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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년 01월
  • 200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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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일까? 교과서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경제학은 인간의 무한한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정의의 메시지는 세 가지다. 첫째, 인간의 물질적 욕구는 무한하다. 둘째, 자원은 유한하다. 셋째, ‘유한한 자원’을 가지고 ‘무한한 욕구를 충족’하려면 ‘선택’을 해야 한다.

쉽게 말해서 가진 돈이 1만 원뿐인데(유한한 자원) 하고 싶은 건 너무 많다(무한한 욕구). 그 돈으로 무얼 할 것인가? 예컨대 책을 사거나,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거나, 지하도의 노숙자에게 적선을 할 수 있다. 이때 경제학자는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관찰하고 그 선택을 지배하는 일반적 원리를 밝힌다. 경제학이 ‘선택에 관한 학문’이라는 건 이런 뜻이다.

그런데 인간은 도대체 왜 욕구를 채우려고 할까? 경제학의 대답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인간은 현명한 선택을 통해서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경제학은 그렇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이건 착각이다. 인간은 자원의 양을 아무리 늘려도, 그 자원으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조금도 더 행복해질 수 없다.

경제학자들이 좋아하는 ‘수학적 표현’을 끌어다 정리해 보자. 행복과 자원과 욕구 사이의 양적 관련성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면 다음 방정식이 나온다.

행복의 수준=a(충족된 욕구의 양/충족하고자 하는 욕구의 양, a는 양의 상수)

유한한 자원과 무한한 욕구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어 더 많은 욕구를 충족함으로써 더 행복해지려고 한다. 하지만 이건 정력과 시간의 낭비에 불과하다. 자원의 양은 유한하다. 따라서 우변 분모인 ‘충족된 욕구의 양’도 유한하다. 그러나 분모는 무한히 크다. 유한한 크기를 무한한 크기로 나누면? 답은 0이다. 이건 ‘수학적 진리’다. 인간이 지배하고 처분하고 소비하는 ‘자원의 양’이 아무리 많아도 마찬가지다. 어떤 경제학자가 아무리 절묘한 ‘선택’의 이론을 제시한다 할지라도 이 수학적 진리를 폐기하지는 못한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서 경제학은 종교를 능가할 수 없다. 제대로 된 종교는 욕구를 제한하라고 가르친다. 행복 방정식 우변의 분모를 무한대에서 어떤 유한한 크기로 제한하라는 것이다. 우변 분모에 무한 대신 유한한 크기가 들어서면 자원의 양이 아무리 적어도 0보다 높은 행복의 수준을 누리게 된다. 욕심을 줄이면, 재산의 일부를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고서도 그 모든 것을 오로지 자기의 ‘무한한 욕망’을 채우는 데 쓸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적 진리인 동시에 수학적 진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학적 방법을 애호하는 경제학자들은 이 수학적 종교적 진리를 외면한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은 성직자와 철학자에게 밀어버리고 자기네는 계속 ‘유한한 자원’으로 ‘무한한 욕구’를 최대한 충족하기 위한 ‘합리적 선택’을 찾는 일에 몰두한다. 욕구의 양을 제한함으로써 행복의 수준을 높이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은 과학의 임무가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굳센 ‘과학적 신념’이다.

경제학자들은 이 ‘과학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철학자나 성직자와는 사뭇 다른 인간관을 세웠다. 다름 아닌 합리적 ‘경제인(經濟人, homo economicus)’이다.

“경제학에서 설정하는 전형적인 인간형인 ‘경제인’의 특징은 바로 ‘합리성’(合理性, rationality)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합리성은 경제학에서 추구하는 올바른 선택의 전제조건이다.”

합리적 경제인이란 어떤 인간일까?

그러면 합리적인 경제인이란 도대체 어떤 인간을 말하는 것일까?

첫째, 오로지 자기의 행복만을 생각하는 철저히 이기적인 인간이다. 공리주의(utilitarianism, 功利主義) 철학의 원조 제레미 벤담(J. Bentham)이 발견한 ‘합리적 인간’은 쾌락(행복, 즐거움, 만족 또는 효용)을 추구하고 고통(불행, 괴로움, 고생 또는 비효용)을 회피한다. 무엇이 쾌락이고 무엇이 고통인지는 ‘합리적 인간’ 그 자신만 안다. 국가권력을 비롯한 그 어떤 외적 존재도 그를 대신해서 판단할 수 없다.

둘째, ‘합리적 인간’은 효율성을 추구한다. 여기서 효율성이란 최소의 비용(또는 투입)으로 최대의 성과(산출)를 얻는 것을 의미한다.

합리성은 윤리도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편리한 수학적 기법을 좋아하는 현대의 경제학자들은 이와 같은 공리주의 철학을 ‘효용함수(效用函數, utility function)’라는 것에 담아놓았다. 가장 단순하게는 U=f(C)로 표기하는 효용함수는 행복의 수준과 재화 소비량 사이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쓰는 효용함수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내가 재화를 소비해서 얻는 행복은 오직 나의 재화 소비량에 달려 있다. 나의 재화 소비량이 증가하면 나의 행복이 증가하고 소비량이 감소하면 행복도 감소한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얼마만큼 소비하느냐는 나의 행복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나의 소비량 또한 다른 사람의 행복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현실의 인간은 시기심과 동정심, 상대적 우월감을 가진 존재다. 그는 부자를 보면서 박탈감을 느끼기도 하고 더 비참한 이웃을 보면서 상대적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합리적 경제인은 혼자서 자기의 행복을 키우는 데만 관심이 있는 철두철미 이기적이고 고립된 존재다. 경제학자들이 합리적 경제인을 현실의 인간과 다르게 만든 것은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론을 구원하기 위해서다.

첫째, 개인의 행복이 자기의 재화 소비량만이 아니라 이웃의 재화 소비량에도 영향을 받는다고 하면 너무나 복잡해서 분석을 위한 수학적인 모형(model)을 만들 수가 없다. 경제학의 모형을 만드는 데는 고려해야 할 변수가 모두 합쳐 세 가지를 넘으면 곤란하다. 변수가 둘이면 평면으로 보여줄 수 있고 셋이면 입체로 그릴 수 있지만, 그보다 많으면 인간의 직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다차원적 공간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학 세계의 인간은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둘째, 학문은 보편적인 존재를 연구대상으로 삼는다. 현실에는 이타적 심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있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이수현 씨의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자기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합리적 경제인’의 관점에서 보면 불합리하기 짝이 없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사람을 ‘평균적인 인간’이 아닌 ‘예외적인 사람’, 달리 말해 ‘이타적 효용함수’를 가진 사람으로 규정한다. 현해탄 양편에서 수많은 ‘평균적 인간’들이 그의 죽음을 두고 눈시울을 붉힌 것은 그가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보통 사람이라면 할 수도 없고 또 하지도 않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경제학은 유감스럽게도 이 예외적으로 ‘아름다운 청년’을 연구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경제학 세계의 인간은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이것은 증명하지 않고 참으로 인정하는 명제, 즉 공리(公理, axiom)다. 경제학 이론은 이 공리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경제학을 이해하려면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 인간’을 인정하고, 그가 내리는 모든 자발적인 경제적 선택을 ‘합리적’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기독교도들이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경제학도는 이 공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신성한 경제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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