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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년 09월
  • 2002.09.24
  • 1124
1992년 11월로 기억된다. 유엔에서 인권위원회 자원인력으로 일하던 인권 변호사 네팔리 씨가 스위스 제네바의 세계교회협의회(WCC)에 있는 내 사무실을 찾았다. 그가 책임지고 있는 네팔 카트만두 법률구조사무실의 인권프로젝트를 WCC가 돕고 있어서 안면이 있는 터였다. 그는 “간다키 수력발전소 건설공사로 많은 촌락이 수몰되고 수많은 농민들이 오랫동안 살아온 고향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네팔의 인권 관련 NGO들은 이 사업을 결사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장래 내 나라의 발전을 생각하면 나는 이 사업을 찬성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개발과 인권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 수력발전소 건설은 아시아개발은행(ADB), 일본은행의 차관 5억 달러와 네팔의 인력이 동원된 거대한 공사였다. 이 발전소는 지난해 1월부터 가동돼 네팔 전력 수요의 절반을 공급하고 있다. 네팔에서 벌어지고 있는 또 하나의 거대한 공사는 시다키 지역의 식수 개발 사업이다. 아시아개발은행에서 4억6000만 달러의 차관을 들여와 네팔 국민 1200만 명에게 식수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지금도 진행중인 이 공사는 전통적인 촌락들의 몰락을 가져왔다.

네팔은 히말라야 산록에 위치한 인구 2400만의 왕국이다. 남한 면적의 1.5배 크기로 북으로는 중국, 남으로는 인도의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으며 인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힌두교 국가이다. 아시아의 스위스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땅이지만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 스위스는 세계에서도 부자 나라지만 네팔은 1인당 국민소득이 200달러를 겨우 넘는 가난한 나라다. 네팔의 가난은 왕권과 정권의 부패, 자연재해, 끊이지 않는 정쟁이 그 원인이다.

540만 농노, 토지개혁으로 농지소유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이 나라는 여러 산족(山族)들의 혼합체로서 1846년부터 1951년까지 100년 이상을 란다(Randa)라고 불리는 귀족집안이 다스렸다. 1940년 의회당의 혁명으로 왕정이 잠시 주춤했으나 1959년 왕권이 복귀되면서 다당제가 폐지되었다. 하지만 80년 국민선거에서 왕가의 권리가 축소되었고, 1990년 의회당과 공산당이 정적 관계를 넘어 부패한 절대왕권에 압력을 가하는, 500여 명이 희생된 49일간의 대치과정을 겪으면서 왕은 다당제를 허용하게 되었다. 헌법이 개정되어 근대적 의미의 다당제가 도입되고 의회가 탄생하게 되나 왕의 절대군림은 여전했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는 왕권과 함께 의회당의 집권이 계속되었지만 1994년 11월부터 1년여간은 공산당이 집권하기도 하였다. 그 뒤부터 지금까지 의회당이 근소한 차이로 다수당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난해 6월 1일 네팔의 역사를 부분적으로 바꾸어 놓은 비극이 일어났다. 왕이었던 비렌드라와 왕비, 직계가족 7명이 큰아들인 디펜드라에 의해 사살되고, 부모를 죽인 왕세자는 4일 뒤 자살로 추정되는 총상으로 사망했다. 같은 날 숙부인 현 국왕 갸넨드라가 왕위에 오르나 성난 국민들은 새 왕이 마약과 술에 취하여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믿으며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전 국왕의 퇴위는 정부 수반인 총리를 바꾸었고 신임총리인 데우바는 일대 개혁을 단행하게 된다.

의회당 내의 야당이면서 공산당의 지지로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된 데우바는 우선 수백년 동안 미뤄져 왔던 토지개혁을 단행하였다. 카스트제도에 묶여 일생을 노예로 보내는 달리트 계급 540만 농노들이 이로 인해 자기 땅을 갖게 되었다. 신임총리는 이어서 카스트제도를 타파하고 모든 사람은 신분에 의한 차별을 받을 수 없다고 선포했다. 또 정부는 농노들도 힌두 사원에 자유롭게 출입하여 예불을 드릴 수 있다고 선포해 큰 환영을 받고 있다. 나아가 여성의 재산 상속권을 남성과 동등하게 인정하였고 다우리제도(결혼 지참금제도)도 철폐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 과정, 특히 신 정부와 연합공산당의 타협과정에서 2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으니(희생자의 2/3 이상이 마오주의자였다) 자유는 피의 대가로 얻어진다는 진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자신들에게 채워진 족쇄를 풀기 위해 싸우다 죽임을 당했고 그 희생 위에 자유가 깃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도 역시 네루 수상이 이미 50여 년 전에 달리트도 평등한 인간이라고 헌법에 명시했지만 아직도 카스트제도가 존재한다. 네팔의 자유도 진정으로 실현될 수 있겠는가는 의문이지만 현재로서는 희망적이라 할 수 있다.

마오주의자들의 반란

오늘날 네팔에 대한 국제적 관심은 국왕의 살해, 총리의 해임, 마오주의자(마오쩌뚱 지지 공산주의자)들의 반란 등 세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앞의 두 가지는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가 규명할 일이지만 마오주의자들의 반란은 2개의 강대국 중국과 인도와의 관계 속에서 분석해야 한다. 네팔의 북부는 중국과 24시간 왕래가 가능하고 인적, 물적 왕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중국은 네팔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5월 주룽지 총리가 네팔을 방문할 정도로 이 나라를 중시하고 있다. 지금도 현 정권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마오 정당은 국왕제 철폐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 역시 중국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네팔에 대한 인도의 영향도 절대적이다. 사회, 문화, 종교, 전통으로 볼 때 인도는 네팔에게 절대 강국이다. 데우바는 마오주의자들의 반란이 인도를 자유스럽게 왕래하며 무기와 자금을 공급받았기 때문이라고 인도 정부에 항의하기도 했다. 인도 정부는 작년 8월 외무부장관의 방문 후 역사상 처음으로 국경에 1만여 명의 특수부대를 상주시켜 마오주의자 색출에 협력하고 있다. 하지만 현 집권세력과 마오주의자 사이의 타협은 국왕제를 제외하고는 매끄럽게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 정부는 300명의 마오주의자들을 감옥에서 석방하고, 마오주의자들은 인질로 잡고 있던 경찰관 71명과 117명의 민간인들을 석방하였다.

히말라야의 작은 왕국 네팔이 가야 할 길은 아직 험난해 보인다. 국민 대다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가난과 기아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지난달 7월 최근 200년 이래 최악의 홍수로 300명 이상이 숨지고 115명이 다쳤으며 5만20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와 함께 10만 명이 넘는, 이웃나라 부탄의 난민 문제도 큰 골칫덩어리이다. 유엔의 중재로 난민들의 본국 소환이 합의됐지만 난민들의 요구조건이 충족되지 않고 있어 아직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또 남부 타라이 산맥에 흩어져 살고 있는 3만5000여 명의 인도태생 네팔인들의 자국 영입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이들은 전 정부가 승인했음에도 현 정부의 반대로 왕의 승인 절차가 미뤄지고 있어 국적 없는 난민의 신분으로 생존권까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가는 곳마다 국교인 힌두교의 성전이 있는 나라. 이 성전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줄지어 예불을 드리지만 민족의 앞길은 그리 평탄치 않아 보인다. 아시아에서 태국과 함께 한 번도 식민지 경험이 없는 이 나라, 여성의 78%와 남성의 43%가 문맹이고 인구의 93%가 농업에 종사하는 이 나라, 우리나라에 많은 노동자들을 송출하고 있는 이 나라에 국민을 위한 진정한 정치가 펼쳐지길 기원한다.

박경서 인권대사 pks@humanright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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