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2월 2002-02-01   1641

중국의 몰락

13억의 운명, 그리고 인류의 미래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국내 언론은 일제히 “중국의 시대”가 왔다고 떠들었다. 중국의 시대에 한국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하는 물음도 던졌다. 중국에 대한 책들도 쏟아졌다. 그런데 그 중의 한 책은 이렇게 주장한다. ‘중국은 망한다.’ 제목이 바로『중국의 몰락』(고든 G. 창, 형선호 옮김, 뜨인돌, 2001)이다. 손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고든 창이라는 중국계 미국인.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을 상대하는, 미국의 그 많고 많은 변호사들 중 한 명이다. 이것만으로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글로벌 시대의 과잉 적응자들. 아니나다를까, 저자의 관점은 그가 속한 동아리가 이 시대에 당연히 취할 법한 전형적 입장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바로 신자유주의가 그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중국 몰락의 근거와 논리적 사슬은 비교적 간단하다. 1988년 천안문 항쟁으로 인해 중국 공산당 일당독재의 정당성은 땅에 떨어졌다. 이 때, 덩샤오핑(鄧小平)이 비장의 카드로 내놓은 것이 소위 “남순 강화”였다. 공산당 일당독재가 유지되는 한, 시장경제를 거의 전면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공산당이 보장한다. 인민은 부자가 돼라!

그런데, 이렇게 정치적 의도로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가운데, 공산당은 자기 모순에 빠졌다. 시장 경제를 전폭 수용하면서도 과거의 지령경제, 거대한 공공부문을 계속 유지하려 했던 것이다. 특히 문제는 중국식 국영기업들이었다.

중국식 국영기업들은 말이 기업이지, 사실은 거대한 지역 공동체다. 사회주의 국가라고는 하지만, 이제까지 사회주의 중국에서 사회보장 임무를 직접 맡아온 것은 국가가 아니라 국영기업들이었다. 예를 들어, “중국국영석유공사(CNPC)의 고용인은 150만이다! 석유회사라는 이름과 달리 이 회사는 치약 공장이나 화장지 공장까지 자회사로 운영한다. 그리고 현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퇴직자 가족이 회사의 연금, 주택, 병원에 기대어 살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몰락

이런 국영기업은 사회주의 체제가 유지되는 한은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이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순간부터 문제가 생긴다. 시장경제 아래서 이 모든 국영기업들은 엄청난 부실 덩어리일 뿐이다. 수익을 내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구조조정”대상이다.

하지만, 구조조정은 실업대란을 의미한다. 수만, 수십만 단위가 아니다. 수천만, 수억 단위의 실업자다. 실업자들의 사회안전망을 국가가 어느 정도 책임진다면 문제는 조금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중국에서 사회안전망은 다름 아닌 구조조정 대상 국영기업들이다! 거리에 내몰린 사람들은 그야말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할 뿐이다. 천안문과 같은 대중 저항이 몇 배나 광폭하게 몰아닥칠 것이다. 애당초 경제개혁 자체가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저자는 공산당이 앞장서서 자신의 위기를 초래할 국영기업 개혁에 착수하지는 않으리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이런 봉합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여기에서 저자는 중국 공산당이 WTO 가입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확실히 하고, 그것을 앞당겼다고 단언한다. WTO에 가입해 경제를 전면 개방하기 전까지는 지령경제와 공공부문이 버텨나갈 출구가 그나마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봉쇄됐다. 왜 그러한가?

“사회주의 시장경제” 아래서 국영기업들의 모순은 은행으로 고스란히 떠넘겨진다. 이제까지 중국의 은행은 당연히 국영은행들이었다. 국영은행들은 당의 압력 때문에 기업에 끊임없이 돈을 빌려주었다. 하지만, 기업은 이것을 갚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의 정부 보조금이 은행을 통해 제공되는 것일뿐이라고 생각한다. 시장경제의 관점에서 이는 악성채무의 천문학적 누적으로 나타난다. 저자는 중국 은행들의 악성채무가 70%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한다.

중국이 7200억 달러라는 높은 저축고를 자랑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바로 이 대목에서 저자는 “WTO 변수” 라는 카드를 내민다. 이제 은행업도 외국 금융자본에 개방됐다. 국영은행의 부실이 드러나고 외국계 은행들이 영업을 본격 개시하면, 중국인들은 국영은행으로부터 예금을 빼내 외국계 은행들로 달려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영은행의 부실은 급격하게 가중될 것이고, 결국 금융위기가 닥칠 것이다. ‘몰락’이 시작된다.

저자가 제시하는 시나리오 중에는, 공산당이 체제위기를 전쟁으로 해결하기 위해 대만과의 전쟁을 일으켜 패전하며 그로 인해 일당독재가 무너지리라는 다소 공상적인 것도 있다. 하지만, 경제체제의 위기 속에서 가장 커다란 피해를 입고 공산당의 부패와 무능에 분노할 대로 분노한 실업자들과 농민들이 소위 “신좌파”나 공산당 내의 마오주의자들과 결합해 1989년 동유럽 인민혁명 같은 봉기를 일으키리라는 관측은 설득력이 있다. 그야말로 ‘중국의 몰락’이다. 아니, 저자의 시각에 충실하다면 ‘중국 공산당의 몰락’이다.

동아시아 민중의 부활을 꿈꾸며

이 책의 약점은 쉽게 드러난다. 저자는 자신이 비판하는 중국 공산당의 궁지는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저들은 확실히 ‘몰락’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 자신의 궁지에 대해서는 솔직하지 못하다. 신자유주의자인 고든 창은 국영 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이들 기업을 사유화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은행들을 살리기 위해 국영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그러면, 저자 자신이 그 위험성을 뚜렷이 느끼고 있는 실업대란 문제는 어떻게 되나? 공산당만큼이나 신자유주의자에게도 막다른 골목에서 하늘로 날아오를 묘책은 없다.

아마도 내심의 해결책은 시장경제가 “잘” 돌아갈 때까지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 아닐까? 세계사의 경험을 볼 때, 그렇게 “참고 견디는” 기간에는 어김없이 공산당 일당독재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쇠몽둥이가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민주주의의 적” 공산당에게 이를 가는 저자는 과연 “공산당이 아닌 독재”에 대해서는 뭐라 할 것인가?

일당독재 대신 서구형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고민하는 순간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입장에 더해, 우리는 전지구적 시장경제 대신 다른 대안을 고민할 때에만 새로운 길이 보일 수 있다는 진실에 눈감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 책 말미에 잠시 등장하는 중국 내의 “신좌파”야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입장이며 가능성일 것이다. 그들은 천안문 항쟁의 “민주주의”를 가슴 깊이 간직하면서도 남순 강화 이후의 “시장경제”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놓지 않았다. 저자가 전망한 것처럼 지금 노동자, 농민, 실업자들과 함께 낡은 중국의 몰락을 새로운 중국의 등장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세력은,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이들뿐이다. 이들 중의 일부는 마치 1980년대 이 땅의 “현장투신”을 연상시키듯 노동현장에 들어가 독립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장쩌민(江澤民)의 중국도 아니고, 고든 창의 중국도 아닌 그런 중국을 위한 꿈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소문이다(국내에서는 한더치앙의『13억의 충돌』(이재훈 옮김, 이후)이라는 책에서 이런 입장의 일단을 접할 수 있다).

그 소문을 되새길 때마다 필자는 그들과 함께 ‘중국 민중의 부활’을 이야기할 순간을 꿈꿔 본다. 누군가가 미국의 후광 속에서 ‘중국 공산당의 몰락’을 이야기하던 그 때를 떠올리면서, 그리고 당연하게도 ‘동아시아 민중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장석준 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 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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