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11월 2002-10-30   1480

피플 세상속으로 -매니저 김성순과 배우 쥴리 ‘배우를 하려거든 시민운동부터’

연예계 비리 사건이 끊이지 않으면서 시청자들은 우롱 당한 기분이었다. 채널을 돌려도 볼 것이 없다. 뉴스를 제외하면 어떤 프로에도 연예인이 나오지 않는 경우는 없다. 시청자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주는 배우나 가수들에게 감탄을 금치 못하다가도 ‘혹시 저들도 돈으로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드는 순간 마음이 불편해진다.

원업 엔터테인먼트 김성순 이사(33세)는 최근 연예 비리 사건 때문에 경찰에 불려가 참고인 진술을 했다. 형사가 “왜 매니저들이 돈을 쓰는 거냐”고 묻자 김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기획사의 기획력이 떨어지니까. 쉽게 말해 머리가 나쁘니까 대신 돈으로 미는 것이다. 자기 배우나 가수의 특성을 잘 파악해서 필요한 곳에 알리는 것이 기획이다. 적재적소에 알리면 세상은 평가를 한다. 그걸 해내지 못하고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똑똑한 아줌마들과 만나다

김성순 이사와 쥴리(22세·본명 이현주)는 석 달 전 기획사에서 만났다. 김성순 이사는 쥴리의 매니저다. 쥴리는 하리수와 함께 찍은 화장품 광고를 비롯 여러 광고, 그룹 샤크라, KMTV 카운트다운팝스 43 VJ 활동 등으로 얼굴이 알려져 있다. 최근엔 MBC 라디오 ‘송백경의 더블임팩트’에 고정적으로 출연해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배우가 되기 위해 훈련 중인 쥴리가 김 이사를 처음 만나 한 일은 환경단체에 가입하고 일주일에 한 번 씩 행사에 참가하는 일이었다. 자초지종을 김 이사의 입으로 들어보았다.

“여러 배우들에게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물어봤다. 그러다가 환경정의시민연대 사람들을 만났는데 안내책자를 하나 주었다. 기획사에 소속돼 있는 배우들에게 환경문제에 관심 있는지 물었다. 처음에 쥴리는 아이들을 좋아해서 고아원 같은 곳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환경정의시민연대는 어린이 먹거리에 관해서도 고민하는 곳이라 폭넓게 보면 어린이들을 위한 일이라고 판단됐다. 쥴리는 학교 가고 촬영하는 일 말고는 다른 일이 없다. 배우는 경험의 폭이 넓을수록 좋다. 그래서 여기 가서 건강한 사람들과 생활을 해보라고 했다.”

쥴리의 표현에 따르면 ‘똑똑한 아줌마들’을 만나 많이 배우라는 게 김 이사가 환경단체 가입을 권유한 이유다. 쥴리는 그의 팬페이지(http://cafe.daum.net/modelleehyunju)에 “안전한 먹거리에 대해서 공부하기 위해 환경강사교육도 받고 있다. 팬 여러분들도 패스트푸드를 될 수 있으면 먹지 말라. 몸에 너무 해롭다. 그런데 나는 하루 세 끼 패스트푸드로…”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쥴리는 12월 이 ‘교육’이 끝나면 또 다른 체험을 하게 된다.

김성순 씨는 연예인을 무조건 빠른 시간 안에 ‘뜨게’ 만드는 매니저의 역할을 거부한다. 그는 “쥴리가 배우는 물론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좋은 경험을 많이 하길 바란다. 그런 활동은 스타가 되기 전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색다른 매니저에 대해 쥴리도 만족을 표시했다.

“무엇을 해야 배울 수 있을지를 생각하라는 말을 매니저가 자주 한다. 다른 매니저에게는 생각도 못할 일이다. 친구들도 왜 네가 환경공부를 해야 하냐고 묻지만, 나는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연예인 매니저로 나서기 전 김성순 씨가 해온 일도 눈길을 끈다. 힙합가수 디지가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안티조선 게릴라 콘서트를 열도록 주선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활동하다 솔로로 데뷔한 가수 명인 씨와는 덕성여대에서 사학 비리 척결을 위한 대규모 음악회를 열었다. 그는 무엇보다 『조선일보』와 인연(?)이 깊다.

“이것 저것 일을 하다 쉬는 동안 후배들과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런데 5개의 사이트가 공통적으로 내세운 것이 ‘안티조선’이었다. 귀국한 진중권 씨가 그걸 보고 재밌다며 모여서 뭔가 해보자고 제안했고 여러 가지 행사를 벌였다. 지금은 『조선일보』에 대한 문제의식이 폭넓게 확산되어 있지만 그 때는 달랐다. 언론의 조명을 받기 위해 하는 행동이 아니냐는 오해도 받았다. “

쥴리에게 만일 『조선일보』에서 인터뷰 제의가 들어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묻자 김씨는 먼저 당사자의 의견을 물어보겠다고 했다. 이어 “판단은 쥴리가 하겠지만 생계를 위한 것이라면 면죄부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는 교수와 다르다. 배우는 그가 가진 콘텐츠를 유통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당사자인 쥴리는 대답을 미뤘다. 신문방송학과 학생이지만 아직 『조선일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배우들도 건강한 사회를 고민해야

김씨는 연예인의 사회적 역할과 책무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최근에 배우들의 정치적 활동을 놓고 아는 형과 대화를 했다. 그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노력을 배우가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편향성을 갖게 되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직업이라는 고민이 있다. NGO 활동은 문제가 없지만 대통령 선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요즘 배우들이 어떤 후보를 민다느니 하는 말이 있는데 그들이 느낄 부담감을 짐작할 수 있다.”

김씨는 쥴리에게 스타의 꿈을 심어주지 않았다. 배우이면서, 인간으로서도 뒤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하자는 것이 둘의 약속이다. 같은 시대, 같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제 역할을 하려는 두 사람의 모습이 색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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