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10월 2002-10-24   533

정부는 얄미운 시누이?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노사갈등이 흔히 노정갈등으로 비화되는 것을 보면 정부가 왜 얄미운 시누이노릇을 매번 자처하는지 씁쓸하다. 잘못된 분쟁해결제도 때문에 오히려 분쟁이 제도적으로 양산되고 악화되는 것을 보다보면 답답할 따름이다.

지난 9월 11일 새벽 경찰 2500여 명이 강남성모병원 경희의료원 등에 쳐들어가 파업중인 노동자 수백 명을 연행해 갔다고 한다.

병원 경영진과 노조간 다툼에 왜 국가가 나서서 노동자들을 잡아가는가? 노조가 100일 넘게 불법파업을 벌였기 때문이란다. 왜 불법인가? 노조 측이 직권중재에 따르지 않고 파업을 계속했기 때문이란다. 현정부 출범 이후 지난 4년 6개월 동안 이런 식으로 노동쟁의 등과 관련해 구속된 노동자는 785명에 달한다. 일주일에 3명꼴로 잡혀간 셈이다.

올 들어 7월 말까지 직권중재에 회부된 사업장은 모두 58개소라고 한다. 직권중재는 공익사업장의 노동쟁의를 보다 신속하게 종결짓기 위해 만든 일종의 분쟁해결제도다. 그러나 실제론 어떤가. 해결은커녕,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노동자들을 전과자로 만들고, 끝없는 노사분쟁-노정충돌을 야기하는 화약고 역할을 할 뿐이다.

현행 노동법상 필수공익사업장(철도, 수도·전기·가스·석유, 병원, 통신 등)에 분규가 발생하면 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직권으로 중재에 회부할 수 있다. 일단 중재에 회부되면 노동쟁의가 15일간 금지된다.

노사간 쟁점에 대해 중재위원회가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내리면 노사 양측은 이에 승복해야 한다. 위법·월권 등의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재심청구나 소송도 불가능하다. 재판도 3심까지 받을 수 있게 돼 있는데, 엄청난 권리 제약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강제적이고 구속력 있는 중재방식을 분쟁해결학에서는 ‘Mandatory Binding Arbitration’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분쟁해결방식 중에서 가장 강도가 높은 제도다. 따라서 그 쓰임새는 대단히 제한적이다. 특히 분쟁 당사자들의 자구권을 크게 제약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사자간 사전계약으로 이에 동의했을 때만 적용하게 돼 있다. 미국의 경우 일부 사용자들이 직원을 채용할 때 일종의 황견계약처럼 이를 고용조건의 하나로 포함시키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러나 연방 고용평등위원회(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는 지난 97년 이를 금지시키는 정책을 공표한 바 있다.

그래도 여전히 이러한 분쟁해결방식이 많이 쓰이는 분야는 스포츠계다. 심판판정 등으로 분쟁이 생겼을 경우 운동경기의 특성상 신속한 최종결정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당사자들의 사전동의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서명, 제출하는 참가신청서에는 경기 관련 분쟁이 있을 때 이런 방식으로 해결하는 데 동의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스포츠계에서도 이렇듯 최소한의 동의절차는 거치는데 한국의 직권중재는 노사 쌍방의 동의 없이 국가가 일방적으로 강제하고 있다는 점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런데다가 중재결정의 내용마저도 말리는 시누이처럼 공정하지 못하다면 노조 측의 반발을 살 것은 뻔한 이치 아닌가.

직권중재, 분쟁 양산하는 화약고

모든 갈등분쟁이 그렇듯이 노동쟁의도 노-사 양 당사자들이 주체적으로 해결해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또 효과적이다. 갈등분쟁은 당사자들에게 더없이 중요한 학습과정이기도 하다. 분쟁을 겪으면서,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면서 서로를 더 이해하고 합리적인 판단과 조정능력을 키워나간다. 특히 노사문제의 경우 해마다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따라서 한두 해의 임단협 성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사 양측의 문제해결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래야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노사관계의 안정과 협력을 기대할 수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역시 노동쟁의조정의 통칙(제5장 1절)으로 강조하는 것이 이러한 자주적 조정원칙이다.

“제47조. 이 장의 규정은 노동관계 당사자가 직접 노사협의 또는 단체교섭에 의하여 근로조건 기타 노동관계에 관한 사항을 정하거나 노동관계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를 조정하고 이에 필요한 노력을 하는 것을 방해하지 아니한다.”

이어지는 두 조항 역시 노동쟁의의 자주적 해결노력을 당사자들의 책무로 못박고(48조), 당사자간 자주적 조정을 돕는 것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로 규정하고 있다(49조).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오는 직권중재조항은 이러한 노사간 자주적 조정의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별도의 두 가지 법률도 아닌 한 법률 안에서 ‘이율배반’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직권중재나 긴급조정제도는 미국 노동법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노동쟁의 조정제도는 한국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 직권중재제도 같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정부가 노사분규에 개입하는 경우는 두 가지다. 첫째, 철도 및 항공업계에 분규가 발생해 국가 기간교통망에 중대한 장애가 초래될 위험이 있는 경우다. 이 경우 철도노동법(Railway Labor Act)에 따라 국가중재위원회(National Mediation Board)가 중재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때 중재(仲在)란 한국 노동법상의 중재(仲裁, Arbitration: 제3자나 공적 기구가 어떤 결정을 내려주는 것)가 아닌 ‘Mediation’(당사자들이 원만하게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분쟁해결 전문가가 중립적인 입장에서 돕는 일. 한국노동위원회나 학계에서는 이를 ‘조정’으로 등치시키기도 하나 사실 전혀 다르다)을 뜻한다. 국가중재위원회는 2000년에 65건, 2001년에 70건을 중재했다. 1934년 이 위원회가 만들어진 이후 그동안 해온 중재 중 97%가 파업 없이 당사자간 합의로 마감되었다.

중재에 실패할 경우 대통령긴급위원회가 구성돼 조사작업을 벌이고 권고안을 제시, 60일의 냉각기간 동안 당사자간 협의를 계속하도록 한다. 그래도 합의가 안 되면 이후 노사 양측은 파업이나 직장폐쇄 등 행동에 돌입할 수 있다.

정부가 노사문제에 개입하는 두번째 경우는 국민보건이나 안전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수 있는 쟁의가 발생했을 때다. 이 경우 노사관계법(Taft-Hartley Act)에 따라 대통령은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법무장관은 연방법원에 파업금지명령을 신청한다. 그러면 노사는 그 기간동안 연방중재조정기구(Federal Mediation and Conciliation Service)의 도움을 받아 협상을 계속한다. 파업이 금지된 60일간 합의가 안 되면 노동관계위원회(National Labor Relations Board)는 사용자 측의 최종제안을 노동자들에게 제시, 비밀투표로 수용여부를 묻는다. 그후엔 파업금지 명령이 철회되기 때문에 부결됐을 경우 파업에 돌입할 수 있다.

1947년 이 법이 제정된 후 지금까지 국가가 노동자들의 파업을 금지시킨 사례는 총 32건이다. 50~60년대는 매년 1.5건꼴로 발동됐다. 그러나 1971년 1건, 1978년 1건을 끝으로 현재까지 한 번도 발동되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면서도 실상 그 효과는 거의 없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공익사업장이든 그렇지 않든 쟁의가 발생하면 미국에서는 중재(mediation)에 의한 분쟁해결이 보편화돼 있다. 연방중재조정기구(FMCS)는 매년 미국에서 벌어지는 6만여건의 임단협 쟁의 중 약 10%인 6000여 건에 중재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중재에 의한 합의성공률은 85%라고 한다. 한국노동위원회의 조정성공률이 40% 남짓인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노동자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정부는 정부대로 원성만 사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바로잡을 길은 사실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강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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