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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l  since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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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년 12월
  • 2002.12.01
  • 685
“아휴, 남사스러워라.”

“야, 여기 와 봐, 죽여준다.”

“콘돔 처음 봐요”

“미끌거리는 건 뭐예요?”

“징그러워요, 생리주기가 뭐예요?”

“길거리에서 뭐 하는 짓이야?”

지난 99년 캠페인에서 우리 상담소 상담원이 가지를 재료로 만든 가짜 성기에 콘돔 씌우는 시범을 보이는 부스 앞. 성기 그림 등 전시물을 설치해 놓은 이곳에서는 계속 이런 속삭임이 들렸다. 콘돔 실습을 하던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이 쳐다보기만 해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손을 멈추곤 했다.

그러나 작년부터 상황은 변했다.

“빨리 와봐. 이거 꼭 너한테 필요한 거다. 잘 배워 둬.”

“이건 어떻게 사용하는 거예요?”

“난, 여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교사인데요, 이 자료들 너무 좋네요. 어떻게 구하죠?”

“이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실질적인 걸 가르쳐줘야 해요.”

어느 새 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변해가고 있었다. 홀로 혹은 쌍쌍으로, 또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참가자들은 자기 생각도 적극적으로 말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덜 의식하게 되었다.

미디어의 발달로 성에 관해 알 만큼은 안다고 생각하며 쉽게 성관계를 맺고 있는 청소년들. 순결을 강조하며 생물학적 지식만을 전달하는 기존의 성교육은 이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그들은 피임과 같은 구체적인 정보를 원하고 있었다. 단순한 호기심, 남자친구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려 경험한 성관계로 말미암아 ‘원치 않은 임신’과 낙태의 후유증으로 고민하는 청소년들….

성적 자기결정권 교육 프로그램

그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청소년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교육을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욕구가 진정코 자신의 것이며 주변의 상황이나 압력에 의한 것은 아닌지, 성관계를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지, ‘원치 않는 임신’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 스스로 점검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교육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오랜 논의를 거듭하여 한국 여성민우회 가족과성상담소는 성교육의 주제를 크게 세 가지로 잡았다. ‘당당한 성! 안전한 성! 즐거운 성!’ 이 논의 과정에서 ‘당당한 성’과 ‘안전한 성’은 좋지만 청소년들에게 ‘즐거운 성’을 이야기하기엔 너무 이른 것 아니냐, 안전한 성과 즐거운 성이 함께 갈 수 있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이에 맞서 성에 관한 자기의 욕구를 확실하게 파악하고 서로의 의사를 존중하며 의사소통할 줄 알고 안전을 충분히 고려했다면 나이는 관계없다, 성인들 중에도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등의 반론도 제시됐다.

결국 ‘내 몸의 주인은 나’라는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교육만 확실히 한다면, 건강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성가치관을 세울 수 있게 되고 비뚤어진 어른들의 성문화도 바로 세울 수 있다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졌다.

열린 공간에서 자연스러운 성담론 형성

열린 공간인 거리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의 근본인 ‘당당한 성! 안전한 성! 즐거운 성!’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하는 고민으로 우리는 밤잠을 잊었다. 퍼즐게임이나 뒤집어보기 연극공연 등 소극적인 기존의 방식으로는 우리의 의도가 잘못 전달될 위험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건네고 의견을 듣고 반응을 보여주는 장치가 필요했다. 그런 필요에 따라 기획된 것이 참가자가 여러 부스를 돌며 부스 담당자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부스투어 프로그램이었다.

세 가지 주제를 기본으로 자신의 성의식과 성적 자기 표현력을 점검해볼 수 있는 부스, ‘안전한 성’을 위한 콘돔실습 부스, 생리주기 팔찌 만들기 부스, 피임기구와 자료들을 볼 수 있는 전시부스, 즐거운 성적 의사소통 부스, 에로틱 존 그리기 부스 등을 만들었다. 그 밖에도 성기의 다양한 모양과 크기, 처녀막의 다양한 모양, 성과 성역할 뒤집어보기, 성관계 전에 점검해야 할 것, 성관계 후에 점검해야 할 것 등의 실사도 마련하였다.

참가자가 행사를 통해 성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고, 성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며 안전한 성을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알 수 있도록 중점을 두었다. 또한 일상 생활에서도 자연스럽게 성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건전한 성문화를 만들고자 했다.

“난 여잔데 콘돔 끼우는 걸 배워서 뭐하게요?”라는 여성 참가자에게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어야죠. 알고 있다면 그것을 선택할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것에 대한 정보가 없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무 의사표시도 못한 채 상대의 행동에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게 되기 쉽죠. 그럴 경우 자신이 원하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죠. 그래서 이런 프로그램을 하는 거예요. 자, 한번 직접 해보세요”라며 설득하는 캠페인 진행자는 첫 교육시간에 쑥스러워 고개도 들지 못하던 자원활동가였다. 몇 주간의 교육과 세미나가 그에게 이런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이다.

일상적인 성적 의사소통의 과제

나는 개인의 변화가 사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도 우리는 빠르게 변화시키려고 욕심내지 않으며 한 사람 한 사람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성에 관한 이야기마당을 일상속으로 가져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와 더불어 다양한 캠페인 참가자들에게 걸맞는 질 높은 프로그램 개발과 효과 점검 코너, 더 많은 부스와 인원의 확보 등이 우리의 숙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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