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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년 08월
  • 2002.08.10
  • 869
‘환율 1200원선 붕괴!’ 7월 둘째주 신문들은 이런 제목들을 뽑았다. ‘붕괴’라고 써놓으니 무슨 큰 난리라도 난 것 같다. 하지만 알고 보면 별일 아니다. 한국 돈의 값이 달러에 비해 좀 올랐다는 이야기다. 이건 그 자체로 보면 나쁜 사건이라고 할 수 없다.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도 물론 아니다. 그저 시장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외환위기에 한번 크게 데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겁을 내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1997년에는 환율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라서 문제가 생겼다. 이번에는 야금야금 내려와서 1200원 아래로 내려갔으니 그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2000년 말에도 그 정도로 내려간 적이 있지만 아무 일 없었다.

달러 환율은 우리나라 화폐 단위로 표시한 미국 화폐 1달러의 가격이다. 환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원화에 비해 달러의 가치가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꾸로 말하면 우리 원화의 국제적 가치가 하락한 것이다. 그래서 달러 환율이 올라가는 걸 두고 ‘원화의 평가절하’라고도 한다. 환율이 내리는 것은 한국 돈의 값이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폐는 물건을 사고 팔 때 필요한 교환의 매개수단이다. 그런데 외환시장에서는 화폐 그 자체를 사고 판다. 교환의 매개물인 화폐 그 자체도 교환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화폐가 거래되는 것은 그것이 교환의 수단으로서 효용을 가지기 때문이다. 거래되는 모든 것은 값이 변한다. 화폐도 흔하면 값이 떨어진다.

환율변동의 세 가지 요인

환율 변화를 야기하는 요인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각국의 물가수준이다. 물가가 많이 오르는 나라의 화폐는 가치가 떨어지게 되어 있다. 안에서 새는 쪽박은 나가서도 새게 마련이다. 나라 안에서 가치가 줄어들면 당연히 밖에서도 가치가 떨어진다. 환율이 오르는 것이다.

2차대전이 끝난 이후 50여년 동안 물가인상률이 높은 나라의 화폐는 그만큼의 가치 하락을 경험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80년대 말까지 언제나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을 기록했기 때문에 물가인상률이 낮았던 나라 화폐인 달러, 엔, 마르크 등의 환율이 계속적으로 상승해 왔다.

90년대 후반 이후 한국의 물가인상률이 10% 미만으로 떨어졌지만 미국과 서유럽, 일본보다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원화의 가치하락 또는 달러, 유로(euro), 엔화 등의 환율 인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물가수준의 변화는 장기적인 환율 변동을 설명하는 요소에 불과하다. 이것으로는 몇 달 또는 며칠 사이에 환율이 크게 변화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둘째 요인은 경상수지다. 경상수지는 상품수지와 서비스수지, 소득수지와 이전수지를 합친 것이다. 우리 기업이 외국에 수출하는 상품의 총액과 외국에서 수입한 상품의 총액을 비교하는 것이 상품수지다. 상품 수출이 수입보다 많으면 상품수지는 흑자, 적으면 적자라고 한다. 우리나라 상품수지는 거의 언제나 적자였다. 항공기와 배 등의 운송서비스와 관광서비스 등 무형의 서비스 수출과 수입을 비교하는 것이 서비스수지다. 서비스 수출입의 본보기는 외국 여행이다. 우리 국민이 파리 베르사유 궁전이나 알프스 만년설을 구경할 때 내는 입장료와 철도운임, 호텔 숙박비 따위는 모두 국내로 가지고 돌아오지 않고 현지에서 소비하지만 그 성격상 엄연한 서비스의 수입이다. 반면 일본인 관광객이 서울과 제주도에 와서 쓰는 관광경비는 모두 우리의 서비스 수출이다.

소득수지는 우리나라가 외국에 투자해서 얻는 이익과 이자, 해외 취업 근로자의 보수 등으로 얻는 소득과 같은 항목으로 우리나라가 지불하는 돈을 비교하는 항목이다. 이전수지는 우리나라가 국제기구나 외국에서 얻는 원조와 우리가 외국이나 국제기구에 주는 돈을 비교하는 항목이다. 이 네 항목을 모두 합쳐서 우리가 벌어들인 돈이 지출한 돈보다 많으면 흑자, 그 반대의 경우는 적자가 된다.

경상수지 적자는 벌어들인 외화보다 지출한 외화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보는 나라는 반드시 외화 부족 사태를 겪게 되어 있다. 달러의 수요는 많고 공급은 부족하다. 달러 값은 오르게 되어 있다. 반면 지속적으로 경상수지 흑자를 보면 그 나라의 화폐가치는 올라간다. 외환위기 이후 여러 해 계속해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한 한국 화폐의 가치가 올라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경상수지 흑자와 적자가 반드시 환율 인하와 인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상품이나 서비스 거래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자본의 수출과 수입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환율 변동의 세번째 요인이다. 우리 정부나 은행이 외국에서 차관을 들여오거나 외국기업이 한국에 투자하는 경우는 달러가 들어온다. 이것이 자본 수입이다. 우리 정부와 은행이 외국에 돈을 꾸어주거나 우리 기업이 해외에 투자를 하면 달러가 나간다. 이것은 자본 수출이다. 거래 기간이 1년 이상이면 장기자본 거래, 1년 미만이면 단기자본 거래라고 하는데, 이러한 자본의 수출입을 비교하는 것이 자본수지다.

경상수지와 자본수지를 합쳐서 ‘종합수지’라고 한다. 종합수지가 균형을 이루는 경우 경상수지 적자를 보는 나라는 반드시 자본수지 흑자를 보고, 경상수지 흑자를 내는 나라는 반드시 자본수지 적자를 낸다. 쉽게 말해서 수출로 벌어들인 것보다 많은 외화를 수입하는 데 지출한 나라는 반드시 외국에서 빚을 얻어와야만 국가부도를 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만약 자본수지 흑자가 경상수지 적자보다 적을 경우, 종합수지는 적자가 된다. 이것은 곧 그 나라 중앙은행과 금융기관의 외환보유고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현상이 장기간 지속되면 외환보유고는 언젠가 바닥이 난다. 그 결과는 이른바 ‘모라토리움’, 즉 국가적 대외 지불불능 사태가 발생한다. 국가부도가 나면 현금 결제를 제외한 모든 국제적 상거래가 중단되며, 에너지와 원자재 등을 수입하지 못해서 그 국민경제는 말 그대로 총체적 파산을 맞이하는 것이다.

환율의 변화 그 자체는 우환거리가 아니다. 짧은 시간 내에 큰 폭으로 요동치지만 않으면 된다. 그리고 최근의 달러환율 하락은 원화 강세라기보다는 달러 약세의 결과로 봐야 한다. 미국 경제가 천문학적 규모의 회계부정으로 위기를 맞이하면서 월가와 달러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탓이다. 원화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주요한 화폐가 달러에 비해 값이 오르는 현상을 두고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미국 여행과 미제 물건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오히려 희소식이 될 것이다.

유시민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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