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04월 2019-04-01   2295

[만남] 누구를 위한 ‘특별자치’입니까 – 강호진 제주주민자치연대 대표

참여사회 X 지역사회 만남 – 제주 편

누구를 위한 ‘특별자치’입니까 

강호진 제주주민자치연대 대표

월간참여사회 2019년 4월호 (통권 264호)

 

「참여사회」는 올해 참여연대 25주년을 맞아 지역 사회에서 풀뿌리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시민단체를 찾아가서 만나는 기획 인터뷰를 격월로 진행합니다. 그 첫걸음을 최남단 제주에서 떼었습니다.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제주주민자치연대 강호진 대표를 제주의 한 호텔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참여연대 회원이자 오랫동안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함께해 온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마침 그날은 UN 진실·정의·배상·재발방지 특별보고관이 제주를 방문하여 <국제 인권 기준에서 본 한국의 과거사 청산 행사>가 열린 날이었습니다. 

다시 4월을 맞은 제주. 작년 한 해 4.3 70주년기념사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으로 바쁜 한 해를 보낸 그를 만나 4.3 70주년의 뒷이야기와 영리병원, 제2공항 등 ‘오버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제주 사회 현안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작년엔 제주도 차원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4.3을 알리려 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올레길 코스처럼 곳곳에 4.3 유적에 대한 설명이나 표석을 세웠고요. 육지에서도 4.3에 대해 많이 알려진 것 같은데, 4.3 70주년 기념사업이 대체로 성공적이었다고 보시나요?

 

4.3에 대한 인지도가 늘어난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4.3을 상징하는 동백꽃 배지를 3만 개 정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70만 개 만들어야 했어요. 70주년을 맞아 국민들과 함께하는 광화문 문화제도 진행했고요.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한 거 같습니다.

 

저도 서울 시내에서 그 배지 달고 있는 사람들 많이 봤어요. 작년 4.3에 대한 큰 과업 중 하나가 ‘정명(定名)’이잖아요. 이름 찾기 혹은 정하기. 지금도 4.3 기념관에 가면 이름 없는 비석이 놓여있는데 정명은 왜 중요할까요? 

 

4.3은 어쨌든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 1이 희생당하신 안타까운 사건이고, 슬픈 역사지요. 그런데, 왜 일어났을까 근본적으로 돌아보면 결국 당시 미국이 주도했던 한반도 분할에 무장투쟁으로 저항했던 사건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점에서 단순히 슬픈 역사로만 보지 말고, 주체적 관점에서 4.3이 일어난 원인이나 과정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통일운동으로서의 4.3, 민중항쟁으로서의 4.3을 보자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월간참여사회 2019년 4월호 (통권 264호)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그런데 정작 성격을 부여하자면 간단치 않아 보여요. 도민들이 일방적으로 손해 입었다는 ‘학살’을 강조하면 도민들의 적극적인 단정 반대 운동이라든가 항거 같은 주체적 성격이 외면될 수 있고, 또 봉기적 성격을 강조하면 민간인 학살이나 무고한 이들에 대한 국가폭력이 가려질 우려가 있는데요. 

 

제주 지역 안에서는 여전히 그리고 상당히 그 논쟁이 심하지요. 결국 과정은 항쟁과 학살인데, 제주로 들어오면 학살자-피학살자, 가해자-피해자가 여전히 공존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성격에 대해 논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피해에 대한 치유가 중요할 뿐만 아니라 덧붙여서 4.3이 왜 일어났는지 주체적 관점에 대한 해석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당시로 돌아가면 한반도의 분단을 막는 운동이 사회적 정당성을 가졌던 것인데, 그런 부분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게 필요하다고 봤던 거죠. 

 

그런 맥락에서 4.3 70년이 흐르고 지금의 제주 상황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오갔을 것 같습니다. 

 

일제강점기나 4.3 당시에도 그랬지만, 제주도는 세계사적, 정치군사적으로 국가나 강대국의 입장에서 군대를 박아놓기 딱 좋은 군사적 요충지로 생각하기 때문에 평화롭게 살아가려는 도민들과 갈등을 빚어 왔지요. 그래서 작년과 올해, 4.3과 강정마을 해군기지, 4.3과 제2공항 이런 현안과의 접점을 찾아보려 했지만 솔직히 미흡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제주군사기지저지와평화의섬실현을위한범도민대책위’ 공동대표 겸 정책위원장도 맡고 계시지요? 작년엔 문재인 정부와 법원이 주민과 활동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구상권 청구소송)을 취하했지만, 한편으론 국제관함식을 개최해서 강정마을에 극심한 갈등이 재연되었는데요? 

 

이태호 위원장과 제가 싸움을 좀 덜 한 거 아니냐(웃음), 문재인정부가 말은 촛불정부라고 하면서 결과적으로는 해군기지에 미핵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허용하고 관함식을 빌미로 해군기지를 전 세계에 홍보하는 데 앞장선 거지요. 관함식이라는 게 단순히 여러 나라 해군들끼리 친선 교류하는 행사만이 아니고요, 해상 무력시위의 성격도 있고, 실제로 관함식 앞뒤로 미국 주도로 해상훈련도 했어요. 아직 갈등이 남아있는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문재인 정부가 돈 문제 해결해줄 테니 군사기지 인정하라는 식으로 밀어붙인 셈이지요. 

 

관함식을 기점으로 정부가 주장해온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얘기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군항으로서 입지가 강화됐다는 느낌인데요. 

 

‘민군복합항’이란 말은 홍보 플래카드에만 있고 기지입구에도, 진입도로에도 ‘제주해군기지’라고 쓰여 있어요. 예산으로 봐도 97% 이상이 군사기지 예산이고요. 

 

월간참여사회 2019년 4월호 (통권 264호)

2018년 10월 11일, 제주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참여연대를 비롯한 ‘제주해군 기지전국대책회의’ 활동가들이 제주관함식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해군기지 말고 제주에 다른 곳도 군사기지화 되고 있다는 정황이 있나요?  

 

제2공항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국방중기계획에 사실상 공군기지인 남부탐색구조부대 창설계획이 이미 반영되고 있고요. 실제 2017년 정도에는 제주남부탐색구조부대를 설치할 것인지 말지 타당성 조사를 하려고 했던 기록도 있습니다. 당시 제2공항을 ‘민군복합공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공군참모총장께서 현재 국방부 장관이기도 하구요. 이 경우 제주 남동부 지역이 해군기지와 군사공항이 연결된 군사벨트가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제2공항 개발에는 군사적 문제 말고 환경문제도 있잖아요? 

 

제주도에서 발생하는 쓰레기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에요. 이걸 압축해서 필리핀에 수출해왔는데 필리핀이 수입을 거부하면서 이미 도내에 엄청난 사회문제가 됐어요. 90년대에는 골프장 건설이 유행했고, 최근에는 중국 자본 주도의 대규모 주택단지 건설로 제주도가 몸살을 앓고 있어요. 그 많던 지하수도 고갈되거나 그나마도 오폐수처리가 제대로 안 돼서 오염되고 있고요. 일부 지역에서는 생활용수가 부족한 형편입니다. 섬의 수용가능성이 이미 한계에 다다랐는데, 제2공항을 한다는 건 수용용량을 더 늘리겠다는 거거든요. 

 

이런 걸 전체적으로 ‘오버투어리즘’이라고 정의하던데, 오버투어리즘 때문에 제2공항 반대한다고 하면 도민 일부에서는 ‘무슨 배부른 소리냐’는 말도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도내 관광업계에서 그런 말씀들 하시는데요. 잘 보면 관광산업의 주인공이 지역의 토착 자본이나 주민이 아니라 대부분 중국 자본이나 대기업 자본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신라면세점과 롯데면세점의 경우는, 사드로 인한 중국관광객 감소에도 불구하고 한 해 매출액이 1조가 넘어요. 그리고 제주공항 3층 공항면세점도 국토부 산하인데 연 매출 1조 5천인 거죠.

 

제주도 GRDP가 15조인데 법인 3개가 제주경제 10%를 쥐고 있는 거죠. 문제는 뭐냐면, 면세점은 면세 아닙니까? 거기다 롯데나 신라는 관광진흥기금도 내지 않고 있어요, 단 1원도. 도민들이든 행정이든 정부든 열심히 관광 인프라를 깔아놨는데 그 혜택을 싹쓸이하면서 반면 도민과는 아무 이익도 나누지 않는 거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제주도는 관광개발사업장(투자진흥지구)에 깎아준 세금 총액이 8천 6백억인 반면,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소규모 업자에게는 단돈 1원도 깎아주지 않거든요. 세금의 역차별이 발생하는 거죠. ‘관광산업 활성화’라지만 이 구조를 깨지 않으면 오버투어리즘 문제도 해결되거나 진전되기 힘들다고 봅니다.  

 

최근에는 영리병원 논란도 심각한 것 같습니다. 

 

참여연대 비롯해 전국 보건의료단체가 함께 열심히 싸워서 법적으로 국내영리병원을 지울 수 없게 막아냈어요. 한마디로 삼성은 병원을 세울 수 없게 된 거죠. 하지만 제주도에 외국영리병원을 설립하는 건 허용되고 말았습니다. 도내에서 이걸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녹지’라는 중국 거대 부동산 회사가 들어왔어요. 원희룡 지사가 도민 뜻을 뒤집고 하다 보니까 도민의 저항과 전국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서, 결국 내준 허가를 취소하는 절차로 가고 있는 과정이긴 합니다.  

 

중앙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개입하지 않나요? 

 

이거 박근혜 때 한 거야, 특별자치도지사도 자유한국당 출신이니까 우리 신경 안 쓸래, 그래서 팔짱 끼고 방관자적 태도를 보이는 거 같아요. “문재인 정부는 영리병원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주 영리병원 문제는 원희룡 도지사가 알아서 해라” 이런 메시지인 거죠. 이 정책은 복지부장관이 승인해준 건데, 제가 문재인 정부 복지부장관이라면 그 승인 과정이 내용이 제대로 된 건인지 살펴보겠죠. 특히 박근혜 재판 과정에서 그 측근 안종범 수첩에도 관련 내용이 나오잖아요, 제주영리병원 ‘오더’를 준 걸로. 그럼 사실 정부가 적폐청산 관점에서라도 더 들여다보고 인과관계를 따졌어야 하는데, 수수방관하는 거죠. 

 

얘기를 종합해보면, 제주가 특별자치도가 된지 꽤 됐는데 제주도는 군사적으로 지정학적 위험성을 떠안게 됐고, 환경도 파괴되고, 영리로 따지면 몇몇 대기업과 외부 투자자들은 큰 이득을 보는데 주민들한테 딱히 돌아가는 건 아닌 거 같고…. 결과적으로 특별자치도 실험이 자치에 도움이 된 걸까요? 

 

제가 주민자치연대대표인데, 자치라는 게 스스로 통치하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도내에서도 권력이 나뉘어야 하는 거죠. 과거에는 1개도 4개 시군이 있었고 모두 직선으로 대표를 뽑았는데, 노무현 정부 때 특별자치 한다고 하면서 4개 시군의 기초정부를 없애 버렸어요. 이건 도지사를 위한 자치인거지 도민을 위한 자치는 아닌 거죠. 저희 같은 시민단체가 보기에 이 구조가 생긴 이유는, 특별자치의 특별함이 도민을 위한 게 아니라 개발 자본을 위한 것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시장군수 사인을 받고 또 이어서 도지사 사인 받고, 국토부 장관 사인 받아야 하는데 특별자치도 되면서 국토부장관 사인 안 받아도 되고, 시군 없는 거잖아요? 도지사만 사인 받으면 되는 거죠. 원스탑으로.

 

월간참여사회 2019년 4월호 (통권 264호)

강호진 제주주민자치연대 대표 

 

제 기억에는 서귀포시장을 직선으로 뽑을 때는 화순해군기지 반대운동이 성공했어요. 그런데 서귀포시장이 관에서 내리꽂는 사람이 된 다음부터는 서귀포 여론도 흔들흔들하고 제주도 여론은 안전장치 없이 도지사 뜻대로 가는 모양새 같아요?

 

해군기지가 건설되려면 법률상 여러 제도가 작동해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농로 폐지예요. 농사용 도로를 폐지해야만 거기 공사가 가능한 거죠. 과거 서귀포시장을 시민이 뽑을 때는 당연히 주민반대를 무릅쓰고 농로를 폐지하는 것에 사인할 수 없잖아요? 근데 도지사가 임명한 사람은 도지사 눈치를 보는데 도지사가 시키니까 농로 폐지를 허가해 준거죠. 그 이후부터 다른 제도적 빗장도 확 풀려서 여기까지 온 거죠. 

 

특별자치법에 따르면 이것도 제주도민이 선택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법률상 행정체제 개편에 관해서는 발의권자가 도지사가 아니라 행자부 장관이고요, 행자부 장관이 주민투표를 하라고 오더를 내려야 투표할 수 있는데 결국 정부가 의지가 없으면 못 하는 거예요. 저희는 어떤 행정체제를 선택할 수 있을지 도민이 선택권을 가질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하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주민자치연대가 정부 돈도 안 받고 활동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제주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데 주로 두 가지가 걱정거리인 듯해요. 회원들이 잘 안 늘어나는 거랑 젊은 활동가가 유입이 안 된다는 거?

 

저희도 참여연대처럼 광고까지 포함해서 정부 보조금을 일절 받지 않고 버티고 있어요. 대신 참여연대가 청년참여연대를 발족했듯이 저희도 10년 넘게 청년 사업에 공을 들여왔어요. 처음엔 20대위원회였다가 시간이 흘러서 2030위원회로 개편했지요. 다행히 이분들이 주민자치연대에만 머무르지 않고 직접 지역협동조합도 만들고 하면서 지역사회에 활기를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청년참여연대랑 저희 2030위원회랑, 저희 지역 청년협동조합 등이 같이 협력해서 할 수 있는 사업을 만들어 봐도 좋을 거 같아요. 

 

올해가 창립 20주년인데, 특별히 준비하고 계신 게 있나요?

 

20주년이면 좀 멋있어 보이는 사업을 해야 하는데, 20주년 사업의 1번이 원희룡 퇴진 아닙니까?(웃음) 굉장히 난감한 상황이죠. 4월에 빨리 영리병원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리고 보다 주민자치연대다운 일을 해야지요. 저희 단체의 시작은 풀뿌리 주민운동이니까요. 과거 4.3의 저항이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될 수 있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풀뿌리에 근거를 둔 인민위원회가 지역사회 동네 자치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 풀뿌리 기반과 모델을 마련하는 것이 꿈입니다. 

 

마지막으로 참여연대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참여연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상당히 엘리트 운동 정도로 인식하지요. 서울에, 중앙에 앉아서 일하는 걸로 보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참여연대와 함께 하는 경험이 많아질수록 실제로는 그런 운동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주요 현장에서 몸으로 투신하는 회원과 활동가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소위 민중운동이 할 수 없는 영역도 참여연대가 해내는 경우가 많아요. 지금도 훌륭하지만 지역과 함께하는 운동을 통해 한국 사회를 바꿀 수 있길 바랍니다. 지역사회도 참여연대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글.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사진. 이한나 미디어홍보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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