의 당위나 선거법의 문제를 따져보는 언론은 거의 없었다. 언론 스스로 많은 관심을 보였던 시민단체의 활동에 대한 법원의 판결에 대해 시민단체의 ‘반응’마저 외면하는 것은 공정한 언론이라고 할 수 없다.

결국 올해도 선거법 개정과 정치개혁은 정치권의 립서비스에 그친 채 이대로 선거를 치러야 할 판이다. 그런 가운데 또다시 올 대선도 유권자의 잔치가 아닌 정치권과 언론의 잔치로 전락해 가고 있다.

언론이 정치권의 이합집산과 정쟁만을 뒤쫓는 가운데 10월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 연장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아우성이 스산한 가을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권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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