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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년 12월
  • 2002.12.01
  • 851
나는 나무에서 떨어져본 적이 두 번 있다. 두 번 다 그 나무는 감나무였고, 때는 하늘이 마냥 높푸른 가을, 홍시가 하나둘 매달릴 무렵이었다. 열 살 안팎, 그때는 군것질거리는 고사하고 먹을것도 풍족하지 않았다. 그럴 때 감나무에서 발갛게 익어가는 홍시는 얼마나 황홀한 유혹이었던가?

지금도 시골집에는 그때의 감나무가 몇 그루 그대로 서 있다. 여전히 감꽃이 피고 감이 노랗게 익어간다. 아침햇살에 투명한 붉은빛으로 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홍시. 시골길 감나무는 그렇게 한두 개의 홍시를 달고 겨울을 맞는다. 그 마지막 남겨진 홍시를 까치밥이라고도 부른다.

배가 고팠던 시절이었음에도 왜 어른들이 꼭 하나는 남겨놓고 감을 땄을까? 아마도 그것은 사람을 먼저 배려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감나무 가지는 매우 약하다. 따라서 높은 곳까지 올라가 감을 따면 그 사람은 가지가 부러져서 떨어지기 십상이다.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까치에게 밥을 남겨준다는 제의적인 측면을 굳이 부각시키지 않더라도 그것은 먼저 사람이 평안을 얻고자 하는 지혜요, 자연 더 나아가 우주 속에 조화를 이루며 살려는 우리 조상들의 생명의식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곧 자신을 돌보는 일이었다. 남 위에 군림하면서 나만 혼자 잘 살자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그리고 도시에서 사는 삶에는 그런 배려와 조화가 없다. 지하철이나 도로 같은 가시적인 환경 외에도 전화선이나 전파를 타고 흐르는 정보들이 사람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그것을 보고 어찌 명상에 잠길 것이며, 삶과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그런 물리적 환경의 폭력 속에서 스스로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신문을 봐도 답답하기만 할 뿐,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약에 쓰려 해도 찾아볼 수 없다. 정치권의 기만이나 재벌들의 사기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가진 자나 쥔 자나 그저 자기 욕심 채우기에 바쁘다. 그들이 지은 구업(口業·말로써 짓는 죄)으로 따지자면 이들은 필시 발설지옥(拔舌地獄)감이다. 어제와 오늘의 말이 다르고, 설령 같은 말이라 해도 해석을 달리하여 민중을 기만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니, 이 세상의 지배 언어가 이미 발설지옥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작 민초들의 삶은 조심과 경외 그 자체였다. 감나무에서 감 하나를 딸 때도 그러했고, 나무 하나를 베거나 심어도, 뜨거운 물 한 바가지를 땅에 버릴 때도 인간과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을 생각했다. 산업화 시대의 모토였던(어찌 보면 독재자의 논리 같기도 한), “파괴는 건설의 어머니” 같은 무지막지한 말은 쓰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모든 것이 너무 쉽고 간단하게 행해진다. 한 나라의 경제 정책을, 정치나 외교를 아무렇지도 않게 결정하거나 수정한다. 도무지 조심과 경외는 찾아볼 길이 없다.

이제 내년이면 다시 선거정국이다. 어떤 말들이 어떻게 쏟아져 우리의 정신을 빼놓을지 생각만 해도 귀가 윙윙거린다. 민주주의적 형식과 절차를 중시하는 요즘은 민심이 아니라 표심이 천심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정치인들은 다시 그 표심을 잡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표로써 심판한다고 하지만, 단순히 표에 우리의 마음을 모두 실어 표현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결국 사람이 승리하는 판이 아니라 정치만이 승리하는 판이 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저들이 이제까지 익혔거나 개발할 수 있는 ‘표심 잡는 방법’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그저 우리 시대의 표심(標心)은 그야말로 표심(表心 겉마음)일 뿐이다.

‘민심이 천심이다’라고 했을 때, 중요한 것은 그 민심을 바라보는 시각이 정치적인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민심’으로 정치를 변혁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도구적 관점을 지양하자는 말이다. 그것은 지배 이데올로기와 하등 다를 바가 없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감나무를 바라보는 우리 조상들처럼 삶과 노동과 공동체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태적으로 발현되는 순수한 시각에서부터 변혁의 희망을 찾아야 한다.

그러한 민중의식이 역사적인 사건으로 드러난 경우도 있지 않은가!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이 바로 그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각성한 민중들이었다. 봉건지배계급의 폭정과 실정에 대해, 외세에 대해 보국안민을 외쳤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명확한 믿음이 있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지배계급의 희생물로밖에 보지 않던 억압세력과 이데올로기를 향해 하늘의 사상을 부르짖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여자가 하늘이라고, 어린이가 하늘이라고 믿었고, 또 실천했다. 당시 교주였던 최시형도 노동을 하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았고 잠을 자지 않았다. 그러나 갑오년 이후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대부분의 벼슬아치와 지식인들이 일제에 아부하며 나라를 팔아먹는 동안, 민중들은 다시 의병을 일으켰고 독립군을 조직했다. 최근에 일어난 IMF 때를 봐도 그 사실은 극명해진다. 서민들이 금과 달러를 모으고 있을 때, 몇몇 있는 자들은 환율과 금값 상승을 이용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그렇다면 희망의 근거는 명백해진다. 스스로 각성하고 실천하는 일이며, 바르고 분명한 것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스스로 가지며, 그것이 생태적으로 발현되는 공동체의 정신이다. 무엇에 의지하거나 나의 일을 남에게 신탁하는 것이 분명코 아님은 자명하다.

‘민심은 천심이다’라는 말 외에도 우리는 그와 같은 말을 많이 하고 또 듣는다. 불가에서는 심즉불(心則佛), 동학에서는 인내천(人乃天). 마음이 곧 부처고 사람이 곧 하늘인데 거기에 무슨 구구한 설명이 필요하랴! 다만 우매한 중생들이 그 말을 해도 그 말을 그대로 믿지 않으니 팔만사천의 경(經)과 수천 권의 논(論)으로 예를 들고 논증하고 있을 뿐이다.

김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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